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닥친 가계·기업 무섭게 늘어…은행 연체율 '초비상'
지난달 5대 은행들 신규 연체율 평균 0.09%나
지난해 0.04%의 2배 넘어…전체 연체율도 급등
기준금리 상승·경기둔화 영향 어려움 증가 영향
여신 건전성도 악영향…고정이하여신비율 '껑충'
상장사 17.5%가 한계기업…벌어서 이자도 못내
은행권에 연체율 비상이 걸렸다. 자금 대출을 받은 가계와 기업들이 오른 금리와 경기둔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계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준금리가 연속 금리 동결됐지만, 아직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한계 차주 증가로 인한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 경우 은행들의 여신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주어 금융권 전체의 불안정 요인이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19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5월 신규 연체율(잠정) 평균은 0.09%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의 신규 연체율(0.04%)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신규 연체율은 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을 전월 말 기준 대출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새로운 부실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5대 시중은행의 신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1∼7월 0.04%로 변동이 없다가, 8월 0.05%로 올라선 뒤 10월까지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후 지난해 11월 0.06%, 12월 0.07%, 올해 1월 0.08%, 2월 0.09%까지 크게 상승했다.
은행들이 분기 말 연체관리에 나서면서 신규 연체율은 3월 0.07%로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4월 0.08%, 5월 0.09%로 다시 2개월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5월 가계 신규 연체율이 0.08%로 1년 전(0.04%)의 2배였고, 기업 신규 연체율은 0.11%로 전년 동월(0.05%)의 2배가 넘었다. 가계와 기업 모두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연체율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하반기 들어 상승세로 전환한 뒤 올해 들어서도 오름세가 계속되고 있다.
신규 연체 증가는 은행 전체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5월 말 기준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평균 0.33%로 나타났다. 4월(0.31%)보다는 0.02%p, 전년 동월(0.20%)보다는 0.13%p나 올랐다.
5대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지난 1월 0.26%에서 2월 0.31%로 0.3%대에 진입한 뒤 3월(0.27%) 소폭 하락했지만, 4월(0.31%)과 5월(0.33%) 다시 상승세를 나타냈다.
5월 말 기준 가계와 기업대출 연체율은 각각 0.29%, 0.37%로 전달보다 0.02%p, 0.04%p 올랐다. 지난해 5월의 0.16%, 0.22%와 비교하면 각각 0.13%p, 0.15%p 상승했다.
연체율이 크게 오르면서 은행 여신 건전성도 크게 악화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5월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NPL)비율 평균은 0.29%로, 전달(0.27%)보다 0.02%p, 전년 동월(0.25%)과 비교하면 0.04%p 상승했다.
여신 건전성은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뉜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은행 총여신 중 부실채권을 의미하는 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이 차지하는 비율로, 은행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비율이 상승하면 그만큼 자산건전성이 나빠졌다는 표시다.
3개월 이상 연체 시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되는데, 통상 연체율이 상승하면 시차를 두고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올라가게 된다.
가계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5월 0.21%로 4월(0.19%) 대비 0.02%p, 전년 동월(0.16%)과 비교하면 0.05%p 상승했고, 기업은 5월 0.35%로 전월(0.33%)과 전년 동월(0.32%) 대비 각각 0.02%p, 0.03%p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이 크게 오르는 것은 기준금리 상승의 영향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지난 2021년 8월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해 2023년 1월까지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1년 반밖에 안되는 기간에 기준금리를 300bp(1bp=0.01%p)나 올렸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다.
이후 3연속 금리 동결로 일단 기준금리 인상 릴레이는 멈췄지만, 기준금리가 다시 인하될 시점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추가 인하된다면 한국도 기준금리 인하는커녕 인상을 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높은 기준금리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5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연내 인하 가능성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확실하게 2%에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기 전까지 인하 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경기둔화에 따른 기업 실적 부진도 연체율 상승의 원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의 17.5%가 한계기업으로 조사됐다. 한계기업이란 3년 연속 이자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많은 기업을 말한다.
상장사 한계기업 비중은 2016년 9.3%에서 2017년 9.2%로 다소 낮아졌다가, 2018년 11.2%, 2019년 13.7%, 2020년 15.2%, 2021년 16.5%에 이어 지난해에는 17.5%까지 높아졌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국내은행 가계대출 리스크 예측' 보고서에서 가계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지난해 4분기 0.18%에서 올해 말 0.33%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금액 기준 국내 은행의 고정이하가계여신은 지난해 말 1조 7000억 원에서 올해 말 3조 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