"빛의 아이들과 어둠의 아이들 투쟁"…네타냐후의 광기

팔레스타인 어린이 3450명 사망했는데 극악 발언

"이사야 예언 꼭 실현할 것"…섬뜩한 유대 근본주의

비상 걸린 바이든, '목의 가시' 네타냐후 손절 추진

미국, 전쟁 이후 가자 안정화 '다국적군 파견' 검토

가자 초토화, 난민 축출, 요새화…다음 전선은 '서안'

모로코‧바레인서 수만 명 이스라엘 단교 촉구 시위

2023-11-02     이유 에디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일 가자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 캠프에 대한 이스라앨의 전투기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서 부상한 어린 소녀를 구출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2023. 11.01 [AP=연합뉴스]

"빛의 아이들과 어둠의 아이들 간의 투쟁이며, 인류와 정글의 법칙 간의 투쟁이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달 16일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연설에서 하마스와의 전쟁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이 이런 충격적인 발언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가 가자 지구의 알아흘리 병원 폭발 참사가 벌어진 17일 돌연 삭제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31일 현재 팔레스타인 어린이 사망자는 3450명을 넘었고 940명이 실종 상태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10분에 한 명꼴로 숨졌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가자 완전 봉쇄에 따른 물과 식량, 의약품 고갈로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 대변인은 "가자가 어린이 수천 명의 묘지가 됐다"고 개탄했다. 네타냐후의 말을 빌자면 '빛의 아이들'이 투쟁에서 '어둠의 아이들'을 이긴 결과다.

 

점령지역 정착운동 책임자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10일 크네세트(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 07. 10 [AP=연합뉴스]

"이사야 예언 꼭 실현"…광기 어린 유대 근본주의

유대교 광신자 색채가 짙은 네타냐후의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데일리 비스트 보도에 따르면, 가자지구 지상 침공을 앞둔 26일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빛의 국민이고 저들은 어둠의 국민이다. 빛은 어둠을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고도 했고, 나아가 "지금은 승리의 쟁취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군대와 정의에 대한 깊은 신념, 유대 국민의 영원함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가지고 폭풍같이 전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곤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을 꼭 실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 유다 왕국의 예언자로 불린다. '이사야의 예언'이란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대 국민에 대한 '야훼의 보호'를 뜻한다.

다음날인 27일에는 "이제 가서 아말렉(가나안 남쪽 네게브 사막지대에 살던 고대 유목민족)을 공격하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고 남자와 여자와 어린이와 젖 먹는 아이,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모두 죽여라"(사무엘 상 15장 3절)라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했다. 이 대목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많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서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극히 공격적인 이런 유대 근본주의 발언에 이어 이스라엘이 28일부터 가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과 지상 작전에 돌입한 뒤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9000명에 육박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반발 움직임이 거세지자 조 바이든 행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일 가자 북부의 자발리아 난민 캠프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투기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에 깔린 생존자들을 찾고 있다.  2023. 11. 01 [AP=연합뉴스]

가자 초토화‧난민 축출‧요새화…다음 전선은 '서안'

네타냐후의 잇따른 유대 근본주의 발언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의 에드워드 루스 수석칼럼니스트는 1일자 칼럼에서 미국 권력 3위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등 미국 복음주의 운동 내 자신의 동맹 세력을 호출하는 신호로 봤다. 바이든에겐 곤혹스러운 상황인 셈이다.

루스에 따르면, 바이든은 지난 7일 하마스 공격 직후 "이스라엘 전폭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지만, 가자 군사작전의 강도와 범위, 민간인 피해 최소화, 하마스 제거 이후 시나리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통한 '두 국가 해법' 등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특히 바이든은 팔레스타인 국가만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 데 반해 네타냐후는 '두 국가 해법의 파탄'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지난 2년간 네타냐후는 군대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점령지역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거의 매일 공격했다. 서안도 폭발 직전에 이르자 이스라엘 국방군(IDF)이 서안 상황 통제에 여념이 없었고 가자 지구 상황을 등한시한 결과 10월 7일 하마스에게 의표를 찔렸다는 게 루스의 설명이다.

현재 네타냐후의 구상은 가자지구를 초토화하고 이집트와 다른 아랍국들을 압박해 220만 명의 가자 주민을 난민으로 수용토록 하고, 더욱 요새화된 구역을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 루스는 "극단주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의 지지를 강화함으로써 서안지구가 이스라엘의 다음 전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민간인 사망자 최소화를 위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은 세계가 '집단 처벌'로 여기는 행동을 밀고 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이든은 책임을 추궁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루스는 "네타냐후가 계속 남아있는 동안 바이든의 대통령직은 절대 호의에 보답하지 않은 한 인간에게 인질이 될 것"이라고 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의 회담 중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상의하고 있다. 이날 회담 후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가자지구 내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3.10.19. EPA 연합뉴스

비상 걸린 바이든, '목의 가시' 네타냐후 손절 추진

'목에 가시 같은' 네타냐후에 대한 바이든의 손절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바이든과 백악관 참모들은 최근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얼마 남지 않은 네타냐후의 정치 생명"과 후임 총리 문제까지 논의했다고 폴리티코가 두 명의 미 정부 관리를 인용해 1일 보도했다. 바이든은 지난 18일 텔아비브를 방문해 네타냐후와 만난 자리에서 그런 뜻을 직접 전달했다. 바이든은 결국 자리를 맡게 될 후임자와 나눌 교훈에 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악관과 이스라엘 정부는 폴리티코의 보도를 부인했다. 네타냐후는 국내에선 하마스의 기습을 막지 못한 책임론으로 지지율이 폭락 중이며 대외적으론 천문학적인 민간인 희생자를 초래한 무자비한 군사작전 탓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고, 이런 상황이 바이든엔 부담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네타냐후의 불안정한 정치적 기반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 내 중동 관련 협의에선 늘 "배경"으로 깔려 있으며, 네타냐후의 생명은 몇 달의 문제이거나 길어야 가자 군사작전의 초기 단계가 마무리될 때까지만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장기전이 될 하마스와의 전쟁과 그 이후의 대응을 다른 인물이 맡도록 한다는 얘기다. 후임자로는 이스라엘 전시 내각에 참여한 제2야당 국가통합당의 베니 간츠 대표와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 야당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1일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스라엘의 가자 자발리아 난민촌 폭격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시민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태우고 있다. 2023. 11. 01 [EPA=연합뉴스]

미국, 전쟁 이후 가자 안정화 '다국적군 파견' 검토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지구 전투가 마무리된 이후 시나리오도 논의 중이다. 여기에는 가자지구 안정화 작업을 위해 다국적군을 파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미군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미국의 우려도 남아 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가 하마스와의 전쟁을 자신의 정치적 미래와 연계해 어떤 시점에 분쟁을 확대할 가능성 말이다.

한편,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했거나 관계 개선을 검토 중인 아랍 국가들이 근 한 달째 이어진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격에 분노한 시민들로부터 단교 압박을 받고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수만 명의 시민이 모로코의 라바트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벌이며 단교를 촉구하고 있고, 시위를 금지해온 바레인에서도 수 백명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수십 년간 국교를 맺어온 이집트의 거리와 대학에서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다. 튀니지 의회의 한 위원회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 초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