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도 부담스런 '김행 폭탄'…강서구 선거만 넘기자?

윤석열, 강서구청장 보선 의식해 임명 미루는 듯

그간 '인사 독재' 휘둘렀지만 '김행 리스크'는 부담

숱한 의혹과 거짓말에 초유의 '청문회 노쇼'까지

'줄행랑' 사태로 인사청문 종료 여부부터 불명확

여권에서도 출구론…"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해야"

민주, 배임 혐의 고발…"인사검증 한동훈 책임져야"

2023-10-10     김호경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3.10.5.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두고 뜸을 들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래 주요 공직 후보자가 아무리 하자투성이이고 야권의 반대가 강력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며 '인사 독재'를 마음껏 시현해왔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경우 헌정사상 초유의 '청문회 노쇼' 사태까지 일으켜 일파만파를 초래한 데다 특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까지 코앞에 두고 있어 대통령실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국방부 장관에 신원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유인촌, 여성가족부 장관에 김행 후보자 등 3명을 동시에 지명하고 이틀 뒤인 15일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보냈다. 인사청문회법은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그 심사 또는 인사청문을 마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세 후보자의 인사청문 기한은 지난 5일 만료됐다.

이에 윤 대통령은 만료 당일 야권의 반대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안 된 신 후보자에 대해 바로 다음날인 6일까지 청문보고서를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한 뒤 기한이 지나기가 무섭게 토요일이던 7일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윤 대통령은 김영호 통일부 장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청문보고서도 이틀 만에 다시 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하곤 불응하자 바로 임명한 바 있다. 여야 합의로 적격과 부적격 의견이 병기된 청문보고서가 6일 채택된 유 후보자 역시 곧바로 7일 임명했다. 남은 건 김행 후보자뿐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1년 5개월 만에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는 벌써 18명이고 김 후보자까지 포함하면 19명째가 된다. 대통령실은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여야 합의가 안 돼도 대통령 참모인 장관은 인사권으로 임명할 수 있는 것"이라며 "결정적 하자나 범법행위가 드러난 게 아닌 '감정적인' 청문회였는데 어떻게 낙마시키겠나"라고 반문했다.

숱한 의혹과 반복된 거짓말에 청문회 기행(奇行)까지 겹쳐 '부적격' 비판이 압도적인 김 후보자를 무조건 두둔하는 형국인데,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김 후보자 임명 절차를 보류하고 있다. 우선 인사청문회 종료 여부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의 이른바 '줄행랑' 사태 때 야당이 자정 무렵 인사청문회 연장을 의결했기 때문에 초유의 상황이 얽히고 얽혀 해석이 복잡해졌다.

 

지난 5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인사청문회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하려 하자 민주당 문정복 의원이 막아서고 있다. YTN 돌발영상 화면 갈무리

지난 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 당시 김 후보자는 야당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며 불성실한 답변 태도로 일관하다 "그럼 고발하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권인숙 여가위원장이 "그런 식으로 태도를 유지하면 본인이 사퇴를 하든가"라고 지적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짐짓 격앙된 태도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났고 김 후보자에게도 "갑시다!"라고 종용했다. 김 후보자도 주섬주섬 자료를 챙겨 일어났다.

야당 의원들이 황급히 후보자석 주변으로 몰려와 "못 나간다" "어딜 도망가느냐"고 막아서면서 당장 퇴장은 못 했지만, 권 위원장이 오후 10시 50분쯤 10분간 정회를 선포하자 김 후보자는 여당 의원들과 회의장을 나갔고 속개 예정 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면서 권 위원장은 결국 오후 11시 50분쯤 청문회를 하루 더 진행하는 '의사일정 변경의 건'을 표결에 부쳤고 야당 단독으로 의결이 되자 5일 회의의 산회를 선포했다. 청문회는 6일 0시 15분에 속개됐으나 여당 위원들과 김 후보자는 변함없이 회의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측은 여야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인사청문회를 연장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아직 인사청문회가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청문회 도중 퇴장 뒤 미복귀'라는 상황 자체가 처음 벌어져 이런 혼선이 빚어진 것인데 이 역시 김 후보자가 원인을 제공한 셈이어서 대통령실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절차가 좀 정리된 다음에 (임명 관련)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시간을 끄는 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본투표가 11일 진행된다는 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전 유일하게 치러지는 수도권 단체장 선거여서 '총선 전초전'으로 통하는 만큼 여권도 사활을 걸고 임하고 있는데 김 후보 임명 강행이 여론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민주당 진교훈 후보에 밀리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고, 사전투표 최종 투표율(22.64%)이 역대 재보궐 선거와 지방선거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정국에서 '김행 리스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가운데)와 김기현 당 대표(왼쪽), 윤재옥 원내대표가 선거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발산역 앞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2023.10.10. 연합뉴스

대통령실 입장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여권 내에서도 '김행 비토론'이 심상치 않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위세에 눌려 대놓고 발언은 못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가 '주식 파킹' 등 핵심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김 후보자의 장관 임명이 부적절하며 당에도 큰 부담이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비주류 의원은 '출구론'을 공개 거론하고 나섰다. 중진인 하태경 의원은 여가부가 폐지할 부처인 만큼 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아예 대행 체재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의원은 10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여가부는 폐지할 부처이기에 장관 임명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갖는 게 맞다"면서 "좀 늦긴 했지만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앞으로도 (임명을) 안 하고 차관 대행 체제로 가고 총선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선인 이용호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지금으로 봐서는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하나의 길일 수는 있다"며 자진 사퇴를 바라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사회자가 '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는 게 맞는다는 의미인가'라고 묻자 이 의원은 "김 후보자가 정치 쪽을 전혀 모르는 분도 아니고 나름대로 정치 쪽에 많이 몸을 담고 있었던 분이기 때문에 저는 현재 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면서 "그분이 그런 정도 판단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금 이게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를 본인이 면밀히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 후보자의 '소셜뉴스' 주식 매각 및 재매수 과정을 두고 "명백한 통정매매이자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해명이 아니라 수사 대상"이라며 페이스북을 통해 앞장서 비판했던 검사 출신 김웅 의원은 방송에서도 "지금 언론이 제기했던 모든 의혹이라는 게 다 사실로 드러났다. 최근 민사 판결문이랑 이런 걸 봤는데 자진 사퇴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안팎의 난기류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김 후보자를 임명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여전히 중론이다. 국회를 무력화하는 데 거침이 없고 인사청문회를 요식행위쯤으로 하찮게 여기는 데다 야당을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으로 치부해온 윤 대통령에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여론 추이를 살피다 자진 사퇴 형식을 빌어 '김행 카드'를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만큼 '김행 리스크'가 두고두고 여권에 부담이 될 수 있는 탓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9.27.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지명 철회를 좀 더 강하게 압박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사상 초유의 후보자 행방불명 사태에 중심을 바로잡을 책임이 국회에 있는데, 여당은 책무도 망각한 채 정부에 동조해 국회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인사청문 제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대통령의 사과와 부적격 인사지명 철회가 있어야 국회 정상화도, 협치도 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김 후보자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김 후보자가 소셜뉴스 및 소셜홀딩스를 인수하면서 경영권 및 지분 양도 대가로 회사 돈을 이용해 공동창업자의 퇴직금과 고문료를 준 사실이 관련 민사소송 판결문을 통해 밝혀졌다는 이유다. 한민수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김행 후보자는 이를 통해 9억 원 상당의 재산상 이득을 취했고, 회사에 같은 액수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당당히 수사에 응하겠다. 고발을 환영한다"면서 "공동창업자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1년간 근무한 것에 대한 정당한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회사에 근무하면 퇴직금을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식 아니냐"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인사정보관리단을 두고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을 맡는 '한동훈 법무부'의 무능·무책임도 본격적으로 부각시키는 모습이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국감대책회의에서 "도저히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을 계속 보여주는 장관 후보자들을 인사정보관리단에서 검증하고 있다"며 "책임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라고 지목했다. 이어 "한 장관은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 당시에 '투명성이 제고됐다'는 등의 자평을 했지만 정말 그렇게 되고 있느냐"면서 "인사정보관리단은 능력이 없거나 쓸모가 없거나 둘 중의 하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국정감사를 통해 제대로 밝히고,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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