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반도체공장 강제유치 다음은?…공장 돌릴 사람이 없네!
공장 건설 노동자는 TSMC 교관한테 위탁
숙련 기술자는 기업 돈 투입해 단기속성으로
수당 주며 2년 코스를 열흘 또는 8주에 끝내기
돈 대는 기업에 ‘취업준비 완료’ 산학협동
천문학적인 보조금으로 한국과 대만 등의 반도체 공장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들을 자국 내로 끌어들여 “메이드 인 미국”의 제조업 대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조 바이든 정부의 원대한 구상은 일단 별다른 차질없이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자국 기업들에만 혜택을 몰아주는 차별적 보호주의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는 인플레감축법(IRA) 등으로 야기된 논란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애리조나, 오하이오, 텍사스, 조지아 등 미국 여러 주에서 한국, 대만 등의 대기업들이 부지를 물색하고 공장들을 짓기 시작했다.
문제는 물과 노동력 부족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지은 공장들이 과연 제대로 돌아갈까, 라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일 기사에서 지적했다. 이 잡지가 문제삼은 것은 심각한 노동력 부족이다. 반도체 공장의 경우 공장건설 노동자, 칩 제조 숙련기술자, 그리고 엔지니어들 모두 태부족이라고 이 잡지는 썼다.
<포린 폴리시>도 지난 4일 기사에서 노동자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칩 생산도 불가능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모든 길은 피닉스로 통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포린 폴리시> 기사는 IRA 인센티브(보조금)에 편승한 그린필드 투자(해외 투자자가 부지를 직접 마련하고 시설을 지어 생산하는 외국인직접투자 방식)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애리조나 주 마리코파 카운티(중심도시가 피닉스) 사례를 얘기하면서 피닉스는 '제2의 로마'도 '제2의 디트로이트'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는 피닉스에는 노동자와 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린 폴리시>가 권고하는 해법은 공장을 그랜드 캐년이 있는 건조한 애리조나 주 같은 곳에 짓지 말고 물과 노동력 사정이 더 나은 곳에 짓거나 자급자족적인 북미 광역통합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거금 투입 단기 속성 반도체 노동자 양성방안
하지만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초점을 맞춘 것은 이 노동력 부족문제를 미국은 지금 어떻게 극복하려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게 매우 흥미로운데, 미국은 민관 합동으로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단기간 속성 양성 방식으로 노동자 부족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최근 50년간 가장 실업률이 낮은 상태인데, 대규모 해외투자로 새로운 공장들이 들어설 경우 노동력 부족은 더 심해진다. 바이든 정부가 겨냥하는 미국 제조업 부활의 가장 중요한 시험대는 반도체 분야인데, 지난 20여 년 간 미국의 컴퓨터 칩 제조업체들은 대부분 미국을 떠났다. 그래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연구자 및 디자이너(설계자)들은 미국에 남았지만, 실리콘 웨이퍼를 전자회로로 가공할 노동자들은 없어졌다. 지난해 제정한 반도체법은 이런 흐름을 바꾸기 위해 향후 5년간 500억 달러를 뿌리겠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2030년까지 미국 칩(반도체) 부문에 6만 7000명의 기술자, 컴퓨터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경제 전체로는 그런 노동자들이 140만 명이나 모자랄 것으로 추정했다. 매년 미국에서 엔지니어링 분야 학부 전체 졸업생이 7만 명 정도 배출되므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건 분명하다. 그런 상태에서는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이 완공되더라도 고비용과 저생산성의 진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TSMC, 미국 공장건설 노동자 훈련시킬 기술자들 파견
세계 최대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인 대만의 TSMC(Taiwanese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대만반도체제조회사)는 피닉스에 400억 달러를 투자해 두 개의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들만 제대로 가동되면 칩 생산의 선두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은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TSMC는 지난달 원래 2024년에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던 계획을 2025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이테크 장비를 설치할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노동자 부족 때문이었다. 마크 류 TSMC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만에서 미국 직원들을 훈련할 전문 기술자들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에 나온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주, 그리고 지역 차원의 대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고, 마이크로전자공학 로비그룹 SEMI 파운데이션 쪽은 정치인, 관료, 기업들, 대학과 학생들을 하나로 엮어 협력하게 하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는 TSMC의 사례가 보여주듯 가장 긴급한 반도체 제조업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건설 노동자 10만 명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이들을 양성하는데 TSMC가 대만에서 파견할 전문 기술노동력이,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실보다는 득이 더 많다고 상무부는 판단하고 있다. 대만 기술자들로부터 훈련을 받은 노동자들이 다른 팹(파운드리 공장) 건설에도 활용되는 연쇄적인 확대재생산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2년 걸리는 숙련 노동자들 양성 열흘만에 단기속성
그렇게 해서 팹이 건설되면 그 다음엔 도구를 사용하고 생산물을 조사하는 등 그것을 운영할 숙련된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그런 일에 필요한 기술 노동자들을 양산하는데는 커뮤니티 칼리지(초급대학)나 직업학교에서 2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립돼 있다. 기업과 교육자들은 이를 대폭 단축하는 속성 코스로 실험을 시작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기술자들을 단 열흘만에 양성해 내는 애리조나 마리코파 코퍼레이트 대학과 오리건의 포틀랜드 커뮤니티 칼리지의 속성 프로그램이다. 미국 최대 칩 제조업체 인텔이 지원하는 포틀랜드 칼리지는 주당 500달러의 수당을 참여학생들에게 지급하며, 애리조나 마리코파 칼리지는 학생들에게 TSMC와의 취업 면접을 보장한다.
1년짜리 ‘취업준비 완료’ 프로그램
하지만 단지 열흘 간의 속성 훈련을 받은 기술 후보생들을 팹의 수백만 달러짜리 기계 앞에 배치하려는 업체가 있겠는가. 이보다 더 현실적인 목표는 반도체 경력에 대한 야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인텔은 2년짜리 코스보다는 속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여성과 마이너리티(소수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 중간적인 형태의 선택지도 있다. 인텔이 공장 2개를 짓고 있는 오하이오의 콜럼버스 주립 커뮤니티 칼리지는 이번 가을에 이 업종 최초의 1년짜리 프로그램을 제시할 예정이다. 오하이오 주가 학생들이 인텔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준비를 완료”하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동’ 엔지니어 양산 프로그램
그 다음 단계는 그 노동자들을 운용할 엔지니어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인근에 건설 중인 주요 공장들이 있는 애리조나와 오하이오 주를 비롯한 지역들의 대학들은 엔지니어링과 물리학 학위에 반도체 코스를 포함시켰고, 인디애나 주 퍼듀 대학은 지난해 학부와 대학원생들을 위한 반도체 학위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퍼듀 대학의 ‘연구실-팹’(lab-to-fab) 모델은 명백히 기업들과의 더 긴밀한 협력을 겨냥하고 있다. 4900만 달러짜리 ‘청정실’ 업그레이드의 일부로 퍼듀 대학 학생들은 일반 상업회사에서 만나게 될 조건과 재료들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받게 되며, 반도체 오염을 막기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덮어 쓰는 토끼복 같은 방진복 착용 기회도 얻게 된다.
학생들에 1만 달러 지급하는 8주 코스
올해 여름 퍼듀 대학은 참여 학생들에게 1만 달러를 지급하는 8주짜리 코스를 신설했다. 여기에는 가능성 있는 인력들이 실리콘 밸리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 끌어들이려는 기업들이 돈을 댄다. 퍼듀 대학 남서단에 있는 산업공원에 미국의 칩 파운드리 스카이워터가 20억 달러짜리 팹을 건설하는데,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일어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교실, 거기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면 인턴실”식의 완벽한 ‘산학협동’을 구현하게 된다고 멍치앙 퍼듀 대학 총장은 말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인텔의 가브리엘라 크루즈 톰슨은 인텔은 이 속성 코스에 100여 명 정도가 신청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약 900명이 등록했다고 말했다. 최근 졸업생들을을 위한 취업 플랫폼인 핸드셰이크는 5월에 반도체 회사 풀타임 취업 신청자가 지난해에 비해 79% 늘었다며, 이는 19%에 그친 다른 분야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고했다. 비제이 라구나탄 퍼듀 대학 교육책임자는 이를 두고 “학생들이 칩이 새로운 석유(oil)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반도체 제조 기반 미국내 재구축 목표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기술자들을 양성하지 못했다.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약 40%는 이민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비자 프로그램을 통해 엄격한 제한 속에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허용 상한선을 정해 놓은그런 제한은 경직돼 있어서 지금처럼 관련 산업이 확장하면서 제한은 결과적으로 더욱 강화된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우파 정치인들은 비자 개방 자체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20여년간 그런 기술자들을 해외에서 아웃소싱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점점 더 전문화된 소수의 기술노동력이 양성되는 노동분업이 이뤄졌다. 그들은 퀄컴, 앤비디아 등의 첨단 칩 개발과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고임금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메이드 인 미국”의 제조업 대국 미국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반도체를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전략물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대에 여전히 가장 힘이 센 미국은 이런 판세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첨단 핵심 반도체의 국제적인 공급망을 해체하고 주요 첨단 반도체들을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미국 정치의 주문이다.
미국은 이제 웨이퍼를 칩으로 잘라내고 그것을 단단한 플라스틱 케이스로 패키징하는 기본기술을 다시 배우면서 낮은 단계의 산업기반을 재구축하려 한다. 이를 위해 대학들도 바뀌고 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좌초 자산’ 피하고 자급자족적 북미통합체제로
<포린 폴리시> 기사는 이와는 좀 다른 시각에서 물과 노동력 부족문제를 다뤘다. 특히 물부족과 관련해 이 잡지 기사는 2015~19년에 자체 물 소비가 70%나 늘어난 TSMC 같은 업체를 물도 재생에너지 기반도 부족한 애리조나 같은 지역에 끌어들이는 것은 물과 노동력, 그들이 거주할 주택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유럽의 정부들은 기업 투자가 가져다 주는 단기 이익과 그것이 더욱 악화시킬 기후 스트레스 어느쪽이 더 득이 될지 조심스럽게 저울질하고 있고, 일부 유럽 지방들은 데이터 센터 같은 물과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의 개발을 막아 버렸다.
<포린 폴리시> 기사는 물과 노동력이 부족한 ‘좌초 자산’들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이 풍부하고 기후 복원력(탄성력)이 강한 지역들에 투자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미국 북서부 또는 북동부 해안지대, 미시간이나 오하이오 등 5대호 주변에 투자하거나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이민 노동자들을 유입하기도 쉬운 캐나다, 그린랜드 등과 자급자족적인 북미 통합체제를 만드는 쪽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