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역량 판이한 윤석열-마크롱…내일 파리 정상회담
대만 개입, 나토 동진, 대미 동맹관 모든 분야서 대조
대만 문제에 윤은 '적극 개입'…마크롱은 '거리 두기'
대미 관계도 일방적 맹종 vs 전략적 자율성 '극명'
윤, 엑스포 유치 부산 홍보에 철 지난 '6‧25 세일즈'
한국과 프랑스 정상이 파리에서 마주 앉는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이번 회담이 눈길을 끄는 것은 격렬한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그동안 두 정상이 너무나 상반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맹종'과 '반중국'으로 일관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역설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잡기'에 주력했다.
몇 가지 점에서 두 정상은 대비된다. 첫째는 '개입주의'다. 딱히 이해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는지 여부다. 윤 대통령은 간섭을, 마크롱은 불간섭을 추구한다.
대만 문제, 윤은 '적극 개입'…마크롱은 '거리 두기'
대표적 사례가 대만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이슈다. 두 정상의 접근법은 판이하다.
먼저 중국이 영토주권 차원에서 비타협적인 대만 문제에 마크롱은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미‧중 대립이 첨예한 대만 문제에 '제3자'인 유럽은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제에 맞게 발등의 불인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자는 얘기다.
마크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만 개입을 압박하는 주체가 미국임을 드러낸다. 그는 "유럽은 미국 의존도를 줄여 대만 관련 미‧중 대립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렵다고 우리가 미국의 추종자일 뿐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중국 국빈 방문 본행사를 마친 3월 7일 '프랑스 공군 1호기' 내에서 진행한 동행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였다.
윤 대통령은 정반대다. 대만 문제 개입에 적극적이다. 윤 정부는 작년 12월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 등을 통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극히 중요하며'(essential)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필수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윤, 대만 안보와 한국 안보 '동일시'…중국 자극
개입을 정당화하고자 대만의 안보를 한반도의 안보와 '동일시'함으로써 남의 일이 아니라는 '궤변'을 만들어낸 셈이다. 대만 유사시 한국군의 개입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정점은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4월 19일 보도된 윤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였다. 중국이 거듭 사정하고 경고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에 잘 보이고자 반중국 전선에서 행동대를 자청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윤 대통령은 중국-대만 갈등에 "힘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그런 변화에 절대 반대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 문제는 단지 중국과 대만 간의 이슈가 아니라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이슈"라고까지 했다.
중국이 거세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윤 정부 들어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최악인 상태다. 그 결과 한국의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다.
다 알다시피 품목은 반도체, 지역은 중국을 위주로 수출이 급감하고 사실상 1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 발언까지 겹쳐 더 나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윤 대통령의 개입주의 성향은 작년 2월 러시아의 불법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지원에서도 확인된다.
윤 정부는 그동안 구호 물품 등 인도적 지원과 초특혜 대규모 재정 지원, 지뢰 제거 장비와 긴급 후송 차량 등 비살상무기를 지원했으며 '포탄' 등 살상무기의 지원을 저울질하고 있다. '유럽의 일'에 과도하게 깊숙이 끼어들어 한‧러 관계도 위태롭다.
마크롱, 나토 '동진' 반대…윤, 나토 협력 강화
유럽의 군사협력 기구인 나토의 역할과 범위에 관한 접근법도 서로 다르다.
윤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세우며 나토와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11월 나토 브뤼셀 본부에 한국 대표부를 개설했다.
윤 대통령은 작년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 이어 다음 달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진행되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나토와의 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유럽의 안보 위기'에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토 파트너국은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개국이다. 나토는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따라 나토 파트너국 정부 및 군과의 '접촉거점'인 '도쿄연락사무소' 설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두고 중국은 '아시아판 나토'의 신호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마크롱은 나토의 동진(東進)에 반대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6일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한 콘퍼런스 연설에서 나토의 지리적 범위를 "북대서양" 너머로 확장해선 안 된다면서 "만일 나토를 압박해 그 범위와 지리를 확장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도 '서구의 공동안보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진출을 꾀하는 나토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나토 관할 지역 밖의 외국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사안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북대서양위원회에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만큼 프랑스가 끝까지 반대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 미국과 나토, 일본이 곤혹스러운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대조적 동맹관…일방적 상하관계 vs 전략적 자율성
둘째는 미국과 동맹관계를 대하는 태도다. 윤 대통령은 '70년 동맹'인 미국을 '절대선'이라고 맹신하면서 일방적 희생을 감수한 채 항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인플레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SA) 상 한국 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부당 대우와 미국의 용산 대통령실 도청 사건, 그리고 최근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사태 이후 미국 조야의 압박에 대한 '침묵'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게 없다. 거침없는 중국 비판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에 반해 마크롱은 전혀 다른 동맹관을 지니고 있다. 윤 대통령의 한미 동맹관이 수직적 상하관계와 같다면 그의 동맹관은 수평적인 파트너십에 가깝다.
마크롱은 대미 자주성 발언에 대해 미국과 유럽에서 날 선 비판들이 나오자 정면으로 대응한 데서도 확인된다.
그는 네덜란드를 찾은 지난 4월 12일 "동맹이 된다는 것이 우리 스스로 생각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동맹이 곧 속국"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가치=국익'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국익은 외면한 채 미국의 입만 바라보는 윤 정부의 '가치 외교'와는 딴 판이다.
윤, 엑스포 유치 부산 홍보에도 철 지난 '6‧25 세일즈'
윤 대통령은 미국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자유 세일즈'와 '6‧25 전쟁 세일즈'에 나섰다.
그는 17일 보도된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세력 간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와 평화가 위협에 처했다"면서 늘 그렇듯이 세계를 '이분법적 구도'로 나누고 프랑스 등 나토와의 공조 의사를 피력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프랑스의 6‧25 참전을 거론하며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한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싸운 프랑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2030년 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를 추진 중인 부산에 대해서도 "1950년 프랑스의 청년들이 전쟁 중인 한국을 구하기 위해 도착했던 바로 그곳"이라고 홍보해 '철 지난 인식'이란 인상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