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 '안락사' 절대 안돼

2020년에나 지금이나 정치여건상 최상의 선거제도

2023-06-27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2023년 선거제개편논의의 최대 미스테리는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한 언급이나 평가가 전혀 없이 진행된다는 데 있다. 2020년 개정선거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거론하는 것은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는 일종의 금기가 아닌가 싶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3년 선거제개편논의는 2020년 개정선거법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안락사 시키자는 암묵적인 여야합의 위에서 진행된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본인 주도로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2020년 개정선거법을 한 번도 시행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넣기로 국힘당과 암묵적 합의를 하고 지금의 선거제개편논의를 하고 있다면 민주당은 국민을 상대로 '거대한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다당제전환효과에서 제일 낫다

현행 50%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서 한 석도 건지기 어렵지만 3%가 넘는 전국단위 정당득표율을 올리는 제3정당에게는 병립형 비례대표의석을 150석으로 늘린 효과를 갖는다. 정당득표율을 10% 올린 정당은 15석, 4% 올린 정당은 6석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의원정수나 비례의석을 한 석도 늘리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병립형 비례의석을 47석에서 150석으로 늘린 놀라운 효과를 낸 바로 그 지점에 현형 50% 연동형의 장점이 있다. 지역구에서 한 석도 못 건지는 정당이라도 시대정신과 국민생활이 요구하는 명확한 정강정책을 갖고 있어서 정당투표에서 3% 이상 득표율을 올린다면 5석을 얻을 가능성이 열린다. 만약 봉쇄조항을 2%로 낮춘다면 정당득표율 2%로도 3석이 가능해서 소수민심이 국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 서울본부, 5개 진보정당 관계자들이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 3~4인 선거구 확대와 비례대표 대폭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2021.11.23

 

현행 혼합연동형비례대표제는 전국단위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비례성을 도모하고 정당책임성을 강화하며 다당제로 가는 길을 여는 등 비례대표제의 모든 장점과 기대효과를 발휘한다. 동시에 지역구선거를 소선거구제로 치르기 때문에 소선거구제의 장점인 지역대표성과 유권자효능감, 의원책임성도 최고로 확보할 수 있다. 10석 안팎 대선거구 비례대표제에서는 모든 선거구에서 고르게 7,8% 정당득표율을 올려도 단 한 석을 만들어내지 못할 제3정당이 현행 혼합연동형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득표율 5%만 올려도 7,8석이 가능해서 다당제로 이행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연동형비례대표제, 사표발생은 똑같지만 불비례성이 줄어든다

현행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이전의 혼합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사표발생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혼합연동형이든 혼합병립형이든 유권자에게는 두 장의 표가 주어진다. 하나는 지역구선거에서 지지후보 1인을 찍을 표, 다른 하나는 지지정당을 찍을 표다. 혼합연동형이든 혼합병립형이든 똑같이 소선거구제로 지역구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여기서 2위 이하를 찍은 모든 표는 사표가 된다. 정당투표의 경우 봉쇄조항에 걸리는 3% 미만 표심만 사표가 되고 나머지 표는 사표가 되지 않고 비례적으로 대표되는 것도 똑같다.

사표발생의 관점에서만 보면 똑같지만 정당투표결과인 정당득표율이 혼합병립형에서는 비례대표의석을 나누는 데만 사용되는 반면 혼합연동형에서는 전체의석을 나누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 덕에 혼합연동형은 혼합병립형과 달리 소선거구제의 정당득표율 대비 불비례성을 교정하는 추가효과가 있다. 다만 현행 혼합연동형이 정당득표율 대비 초과의석으로 드러나는 불비례성을 그대로 방치하고 부족의석으로 드러나는 불비례성을 절반만 잡아주는 건 분명한 한계다. 비례성을 최대로 보장하려면 위의 이중한계를 풀어야한다. 정당득표율 대비 정당의석수의 비례성을 강화할수록 정당 간 정책경쟁이 치열해지고 패거리정당이 정책정당으로 바뀌는 시간이 단축된다.

공론조사결과도 혼합연동형비례대표제를 지지한다

5월 13일자 공론화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시민참여단은 소선거구제가 대량사표를 발생시키는 사실을 숙지한 상태에서도 56%가 중선거구제나 대선거구제에 비해 소선거구제를 선호했다. 특히 우리 국민은 전국, 권역, 시도 등 초광역대선거구 단위나 6~12인 광역대선거구 단위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모든 의원을 뽑는 순수비례대표제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공론화 설문조사결과는 시민참여단의 고작 4%만이 대선거구제를 찬성했다고 열려준다. 그것도 숙의 전 8%에서 더 줄어들었다. 숙의시간 부족도 한몫을 했겠지만 그만큼 우리유권자들이 직접 뽑는 맛, 투표효능감을 중시한다고 봐야한다.

현행 혼합연동형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제 바탕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책임성과 유권자효능감 관점에서 바람직한 건 틀림없다. 지역대표성에도 좋다는 주장이 있지만 인구밀집 도시지역은 생활권이나 행정구역과 상관없이 인구수로 나눠서 소선거구를 유지하고 인구소멸 농촌지역은 2~4개 군을 묶어서 소선거구를 유지하기 때문에 소선거구 지역대표성의 적실성은 날로 떨어진다. 현재의 조건에서 지역대표성을 강화하려면 오히려 시도별 단일선거구나 권역별 단일선거구, 최소한 도시별 단일선거구가 필요할 것이다. 도시지역의 2~4인 중선거구나 농촌지역의 광역소선거구로 지역대표성을 확보하겠다는 도농복합안은 이도저도 아닌 방안이다.

비례의석과 의원정수 늘리지 않고 연동률 100%로 안 가도 괜찮다

독일식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100% 연동률을 적용하면, 정당득표율 3%로도 9석이 확보되고 5%로는 15석이 확보되므로 다당제로 가는 길에 가속과 탄력이 붙을 것이다. 실은 100% 연동률이 정상이고 50% 연동률은 거대양당이 힘으로 억지와 횡포를 부린 결과다. 100% 연동률로 선거법을 개정하려면 거대양당의 당리당략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민의회에 맡기거나 제3당들의 지지율과 협상력 강화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후자는 촛불시민의 힘이 더 강해져야 가능하고 전자는 기득권포기의 정치적 결단에 따라 아무 때나 가능하다.

독일식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국구)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다수대표제의 장점을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절묘하게 혼합했다는 점에서 최상의 선거제도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의원정수와 비례의석을 늘려서 연동률을 강화하고 초과의석을 해소하며 개방명부제를 도입하는 등 보완해야 할 지점이 없진 않지만 현재의 정치지형과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급한 것은 아니다. 굳이 비례의석이나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아도 현행법상의 비례대표의석 47석마저 현재로서는 제3당들이 가져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힘의 논리가 부과한 모든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2019년 당시나 2023년 현재의 정치여건과 역학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한 최대치의 개혁선거제라는 후한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 획기적인 개혁입법을 만들어놓고도 방어적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결국 완전히 무력화하는 데 일조했던 민주당이 지금은 아예 안락사 시키는 데 동조한다면 민주당은 지독하게 반개혁적인 '반동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국힘당이 반대해 어쩔 수 없다고? 게임 룰을 주전선수들 합의로 정하는 것 봤나?

민주당은 국힘당이 펄펄 뛰며 반대하기 때문에 2020년 개정선거법을 고집할 수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2019년 12월 선거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국힘당이 불참하며 반대의사를 표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심한 사례도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의 중선거구제를 지금의 소선거구제로 돌려놓은 개정선거법안은 당시 노태우정권의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1988년3월 8일 공화당과 손잡고 날치기 처리한 결과였다. 이런 전례를 볼 때 민정당의 후신인 국힘당은 선거제는 게임의 룰이라 선수들이 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자격이 없다.

더욱이 게임의 룰을 주전선수들이 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린 주장이다. 게임의 룰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선수 본인과 소속팀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선수들이 게임의 룰을 정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제척사유가 된다. 지금처럼 선수(정당) 중에서도 주전선수들(거대양당)만 모여서 정하는 건 더 안 된다. 주전선수들한테만 유리한 게임의 룰이 나오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선수들이 정하면 선수이익만 보호해서 안 되듯이 선거법도 국회의원이 정하면 국민과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소속정당의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안 된다. 결과적으로 원내 거대정당의 이익이 지나치게 반영되고 원내 군소정당이나 원외정당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해서 안 된다. 선거제는 게임의 룰이라 여야합의가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헌법과 법률은 거대양당에게 이런 비토권을 부여한 바 없다. 선거법개정에 거대양당의 하나가 아무리 반대했더라도 그 때문에 선거법개정이 무효가 되진 않는다.

선거법개정을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2020년 선거법개정 당시 민주당은 123석밖에 가지지 못한 소수당이었다. 소수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원내교섭단체인 중도야당 2개와 원내교섭단체가 아닌 진보야당 1개와 어렵사리 과반수(60%) 선거제개혁연합을 결성해서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낸 일대개혁입법이 2020년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 전환입법이었다. 국힘당은 자당이기주의를 발동하여 시종일관 입법과정 자체를 보이콧했지만 2020년 개정선거법은 보기 나름으로는 이상적인 입법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서 가까스로 태어난 귀한 옥동자였다.

과연 이런 경우에도 국힘당이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게임의 룰을 개정해서 무효라고 비난할 자격을 가질까. 절차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 없었고 내용적으로도 민주당에 편향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 거대양당의 하나로서 국힘당이 가질 법한 정당한 이익은 같은 거대양당의 하나인 민주당에 의해 입법과정에서 모두 반영됐다. 그 결과가 거대양당의 초과의석은 그대로 놔두고 군소정당의 부족의석을 50%만 채워주기로 한 준준 연동형이다. 그럼에도 소선거구를 그대로 놔둔 채 병립형비례대표제를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전환함으로써 비례대표성을 현저히 높이고 다당제의 문을 열어놓은 2020년 개정선거법은 정당민주주의의 정치이성을 한 차원 높이고 국민의 정치소외를 한 차원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개혁입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위성정당금지입법으로 2020년 개정선거법을 살려내는 게 대의다

시민의회에 맡겼으면 몰라도 20대 국회가 선거제개편을 맡았던 이상 당시의 정치역학관계에서 도출될 수 있는 최대치의 개혁입법이 2020년 개정선거법이었다. 민주당은 다당제 정치개혁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며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옥동자를 이제 와서 사생아 취급하며 안락사 시키라는 국힘당의 요구에 눈길도 줘서는 안 된다. 위성정당금지조항을 만들어서 현행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살려내고 본래 의도대로 옥이야 금이야 키워서 반드시 다당제 정치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민주당에 묻는다. 아무 일도 안하는 ‘좀비 공수처’를 만들어내고 방치한 데 이어 정녕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 안락사 시킬 생각인가? 그렇다면 2019년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개정선거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국회를 통과시킬 때 가졌던 입법목표가 이미 달성되었다는 뜻인가? 그게 아니라면 2019년 선거법개정이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는 뜻인가? 아니다. 실은 지금처럼 진행되는 2023년 선거법개편작업이 '거대한 사기극'이다. 민주당이 위성정당금지를 입법하고 2020년 개정선거법의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되는데 모르는 척 딴 짓을 하기 때문이다.

총선 과반수의석 확보가 대의라서 어쩔 수 없다고?

여기서 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2020년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불비례성이 완화되면서 민주당이 단독과반수의석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질 텐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정색을 하고 물을 것이다. 나아가서 지금은 민주당이 단독과반수의석을 확보해서 윤석열정권을 제대로 제어하라는 것이 대의의 요구이지 의석수 손실을 감수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굳이 살리라는 것이 대의의 요구가 아니라고 훈계하려 들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주장에는 기회주의적 변신의 자기변명이 있을 뿐 원칙을 지키기 위한 진정성과 사즉생의 역설에서 오는 감동이 전혀 없다. 국민이 애타게 보고 싶은 정당의 모습은 단기이익을 쫓아 기회주의적인 변신을 일삼는 모습이 아니라 손해가 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다. 기회주의적 속셈은 타인에게 간취되면 단기이익을 능가하는 손실로 돌아오지만, 손실을 무릅쓴 원칙준수는 타인에게 알려지면 보상을 부르는 법이라 금세 손해가 만회된다.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강화하려면 기득권 내려놓기 등 자기희생이 선행되어야한다.

단독과반수의석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불비례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폐기하는 것보다 손해가 나더라도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고수하고 종합적 정치개혁에 나설 방침을 천명하고 그 덕분으로 지지율을 올려서 지지율만으로 단독과반수의석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이게 정도이다.

끝으로 민주당에 경고한다. 마치 여야가 새로운 선거제 개편방안에 합의해야 할 것처럼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시민참여단의 84%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바꿔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는 식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말라. 그들은 병립형비례대표제를 바꾸자는 의견에 84%가 동의했을 뿐이다.

다시 경고하거니와 민주당은 이미 2019년 12월에 닦아놓은 탄탄대로를 외면하고 공연히 새 길을 찾아내야 하는 척 쇼하지 말라. 국민이 속아 넘어갈 것으로 오판하지 말라. 그것이 국민의 심판을 자초하는 길이다. 오히려 사즉생의 각오로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대의에 복무해서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라. 지금이 딱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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