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의장 사상 첫 해임…대혼돈에 빠진 미 정가

친트럼프 강경파 '거사' 성공…민주당서 '뒤통수' 때려

바이든, 매카시와 '우크라 이면 합의' 흘려 산통 깨

'기약 없는' 우크라 예산…바이든 동맹국에 재확인

내년 예산안 협상 공전 불가피…셧다운 위기 예고

2023-10-04     이유 에디터

 

미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에서 해임된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의원. 2023 10.03.[AP=연합뉴스]

미국 하원의장이 234년 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됐다.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권력 순위 3위인 케빈 매카시(공화)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하원 전체 회의에서 해임결의안이 가결되면서 해임된 첫 하원의장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표결 결과는 찬성 216표, 반대 210표였다. 전날 해임결의안을 제출한 맷 게이츠 하원의원(플로리다)을 비롯한 공화당 강경파 의원 8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가결 당론을 정한 민주당 의원 모두가 가세했다. 민주당은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조사 등을 이유로 매카시 의장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가결 당론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해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물론, 하원 전체가 대혼란에 빠져들게 됐다. 후임자 선출이 시급하지만, 다수당인 공화당 내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매카시는 "협상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맷 게이츠(왼쪽) 하원 의원과 케빈 매카시 (오른쪽) 하원의장. 2023 10. 03 합성사진 [AFP=연합뉴스]

친트럼프 강경파 '거사' 성공…민주 '뒤통수' 때려

매카시는 9개월 전인 지난 1월 7일 새벽 당선될 당시에도 게이츠를 비롯한 친트럼프 성향의 '프리덤 코커스' 소속 강경파 의원들과의 밀고당기기를 하면서 15번째 투표까지 갔다. 미 하원이 의장 선출투표를 10차례 이상 진행한 사례는 남북전쟁 직전인 1859년 이후 최초였다.

해임된 사상 첫 하원의장이란 불명예를 매카시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 1월 당내 강경파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의장 해임안 제출 기준을 없앰으로써, 모든 의원이 몇 번이고 다시 제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 제출은 조지프 캐넌(1910년), 존 베이너(2015년) 하원의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으며, 베이너는 해임결의안 제출 두 달 후 스스로 자리를 떠났다.

발단은 미국 회계연도 개시일인 10월 1일을 하루 앞둔 9월 30일 매카시 의장이 처리한 45일짜리 연방정부 임시예산안이었다. 공화당 강경파가 대폭적인 예산 삭감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강하게 반대했으나 연방정부 셧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다.

임시예산안에는 공화당 강경파가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240억 달러와 민주당이 반대하는 국경 강화 지원 예산 모두 제외했다. 그러나 게이츠 등 강경파 의원들은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면서 매카시 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환영을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이날 키이우를 깜짝 방문했다. 전쟁 발발 후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3.02.20 AFP 연합뉴스

바이든, 매카시와 '우크라 이면 합의' 흘려 산통 깨

바이든 대통령이 산통을 깬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임시예산안이 처리된 다음 날인 1일 바이든은 조속한 우크라이나 예산 처리를 촉구하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관해 (합의를) 하나 했다.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매카시와 모종의 '이면 합의'가 있는 듯한 냄새를 풍겼다.

당장 바이든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와 서구 동맹국에 공약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확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하원의장 선출이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워 최악의 경우 미 하원 의회의 장기 공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앞서 1일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중단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면서 "저는 미국의 동맹국이나 미국 국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우리의 지원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고 싶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의 시급성을 묻는 말에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면서 "압도적으로 긴박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임시예산안에 우크라이나 예산이 빠진 데 대한 서구 동맹국의 우려가 커지자 바이든 대통령은 3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및 캐나다, 일본 등 주요 동맹 정상과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 지원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이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커비 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통화에서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무기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지속적 공조 방침에 일치한 입장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8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공화당 모금행사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2023 09.08 [AFP=연합뉴스]

내년 예산안 협상 공전 불가피…셧다운 위기 예고

공화당 강경파는 2024 회계연도 정부 지출을 2022년 수준인 1조4700억 달러로 줄이지 않는 한 어떤 예산안 처리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강력히 지지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삭감과 국경 강화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며, 부채상한 제한, 부자 감세, 저소득층 사회보장 및 건강보험 예산, 기후 위기와 청정에너지 예산 삭감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원의장 해임이란 '거사'에 성공하면서 공화당 강경파의 기세가 오른 데다가, 해임안 표결 과정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전원 가결에 투표하면서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과의 신뢰 관계가 깨짐에 따라 앞으로 정상적인 협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당장 11월 중순 임시예산안 기한 종료를 고려하면 가까운 시일 안에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위한 협상에 돌입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럴 경우 미 연방 정부의 또 다른 셧다운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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