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친인척 비리 엄단' 외치던 언론 다 어디갔나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에도 조선·중앙 조용

문 정부 땐 대통령 가족 먼지털이식 보도하더니

윤 대통령 부인·장모·일가 숱한 의혹에도 '입꾹닫'

확증편향? 권력 눈치보기? 언론신뢰 말할 수 있나

2023-07-24     김성재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➀ “대통령 가족 문제는 숨기려고만 해선 안됩니다. 밝힐 건 밝히고 알릴 건 알려야 합니다…지금까지 대통령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쳤고, 결국엔 드러났습니다.”

➁ “이 정부 어디에도 대통령 주변을 감시하며 경고음을 보내는 ‘워치도그(watchdog)’가 보이지 않는다...역대 대통령 모두 친인척·측근 비리로 퇴임 전후 성치 못했다…미리 막지 않으면 비극은 피할 수 없다.”

➂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의혹이 쏟아진다…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권력형 비리’의 냄새가 널리 풍긴다…당사자들과 권력 실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말한다. 과거에 여러 차례 경험했던 국가 최고 리더십의 붕괴 과정이 데자뷔처럼 어른거린다."

위의 글은 언제, 어느 매체에 난 것일까? 며칠전(지난 21일)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가 법정구속됐다. 그렇다면 이 글은 대통령 친인척(장모) 비리가 터져 나온 윤석열 대통령에게 던지는 언론의 경고문인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과 2021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쓴 칼럼과 사설들이다.

(➀은 2021년 3월12일자 조선일보 이동훈 칼럼 ‘문준용, 문다혜, 그리고 대통령 처남’, ➁는 같은해 1월19일자 조선일보 배성규 칼럼 ‘달님을 향해 짖는 부엉이가 없다’, ➂은 2019년 12월3일자 중앙일보 사설 ‘대통령 주변 인물 비리 어물쩍 덮을 생각 마라’)

문재인 정부 당시 언론은 대통령 친인척 문제를 집요하게 보도했다.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 옷이 사치스럽다, 아들이 코로나19 피해지원금을 받았다, 딸이 해외 이주한 배경을 밝혀라 등등 의혹 보도가 줄을 이었다. 심지어 손혜원 전 의원이 김정숙 씨와 대학동창이어서 특혜를 입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퇴직금 50억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 곽상도 의원 등 국민의힘 측이 제기하면 언론은 이를 마구 받아쓰기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혹은 실체가 없거나 과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언론에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랬던 언론이 얼굴을 싹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 너무나도 조용하다. 윤 대통령 친인척 비리 의혹은 당선 이전부터 계속 제기되어 왔다. 법정구속에 ‘억울해 자살하겠다’고 악을 쓴 장모 최은순씨는 과거 요양병원 부정개설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적이 있다. 해외에서 무기징역 정도의 중범죄에 해당된다는 주가조작 혐의는 검찰이 수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미온적이다. 얼마 전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최근에는 최은순 씨 일가가 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주가조작을 비롯해 학력·경력 위조 등 배우자인 김건희 씨 의혹도 만만찮다. 

최근 불거진 특활비 과다사용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 본인, 부인 김건희씨, 장모 최은순씨가 모두 비리의혹을 사고 있다. 국민들은 ‘본·부·장’ 비리 의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언론에서 ‘김건희’ ‘최은순’은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김건희씨가 자주 등장하는 경우는 윤 대통령 해외순방길의 전용기 앞, 해외정상들과 만나는 장소의 앞자리, 에코백을 든 모습의 사진을 통해서다. 2주 전 리투아니아 방문 때 명품쇼핑 논란에도 언론에서 ‘김건희’는 보이지 않았다. 양평고속도로 특혜 비리 의혹에도 언론은 ‘정쟁’ ‘백지화’ ‘원희룡’이 키워드였을 뿐, ‘김건희’라는 이름은 제목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최은순씨가 법정구속된 21일 이후 언론은 이 사안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이 다뤘을까? 기사검색 사이트 ‘빅카인즈’에서 최은순씨가 법정구속당한 지난 21일 금요일부터 주말·휴일을 거쳐 24일 월요일 오전까지 ‘최은순 AND 법정구속’ 검색어로 기사를 찾아봤다. 검색대상 매체는 10개 종합일간지, 5개 경제지, 3개 지상파 방송과 1개 뉴스전문채널 등 19개 매체다. 검색된 기사는 총 58개로, 대부분의 기사는 법정구속 사실을 ‘속보’로 알리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이후 추미애·송영길 전 대표 등 민주당 측 인사의 논평을 받아쓴 기사다.

조선일보는 ‘속보’ 1건, 중앙일보는 ‘속보’ 2건과 민주당 측 반응 2건이 전부다. KBS는 단 한건도 없고 MBC, SBS도 ‘속보’ 2건이다. 최은순씨 법정구속 사안을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로 확대해 다룬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한겨레, 경향신문, 동아일보만이 24일자 사설에서 다뤘다.

‘윤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 사과하고 특별감찰관 임명해야’(경향), ‘현직 대통령 장모 법정구속, 대국민 해명·사과도 없나’(한겨레), ‘항소심 판결이 엄중히 밝힌 최은순씨 법정구속 사유’(동아)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지난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대통령 친인척 비위를 상시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을 부활하겠다고 한 사실을 보도하고 사설까지 냈다. 그러나 그 약속 1년여 만에 윤 대통령 최측근 친인척인 장모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정구속까지 당해도 ‘특별감찰관’ 약속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다.

‘윤 “특별감찰관 부활”…가족측근 비리 엄단이 공직기강 초석’(동아일보, 2022년 3월15일 사설), ‘윤, 5년 공석 특별감찰관 임명 방침, 자신에게 엄격한 대통령 되길’(조선일보, 같은 날 사설), ‘민정수석실 폐지, 특별감찰관 임명…비정상의 정상화다’(중앙일보, 같은 날 사설)

 

전임 대통령 재임기간인 불과 3~4년 전엔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해 ‘어물쩍 덮을 생각 마라’ ‘퇴임 전후로 성치 못했다’ ‘리더십 붕괴’라고 경고하고 겁을 주던 언론들이 지금은 얼굴을 싹 바꿨다. 마치 손도 안대고 순식간에 가면을 바꿔치기하는 중국의 신비로운 전통공연 ‘변검’을 보는 것 같다.

언론은 흔히 시민들에게 ‘보고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훈계하고 비판해왔다. 언론이야말로 보고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확증편향 증세가 더 심한 것 아닌가? 일본 핵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서도 겨우 2년여만에 말을 바꿨다. 이번에 김건희-최은순 게이트 의혹에 대해서도 언론은 눈과 귀와 입을 다 닫아 버렸다. 확증편향 탓인지 권력 눈치보기 탓인지 모르겠으나, 이러고도 언론이 신뢰회복을 말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변검(變臉)을 하는 중국 전통복장의 배우. '뺨이 바뀐다'는 뜻을 가진 변검은 중국 쓰촨성 지방의 전통극 천극(川剧)에서 볼 수 있는 연기 기법으로 가면에 손을 대지 않고 순식간에 휙휙 바꾸는 가면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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