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노동자 유족 "원희룡은 '기획분신' 발언 사과하라!"
'고 양회동 열사 장례식' 첫 날…범국민 추모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고 김용균씨 어머니도 참석
비정규직 노동자들, 구미에서 올라와 '연대 발언'
건설노조 "장례식 뒤 2차 총파업 돌입한다" 선언
"양회동 살려내라" "윤석열 사죄하라" 피의 절규
"다시 한 번 묻습니다. 동생과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할 생각이 지금도 없으십니까."
17일 분신노동자 고(故) 양회동 열사의 친형 양회선 씨가 '기획 분신설'을 주장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 한 말이다. 양 열사 사망 47일째이자 장례식 첫날인 이날,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범국민 추모제'에서 양 씨는 유족을 대표해 시민들 앞에 섰다. 추모제에는 15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노동자·시민·정당인·종교인 등이 참가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도 자리했다.
양 씨는 원 장관을 향해 "단 한 번이라도 시민,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낀 적 있느냐"며 "더 이상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와 싸우지 마십시오. 그 힘 가지고 힘 있는 사람하고 정의를 위해 한번이라도 싸우십시오"라고 외쳤다. 양 씨가 원 장관에게 이렇게 분노한 이유는 원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원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석연치 않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며 '기획 분신설'을 언급해 유족들에게 거듭 2차 가해를 했다.
양 씨는 "동생은 억울하게 구속되신 모든 분들도 함께 생각하며 (스스로를) 희생했다. 이렇게 안타깝고 가슴 아픈 동생의 죽음마저도 왜곡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계속 이렇게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저희 유가족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면서 "저희 같은 이런 슬픔과 고통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멈출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그는 "굳건하게 버티라고 저희 유가족에게 용기주시고, 아파하고, 눈물도 함께 흘리신 분들의 마음에 힘 입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동생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겠다고 또 다짐을 해본다. 정의는 승리한다"며 "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계속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김용균 씨 어머니 "아들 기억하듯 잊지 않을 것"
이날 추모제에서는 각계각층에서 추모사가 이어졌다. 이들은 양 열사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하면서도 양 열사가 유서에 남겼던 윤석열 퇴진과 노동자를 위한 세상 만들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 김건수 공동대표는 "노동조합이 없어서 온갖 갑질과 저임금 강요, 비정규 1000만 시대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던 양회동의 얼굴을 한번쯤 보고 싶다"며 "그런 양회동을 죽이는데 우리 청년들이 핑계거리를 하나 보탠 거 같아 참으로 분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이 시대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노조와 싸우는 대통령이 아니라 노조를 지키는 대통령이다"라며 "안전하고 존엄한 일터를 만들어 세대와 성별 관계없이 누구나 노동할 권리 지켜왔던 건설노조 편에 서겠다. 윤 대통령과 불평등과 싸워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용우 노동위원장은 "1799년 자본주의 초기 영국에서는 자본가들의 청원을 받아 단결금지법이 제정됐다. 노조결성을 봉쇄하고 쟁의행위 등 노조 활동을 형사처벌하는 악법이었다"며 "우리 건설노조와 노동 3권을 탄압하고 노동자들의 집회 탄압하는, 지금 이 시대가 200년 전 단결 금지법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저들은 헌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들의 헌법전에는 노동3권도 집회의 자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들은 법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저들의 법치는 법을 폭정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는 저들을 '법폭'(법조 폭력배)이라 부르겠다"며 "저들의 행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노동시민 사회가 연대해서 저들에게 책임을 묻는 조직활동을 지금부터 더 가열차게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김용균 재단 대표)도 추모사를 통해 연대 의지를 전했다. 김 씨는 "저는 2018년 (아들이) 산업재해를 당해서 장례를 치르고자 이 자리에 섰던 5년 전이 생각났다"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산업현장에서 너무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만신창이가 된 저를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동지들이 일으켜줬기에 진상규명을 해 아들이 잘못없음을 밝힐 수 있었다. 평생 그 감사함을 어찌잊을 수 있겠느냐"며 "양회동 동지도 어디선가 저의 손을 잡아줬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노동자가 정당한 노조활동을 통해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었다. 안전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힘써 온 동지들을 '건폭'이라 낙인찍은 윤석열 정부가 진짜 폭력배라 생각한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자신을 분신할 만큼 억울한 국가폭력이었다"고 절규했다. 이어 "양회동 동지 아픔을 아들 용균이를 기억하듯 잊지 읺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에서 올라와 연대 나눈 비정규직 노동자들
추모제에는 경북 구미에서 8년째 복직 투쟁 중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올라와 연대했다. 아사히글라스는 지난 201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 문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이들은 이날 투쟁 8년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연기하고 추모제에 참가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차헌호 지회장은 함께 온 노동자를 대표해 발언했다. 차 지회장은 "양회동 열사와 저는 동갑"이라며 "양 열사는 15살 쌍둥이 자녀가 있고, 저도 두 딸이 있다. 양회동 동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쌍둥이를 두고서 어찌 그런 선택을 하셨느냐"고 참담해 했다.
차 지회장은 "양회동 동지는 살아 남은 우리가 온전히 투쟁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을 희생했다. 열사는 우리 노동자들을 믿고 자신을 던졌다"며 "그런데 우리는 열사의 바람만큼 간절함이 있는지, 절박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열사의 죽음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잘 싸우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분열되고, 전체 조합원 수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은 약해졌다"며 "열사가 원하는 것은 살아 남은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세상을 뒤흔드는 거침없는 투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 열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싸워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외쳤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2지대 서동진 부지대장은 눈물을 흘릴까봐 걱정된다며 선글라스를 끼고 나왔다. 양 열사는 생전에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었다. 열사와 가까운 사이였던 그는 "회동이 형은 저한테 장난기 많고 착한 형이었다"며 " 작년 2월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강원도에서 함께 쭉 웃어보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서 부지대장은 "회동이 형 유언대로 우리가 꼭 승리해서 담배 한 개비 소주 한 잔 안식처에 올려주면서 편히 쉬라고 말할 수 있게끔 동지 여러분, 시민 여러분들이 한번 소리낼 때 크게 소리내 주시고 한 번 팔뚝질할 때 힘차게 해서 사랑해주는 사람들, 우리를 위한 사람들을 잃지 말자"고 호소했다.
"건설노조, 양회동 장례식 이후 2차 총파업"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은 "건설노조는 양회동 열사 장례를 잘 마무리하고 2차 총파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총파업을 통해서 자본과 권력이 우리 건설 노동자들을 지금까지 일용 노동자로 삶을 살게 했던 부분을 바꾸고, 이 사회가 불평등이 없는 사회로, 정규직·비정규직 없는 사회로, 노동자가 땀흘려 일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데 건설노조가 가장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7월 총파업으로 투쟁 깃발을 더욱 단단하고 더욱 높게 들겠다. 더 많은 민중과 연대하고 힘을 모아 맞받아쳐 싸우겠다. 그래서 양회동 영전에 우리가 이겼노라고 양회동이 옳았노라고 우리가 지켰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싸워나가자"며 "그것이 양 열사 뜻을 지키는 길이라 확신한다. 이 자리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힘차게 싸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추모제는 추모사나 연대발언 외에도 봄날 합창단과 가수 박준의 공연, 한국민족춤협회 서정숙 이사장의 추모 춤사위가 이어졌다. 또 양 열사 유서 낭독 영상과 동료들이 고인에게 쓴 편지글 영상도 소개됐다.
시민들은 추모제를 마친 뒤 세종대로 사거리(광화문역 사거리)에서 종각역, 종로 4가를 지나 양 열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행진했다. 양 열사의 영정을 든 건설노동 조합원이 행진 대오 앞에 섰고, 이어 양회선 씨와 장옥기 위원장 등 상주단과 정당 대표, 시민사회 대표, 노동자·시민들이 뒤를 이었다.
시민들은 "열사의 염원이다 건설노조 탄압 중단하라" "양회동을 살려내라" "원희룡은 사퇴하라" "윤희근을 파면하라" "윤석열은 열사와 유족 앞에 사죄하라" "윤석열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다만 이날 행진은 추모 행진인 만큼 구호는 최대한 자제하고, 시민들에게 양 열사의 분신을 알리는 방송을 하거나 음악을 틀었다.
추모제에 참가한 노동자와 시민들은 행진을 마친 뒤 추모리본에 추모 글을 써서 장례식장 벽에 붙인 뒤 집단 분향했다. 경찰은 이날 11개 기동대 7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추모제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장례기간 매일 열린다. 18일은 오후 6시 30분, 19일과 20일은 오후 7시에 진행될 예정이며, 지방에서도 추모제가 열린다. 발인이 있는 21일에는 오전 8시 발인 미사 뒤, 오전 11시 경찰청 앞에서 노제, 오후 1시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거행한다. 이후 장지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모역에서 하관식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