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망치고 있는 세습적 연고주의···한국도 닮은꼴
‘잃어버린 30년’ 근본 원인은 연고주의 부패
민주주의 위기, 혁신 부재, 경제 쇠퇴와 직결
진보-보수 대립구도는 '초점 흐리기' 불과
언론의 편파보도가 연고주의 기득권 증폭
지난 11일 <NHK> 방송은 일본 집권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정권(내각) 지지율이 36%,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응답자는 43%라고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8월 26~2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지난 7월에 26%로 2개월 연속 30%를 밑돈 것으로 나왔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68%.
8월 5~6일 민방 <J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내년 9월 임기가 끝나는 기시다 총리의 재집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응답이 80%나 됐다.
여기에는 지금 기시다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증과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한 ‘마이넘버 카드’ 통폐합에 대한 불만, 외무성 고위 관료인 자민당 의원 뇌물 수수 의혹 등이 영향을 끼쳤다고 <마이니치>는 지적했다.
기시다 내각 지지율 부진에 반영된 경제난
하지만 기시다 정권이 고전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경제 부진일 것이다. 1990년대 초의 거품 붕괴 이후 장기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경제를 두고 ‘잃어버린 30년’이라고들 하지만,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주요국 GDP(국내총생산)는 미국, 독일, 캐나다 등이 2배 이상 커졌고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도 2배 가까이 늘었으나 일본은 오히려 줄었다.(0.9배) 1인당 GDP도 같은 기간에 대만은 2배 이상, 한국은 3배 이상 늘었으나 일본은 1.1배로 거의 제자리 걸음이었다. 지금 엔약세(1달러=147엔)로 극소수의 수출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나 99.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물가마저 급등해 조금씩 올리기 시작한 노동자들 임금 수준을 상쇄시키면서 실질임금이 한국 대만보다 낮아졌다. 이런 추세는 장기화해 일본의 하강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극단적인 저금리의 엔 완화 정책을 핵심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정부 부채총액이 1200조 엔대, GDP 대비 263%(2022년)인 일본은 팬데믹 때 찍어낸 달러를 거둬들이는 ‘출구정책’으로 금리를 올리는 미국에 발을 맞출 수도 없는 처지다. 금리를 올리면 막대한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 상승분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초저금리를 지속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이런 일본을 쇄신할 수 있는 정책을 아베노믹스를 답습하고 있는 기시다 정권한테서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기시다 내각 지지율 부진에 반영돼 있다.
일본 망치는 세습정치와 연고주의, 한국도 닮은꼴
<아사히신문>은 22일 기시다 정권 등 ‘잃어버린 30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자민당 정부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로 ‘연고주의’를 꼽았다. 정치 세습주의와 정실인사, 부정부패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연결되는 일본정치의 ‘연고주의’(네포티즘) 폐해는 한국정치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미조구치 데쓰로 다카사키경제대학 교수(공공경제학)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아사히> 기사를 읽다 보면 지금 한국이 일본 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든다.
세습정치와 연고주의, 정실인사, 언론 규제, 기득권 집착, 민주주의 위기, 혁신 부재와 경제 쇠퇴가 하나로 엮여 있는 일본의 현실을 보면, 지금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도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습적 기득권 유지냐 혁신이냐의 문제라는 게 좀 더 선명하게 읽힌다.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 친미냐 친중 또는 친북이냐는 대립구도는 세습적 연고주의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 확장하려는 우리사회 주류 이익집단이 문제의 초점을 흐리기 위해 그들이 소유한 주류 미디어(언론)를 통해 조장하는 환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본 연고주의와 정실인사의 산실이라 할 자민당과 총리관저, 미디어를 한국의 집권당과 대통령실, 검찰, 미디어로 바꿔 놓고 읽으며 비교 대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언론자유도 68위 일본, 47위 한국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국제 저널리스트들의 비정부조직인 ‘국경없는 기자들’(Reporters Without Borders, RWB)이 매긴 세계 보도자유도 순위를 보면, 일본은 올해에 180개 국가 중 68위다.(2019~2022년 66~71위) 한국은 올해 47위로 2019~2022년에 41~43위를 기록하다 올해 4단계나 내려갔다. 1위에서 6위까지가 아일랜드(2위)를 빼면 모두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언론자유도 랭킹 68위의 나라 일본의 미조구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 미디어는 '야당은 비판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권 운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SNS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야당은 비판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바람에, 원래 여당 정책을 체크해야 할 야당까지 ‘제안형’이라는 문구를 쓰게 됐다.
매스미디어의 책임이 크다. 야당의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올바르게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선거 투표율을 높이도록 정권과 대치한 야당의 행동을 공평하게 제대로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을 통해 정권에게 철저하게 설명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연고주의 타파를 위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자유도 랭킹 47위의 한국 교수들 중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조구치 데쓰로 교수의 <아사히신문> 인터뷰 기사 전문을 번역해서 싣는다.
기시다 총리의 정실인사, 경제학자가 말하는 ‘연고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기시다 후미오 총리 장남과 친족들의 지난해 말 총리관저 ‘망년회’. 아베 정권 때 모리토모 학원, 가케학원 문제,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간부 광고회사 뇌물수수 사건…. 오직(汚職, 부정)의 구조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미조구치 데쓰로 다카사키경제대학 교수는 일련의 문제들 배경에는 ‘연고주의’가 있다고 했다. 무슨 얘기인지 들어 봤다.
- 연고주의란 무엇인가?
= 혈연이나 인척관계 등으로 연결되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대하는 사고방식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세계사적으로는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세속적 권력을 가진 고위 성직자가 후계자로 자기 자식을 네포스(조카)라며 등용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연고주의가 ‘네포티즘’이라 불리는 이유다.
냉전 뒤의 세계, 강화된 연고주의
구체적으로는 정치가 등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집안 사람이나 동료를 공직에 임명하거나 공공사업을 우선적으로 맡기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의 ‘(폐쇄적이고 인습에 사로잡힌) 마을 사회’라는 말도 연고주의의 일종이다. 이른바 지연이나 혈연, 학연 등이 우선되고, 힘있는 사람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이익을 분배받는 사회다. 요컨대 연줄이 없으면 이익을 나눌 수 없다는 배타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 일본 특유의 현상인가?
= 냉전 시기에도 자본주의국만이 아니라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연고주의는 만연했다. 냉전이 끝나자 자본주의 자체가 중국 등 공산주의 체제 국가들에 수용되는 중에 연고주의는 더욱 깊숙이 침투했고 강화됐다. 관료와 정치가, 민간기업 간의 밀접한 관계가 비즈니스를 계속할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돼 ‘연고 자본주의’로 불리기도 했다.
그 특징은 법적인 인허가나 우대 세제(稅制) 조치 등에서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정부 중추와의 연줄이 있으면 우대받게 된다. 경제체제의 차이를 넘어 연고와 친구(友人)관계로 이어지는 연줄이 비즈니스를 좌우하는 세계가 생겨난다.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연고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연고 자본주의가 경제 시스템으로서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연고주의는 부패의 온상이 됐다.
- 부패의 온상이라면?
= 예컨대 소련 붕괴 뒤에 등장한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실업가)의 존재다. 그들은 정권 최고위층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옛 국영기업을 싼 값에 불하받아 거부를 쌓았다. 그 중에는 푸틴 대통령에 대들다 살해당한 사람도 있지만, 푸틴 대통령 등 정권 중추에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이권을 획득했다. 동일한 구도가 실은 지금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한 옛 소련 구성국이었던 우크라이나에도 있다.
올림픽 부정부패, 배경에 정관재(政官財) 유착
- 부패와 관련해, 도쿄올림픽 오직(汚職)은 어떻게 보는가?
= 올림픽 오직 문제는 권한을 가진 인물(대회조직위원회 전직 이사)에게 뇌물을 주고 뇌물액수보다 큰 비즈니스를 따내는 “새우로 도미를 낚는다”는 구조에 있다. 즉 뇌물을 통한 인적 커넥션(연줄)으로 선정 과정이 왜곡돼, 적합한 업자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발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세금도 낭비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 관점에서도 문제가 된다. 전직 이사를 중심으로 한 정관재 관계가 올림픽 오직을 낳았는데, 그 배경에 연고주의가 있다.
- 기시다 총리의 장남으로 정무비서관이었던 기시다 쇼타로가 총리관저에서 ‘망년회’를 했다가 비판받고 사실상 경질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 연고주의의 폐해가 표면화한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제 식구이지만 달리 대체할 인물이 없다”면 (기용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권의 중요 포스트에 친족이나 집안사람을 앉히는 것은 개인 이익과 국가 이익이 맞부딪히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집안사람에게는 이익을 안기겠지만 집안사람 이외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손해를 끼치게 된다.
기시다 총리가 파리 런던에서 공용차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닌 자신의 아들을 “총리 비서관으로서의 공무”라 옹호하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한 경제산업성 출신의 총리 비서관을 즉각 경질해 버린 것을 관저 기자단이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보도 금지)로 취재를 했다. 명백한 정실인사로, 정치 운영의 공평성을 해쳤다. 망년회 소동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세습정치가 낳은 연고주의
- 아베 정권 때 일어난 모리토모, 가케학원 문제에 대해서도 ‘연고주의’ 비판이 나왔다.
= 모리토모 학원 문제는 정부가 파격적으로 싼 가격에 (아베 총리가 잘 아는 사람에게) 국유지를 불하해 준 문제다.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과 관련해서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학원 이사장이 친구 사이로, 인가 과정에서 편의를 봐 준 것이 아니냐는 추궁을 당했다. 총리와의 연줄로 인허가 비즈니스가 결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이런 부자연스런 상황을 낳았다는 점에서 연고주의가 응축된 문제였다.
- 연고주의가 만연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 정치의 경우는 세습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후 자민당의 역대 총리들을 보더라도 스가 요시히데를 빼고는 모두 세습의원들이다. 자민당 각료들을 봐도 세습의원이 일정수 있어서 연고주의를 침투시키는 원인이 돼 있다.
-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세습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 확실히 세습 쪽이 지명도나 강력한 후원회, 자금모집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선거에 신경쓰지 않고 정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는 세습 옹호론을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습의원, 특히 자민당을 지지하는 암반층 중에는 그 때문에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이익단체에게 세습은 유익해서 상호의존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해서 의원을 당선시키려 할 것이다. 폐쇄적인 동료들끼리의 경직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 정권교체가 거의 없는 것과 연고주의가 만연하는 것 사이에는 연관이 있을까.
= 상징적인 것은 내각 인사국을 만들어 정권이 인사권을 강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자기실현을 위해 정책을 시행하는 (총리)관저 관료라 불리는, 은혜와 연고주의를 기반으로 한 관료들이 출현한 것이 아닐까. 관저 관료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돼 관료들은 출세를 위해 거기에 그냥 따라간다. 공문서가 파기되고 마음대로 수정되고, 국회에서도 기자회견에서도 얼버무리며 지나가는 답변이 횡행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고주의의 만연과 정권교체가 없는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미디어(언론)보도가 조장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
- 연고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가.
= 매스미디어나 SNS가 수행하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공표되지 않는 사실을 포함해서 사실을 확산, 보도해 갈 필요가 있다. 국회 답변을 보고 있으면 분명해지듯이 여당은 여러 문제들에 대한 설명 책임에 대해 화제를 피해가면서 대응한다.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방법은 ‘밥 논법’(제유법.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을 뒤집어 논점 피하기. 예컨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한 뒤 ‘밥 먹었냐’는 말을 듣고는, 빵을 먹었으니 ‘밥 안 먹었다’고 대답하는 식)이라 불리는데, 야당의 질의에 대해 논점을 비켜가며 책임회피를 한다.
이런 수작이 사회 전체에 침투해 있어서 국민은 냉소적으로 바뀌고 정치문제에 무관심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앞서 얘기했듯이 정관재의 연고주의와 거기에 뒤따르는 부패가 만연한 결과,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상황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매스미디어가 연고주의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보나?
= 그렇다. 게다가 일부 미디어는 “야당은 비판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것이 (집권세력의) 정권 운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SNS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야당은 비판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바람에, 원래 여당 정책을 체크해야 할 야당까지 ‘제안형’이라는 문구를 쓰게 됐다.
매스미디어의 책임이 크다. 야당의 역할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올바르게 보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선거 투표율을 높이도록 정권에 대치하는 야당의 행동을 공평하게 제대로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을 통해 정권에게 철저하게 설명할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 연고주의 타파를 위한 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경없는 기자단’에 따르면 2023년의 보도 자유도 순위를 보면, 일본은 180개국 지역 중에서 68위로, 주요7개국(G7) 중에서 최하위다. 위축되지 말고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해서 부패와 연고주의로 인한 폐해를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