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윤 대통령의 인지부조화

강서 참패 뒤 말은 바뀌었는데 과연 속내는?

지도부 교체 요구 외면하고 '도로 영남당'

헌재소장 후보자도 또 대통령 '친구' 지명

이태원 유가족도 안만나는데 무슨 소통?

기자회견도 1년 2개월째 중단 '불통의 끝'

2023-10-19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0.1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수석들에게 "소모적 이념 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의 <서울경제> 보도가 나온 가운데, 그가 이전과 다르게 이념이 아닌 민생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연일 내고 있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19일 참모진에게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으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인 18일 참모진과 회의에서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며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새로 꾸려진 여당 지도부에 "(통합위 제언이) 얼마나 정책 집행으로 이어졌는지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불과 2개월 전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를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규정한 뒤, 철 지난 '이념' 노선을 강조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28. [공동취재] 연합뉴스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국가에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될 가치는 또 어떠냐,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다. 이것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념제일주의' 노선을 표방했었다. 

8월 29일 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과의 통일대화 격려사에서도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스스로 '이념 투쟁 전사'를 자처했다.

그동안 이어온 강성 이념 발언과 이념제일주의와 비교하면 최근 민생 발언은 180도 바뀐 모습이다. 당황스럽다.

우리 석열이가 바뀌었어요?…글쎄

말은 바뀌었다는데 정작 행동은…

윤 대통령이 '반성'을 언급하고 '이념'보다 '민생' '소통'을 강조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부는 '정권 심판' 바람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17.15%포인트라는 큰 격차로 참패했다.

이번 선거는 특히 윤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대법원 유죄 확정으로 공직이 박탈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석 달만에 사면복권시켰고, 김 전 청장은 자신이 원인이 돼서 열린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헌정사에 유례 없던 '기행'이었다.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후보가 11일 서울 강서구 캠프사무소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입장을 밝힌 뒤 떠나고 있다. 2023.10.11 [공동취재] 연합뉴스

여론도 윤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보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4~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서구청장 패배에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냐는 질문에 응답자 57.5%가 윤 대통령을 꼽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다만 대통령의 메시지와 별개로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뒤 지도부 교체 요구에도 '김기현' 체제를 유지했다. 당 핵심인 사무총장에도 대구·경북(TK) 출신 이만희 의원을 앉히면서 '도로 영남당'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강서 참패 이후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사퇴라는 형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했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인식은 민심과는 멀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18일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로 자신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인 이종석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였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또다시 '친구'를 헌법기관 수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다. 이러한 행보가 '민생'이나 '소통'과는 가깝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2일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어두운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는 지난 11일 치러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에 패했다. 2023.10.12 연합뉴스

이 후보자 성향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 사건에서 주심을 맡아 이 장관의 사전 예방조치, 사후 재난대응, 사후 발언 모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지난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에서도 검찰청법 개정안이 검사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소수의견을 냈었다.

유가족 손도 안잡는데…소통할까

1년 2개월째 기자회견 중단 불통

윤 대통령이 실제로 민생에 귀를 기울이는지는 국회에서 극렬 대치 중인 공영방송지배구조개선법(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등의 논의 과정과 통과 여부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이 같은 개혁 성향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혀왔다.

여당의 반대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특별법의 경우도,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등 야 4당은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대통령이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가족들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우려하고 있다.

이에 이태원 유가족들은 지난 18일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1주기인 10월 29일 열리는 시민추모대회에 대통령을 직접 정중하게 초청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참사 이후 유가족을 만나 직접 사과하거나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적이 없었던 만큼, 참석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장어를 직접 손으로 잡아 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2023.07.27. 연합뉴스

대통령이 직접 소통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오지만, 실천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제1야당 대표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회피하고, 검찰은 노골적으로 총선을 앞두고 쪼개기 기소와 정치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국민 소통도 전무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주 1회 정도 기탄없이 기자들과 만나겠다"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1년 2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있다. 전례 없는 불통이다. 다음 달(11월 21일)이면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도 중단 1년이 된다.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타운홀 미팅을 통해 민생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듣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는 보도가 대통령실발로 나오고 있지만, 지난해 국민 100명이 참여해 라이브로 진행한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짜고치는 고스톱' 수준이었다. 이와 비슷한 방식의 타운홀 미팅이라면 소통이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변화를 위해서 메시지를 낸 것으로는 보이는데, 실제로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더 핵심"이라며 "지금도 메시지 말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게 진정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냐는 부분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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