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자초한 노란봉투법…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말라

파업 참여 노동자에 대한 거액의 손배소

노동 3권 저해하는 반헌법적 독소 조항

손배소로 극단적 선택한 노동자도 다수

노란봉투법 취지에 대다수 국민도 찬성

대통령·여당 억지 부리지 말고 협조해야

2023-09-20     장박원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금속노조는 20일 국회 앞에서 밤샘 노숙 집회를 연다. 경찰이 심야 시간대 집회 금지를 통고했으나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노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면 신청인(금속노조)의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인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금속노조가 고생스럽게 밤샘 집회를 여는 이유는 노동계의 숙원 과제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노동계 연합단체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도 지난 6일부터 국회 앞에서 법 처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문화예술노동자 등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12.15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들은 21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5월 24일 노란봉투법의 본회의 부의 요구 건을 처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상황에서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기로 한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으나 국민의힘의 방해로 심사가 90일 넘게 계류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소관 상임위에서 법사위로 넘어간 법안이 60일간 논의 없이 계류됐을 때 상임위 투표를 거쳐 본회의에 직회부 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 재계는 법이 통과되면 불법 파업이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이메일과 우편으로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마저 봉쇄된다면 산업 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며 경제의 근간이 되는 제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 것”이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보수 언론들도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며 재계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정말 노란봉투법이 산업 현장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파업 조장법일까. 그렇다면 이런 법안을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쪽 말이 진실일까. 이 문제에 대해 올바른 답을 찾으려면 법안이 추진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다. △법원이 조합원 등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하여 각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하도록 한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반인륜적 손해배상 소송과 법원의 기계적 판결이 초래했다. 법안 논의는 2009년 쌍용차가 파업 참여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현행법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개인에게도 파업을 결정한 노동조합과 똑같이 배상책임을 묻을 수 있다. 이에 법원은 2014년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 이후에도 유사한 소송이 이어졌다. 작년에도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의 파업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지회장과 부지회장, 사무장 5명을 상대로 470억 원 규모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박봉에 시달리는 노동자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배상액이었다. 소송의 덫에 걸린 많은 노동자가 천문학적 배상액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졌다.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에 대한 법원 판결 이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노란봉투에 돈을 담아 보냈다.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반인륜적 악법에 반기를 들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노란봉투법’으로 불리게 됐다. 법안에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해도 귀책 사유에 따라 개인 범위를 정하도록 한 것은 노동자들을 사지로 모는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소송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원도 지난 6월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했다. 현대자동차가 2010년과 2013년 울산 공장을 점거한 파업에 대해 노조뿐만 아니라 개별 노조원에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현대차 손을 들어주며 조합원 4명이 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대법원은 조합원 개인의 배상 액수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파업 참여 정도를 고려해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하청노동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 현행법은 사용자를 근로계약의 주체가 되는 사업주로 한정한다. 법이 원청과 하청 관계로 돌아가는 산업 현상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는 하청노동자가 원청 기업의 관리를 받고 있는데도 쌍방은 직접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하청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불법 파업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원청 기업이 수용하지 않으면 하청 기업에 아무리 요구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노랑봉투법이 사용자의 범위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한 이유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이 지난해 11월 22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2.11.22. 연합뉴스

여당과 재계, 보수 언론들은 노동봉투법을 노동계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노조가 불법 파업을 강행해도 회사는 재산권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분별한 파업을 조장하고 노사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한다. 이는 기업의 투자 기피로 이어지고 경제를 망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호도한다. 노조에 속하지 않는 노동자를 소외시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도 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거대노조를 절대권력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궤변이고 억지다.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유럽 주요국이 노동자에 대해 손배소 남발을 막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손해배상 판결로 노동자는 임금이 압류되는 등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매출이 수조 원인 기업으로서는 손해배상액이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르나 개별 노동자들은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거액이다. 소송을 당한 이들 중 30% 이상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조사도 있다.

재계는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란봉투법은 그동안 노동 현장에서 벌어졌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 3권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면 불법 파업은 줄어들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파업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기업 투자가 늘고 경제가 살아난다.

국민 여론은 노란봉투법은 찬성하는 쪽이 훨씬 많다.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2~10일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1.9%가 법안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응답도 44.4%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20.6%)”는 답변의 2배가 넘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면 의회 입법권에 대한 침해이자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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