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참극 뒤엔 팔레스타인인의 '정치적 우울증'
쾌활하고 농담 잘하던 팔레스타인 여행 가이드
고향 땅에 들어서자 웃음기 사라지고 고통 호소
“유대인들 집을 보면 정말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들이 우리 땅 빼앗고 울타리 치고, 늘 깔본다”
지난 여름 나이 40줄에 든 일본의 임상심리학자요 임상심리 치료사가 폴란드와 이스라엘 여행을 갔다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만났다. 이스라엘에서 여행 가이드로 채용한 사람이었는데, 여행 도중 시종 쾌활하고 농담도 잘하던 그는 자신의 고향땅 팔레스타인 자치구에 들어서자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쾌활과 웃음은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한, 슬픔과 고통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었다. 그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정치적 우울증”이라고 했다.
“유대인들 집만 보면 숨을 쉴 수 없다”
“언덕 위 유대인들 집이 눈에 들어오면, 정말 숨을 쉴 수 없게 돼요. 우리 땅은 빼앗기고 울타리가 쳐졌어요. 언제나 경멸당하고 감시받고 있어요. 해외에 나가 있을 때만 거짓말처럼 마음이 후련해져요. 그렇지만 여기에 돌아오기만 하면 슬퍼지고 답답해집니다.”
누군가 함께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있지요. 친구들과 얘기해요. 하지만 (그들은) 긍정적(포지티브)으로 마음 먹으라는 말만 해요. 당신은 가족도 있고,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이라는데. 그런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아요. 여기에 살면서 이곳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는 단숨에 말했다. “선생은 심리치료사잖아요. 어쩌면 좋을까요?”
이번 사태 이해의 실마리 “정치적 우울증”
지난 7일 새벽 이스라엘을 급습한 하마스가 자행한 유혈 참극은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 엄청난 사태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뜬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 팔레스타인 가이드가 심각하게 앓는 ‘정치적 우울증’이 의외로 매우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과 닮은 한국 역사와 정치상황
이 팔레스타인 가이드의 얘기는 <아사히신문> 9월 21일 기사로 실렸다. 그러니까 이번에 하마스 기습 공격을 하기 훨씬 전에 실린 얘기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팔레스타인 가이드의 침통한 얘기가 마치 그 한참 뒤에 일어난 이번 참사에 대한 예고, 예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나친 상상일까.
심리치료사가 기사 말미에 적었듯이 일본도 차별과 모순이 흘러넘치고 정치적 우울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 사회다. 어쩌면 이 심리치료사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지금의 한국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심각한 정치적 우울증을 앓는 한국사회를.
임상심리학자 도하타 가이토의 글 전문을 번역해 싣는다.
정치적 우울증’에 대한 처방은 무력감을 공유하고 상상하는 것
도하타 가이토/ 임상심리학자, 임상심리사
이번 여름, 폴란드와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돌아보는 여정에 나섰다. 폴란드의 목적지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적지. 홀로코스트를 겪고 이스라엘을 건국하기에 이른 유대인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여행이었다.
여행의 좋은 점은 평소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공원에서 눈에 띈 이스라엘 까마귀. 날개는 검지만 몸통은 희다. 흑백을 한 몸에 지닌 까마귀가 있다니, 가 보지 않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폴란드에서는 아우슈비츠만이 아니라 크라쿠프의 유대인 거리를 걸었다.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돌아보고, 유대인들의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았다. 공항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유대교도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고, 안식일 전후의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는 대다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물을 사기도 어려웠다.
여행을 통해 유대인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런 일상을 생존 차원에서 부정당해 온 그들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고난의 귀결로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게 된 것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그것은, 일본에 있었다면 지식을 토대로 추론할 수는 있었겠지만 실감있게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상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여행 마지막에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 아부(가명) 씨를 가이드로 삼아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자동차로 돌아봤다. 아부 씨는 쾌활한 사람으로, 함께 가는 내내 농담을 했다. 베들레헴 교회에서 내 신간이 잘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는 “Wealth(돈)보다 Health(건강)”라며 웃었다. “돈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이다.” 그는 같은 말을 매점에서도 역설하면서, 선물 가격을 기분좋게 깎아 주었다.
목적지는 고도 헤브론. 거기에서는 유대인 정착지와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이 울타리로 철저히 나뉘어져 있었다. 그때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던 땅에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서 점령해 온 역사를 선명하게 전해주는 거리였다. 지금도 많은 사상자를 내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아부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은 심리 치료사라 했지요?” 하고 그가 물은 것은 신시가지로 돌아와 팔레스타인 음식점에서 함께 콜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아부 씨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는 늘 우울합니다.”
“언덕 위에 늘어서 있는 유대인들 집이 눈에 들어오면, 정말 숨을 쉴 수 없게 돼요. 우리의 땅은 빼앗기고 울타리가 쳐졌어요. 언제나 경멸당하고 감시받고 있어요. 해외에 나가 있을 때만 거짓말처럼 마음이 후련해져요. 그렇지만 여기에 돌아오기만 하면 슬퍼지고 답답해집니다.” 아부 씨는 “정치적 우울증”이라고 했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없나요?” 나는 물었다. “있지요. 친구들과 얘기해요. 하지만 (그들은) 긍정적(포지티브)으로 마음 먹으라는 말만 해요. 당신은 가족도 있고,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이라는데. 그런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아요. 여기에 살면서 이곳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는 단숨에 말했다. “선생은 심리치료사 잖아요. 어쩌면 좋을까요?”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은 정신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는 착실하게 일을 잘하고 있고, 눈앞에서 팔레스타인 요리를 덥석덥석 집어먹고 있다. 그럼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아부 씨를 둘러싼 정치상황에는 압도적인 폭력이 있고, 심각한 불공정이 있다. 이런 현실에 마음이 그대로 반응하고 있다. 무력감이 생기고, 비탄에 잠긴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정치적 우울증”이다.
실제로 그렇다. 사회가, 국가가, 권력이 요상하다. 미쳤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사로서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환경을 바꿀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는 마음가짐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뻔한 어린애들 속임수다. 아부 씨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뭔가 얘기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울해지는 건 노멀(정상)한 것 아닌가요. 긍정적이지 못한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요.” 스스로도 싫어질 정도로 가볍게 울리는 무기력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 외에 거기에 있는 무기력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아부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슬며시 웃었다. “일본에 돌아가시면 여기에서 본 것을 책에 써 주세요.”
여행을 한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에 이른 피해의 역사를 상상한다. 동시에 그 나라에게 많은 것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해의 역사를 상상한다. 두 개의 역사가 있고 두 개의 정의가 있다. 흑백을 한몸에 지닌 까마귀처럼, 다른 색이 서로 이웃하고 있다.
아, 글자수가 부족하다. 아니, 결국, 어쩌면 좋을지 모르는 것이다. 역사의 끝에 생겨난 흑백 까마귀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무기력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런 무기력감을 긍정하는 것이 정치적 우울증에 대한 첫 처방이 될 것이다. 문제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귀국한 지 1개월, 흑백 까마귀가 흘러 넘치고 정치적 우울이 자욱한 사회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