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라는 이동관 주장이 말이 안 되는 이유
학폭 피해 진술서 매우 구체적인데 '쌍방 폭행'?
피해 학생 4~5명, 진술 2명…1명 '화해'만 강조
"처벌 내려질지 의문" 토로, '원치 않는 화해'였나
검찰총장 출신 김각영, 하나고 이사장으로 부임
담당 검사 손준성‧김도균…결국 무혐의 '면죄부'
아들, 고려대 수시…"생기부 기재됐다면 불합격"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8일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 '무책임한 폭로와 가짜뉴스'라고 반격하며 야권과 언론에 엄포를 놨다.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반드시 오르겠다는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쯤에서 이 특보를 직접 등판시켜 여론 흐름을 간보려는 대통령실의 의중이 깔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특보의 해명 및 반박은 많은 부분 사실을 호도하거나 은폐하고 있어 민심이 뜻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특보가 아무리 윤심(尹心)을 등에 업고 친윤 어용언론들의 지원사격을 받아도 고위층 자녀의 '학폭' 문제는 이제 국민들에게 다이너마이트 같은 사안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심의 뇌관에 불을 붙여 기어이 폭발시키는 모험을 끝까지 감행할 수 있을까. 정권 입장에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방송 장악'이 그보다 더 장기적으로 중요하고 여론은 오래 못 가 망각의 늪에 빠지는 법이라고 판단하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가 어떻든 임명을 밀어붙일 것이다. 이 특보도 그런 시나리오 아래 전면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특보는 이날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사실관계를 떠나 제 자식의 고교 재학 중 학폭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야당 대표까지 나서 무차별한 '카더라'식 폭로를 지속하고, 이것이 왜곡·과장돼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상황에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직접 나선 이유를 밝혔다.
무엇이 '카더라'식 폭로인지와 관련해 그는 우선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른바 '진술서' 등을 토대로 심각한 학교폭력이라고 유포된 내용은 근거가 희박하며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학폭의 실체 자체를 부인했다. 이 사건은 이 특보 아들이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하나고 학폭 사건의 가해자였고 1년여간 괴롭힘을 당한 피해 학생이 4~5명이라는 내부 교사의 증언이 있었으나, 학교 측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도 열지 않고 공식적인 조사·징계 절차 없이 가해 학생을 조용히 전학시켰다는 내용이다. ☞ 시민언론 민들레 6월 3일 보도 <언론 장악에 아들 학폭까지…"이동관 절대 불가"> 참조
피해 학생들의 진술서에 대해 이 특보는 "2011년 1학년 재학 당시 '자녀 A'와 '학생 B' 상호간 물리적 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일방적 가해 상황은 아니었고 인터넷 등에 떠도는 학폭 행태는 사실과 동떨어진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1학년 당시 당사자 간에 이미 사과와 화해가 이뤄졌다"면서 "학생 B는 주변 친구들과 언론 취재기자에게 '사실관계가 과장됐고, 당시에도 학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고 했다. 나아가 "자녀 A와 학생 B는 고교 졸업 후에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친한 사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진술서들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학생들이 '내가 이렇게 구타를 당했다'고 직접 작성한 것인데 "당시에도 학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특보 아들은 왜 전학을 갔다는 것인가. 게다가 이 특보는 '상호간 물리적 다툼'이라고 해 '쌍방 폭행'인 것처럼 묘사했다. 역시 진술서들 내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이 특보는 '학생 B'만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 사건 피해 학생은 4~5명에 달하고 진술서를 쓴 학생도 2명이라 사태를 축소하려는 시도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진술서에서 "친구가 너무 많이 구타 당하고 힘들어해서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큰 처벌 없이 넘어갔다. 저희의 진술만으로 강력한 처벌이 내려질지 의문을 품고 있다"고 토로한 대목은 이 특보가 이명박 정권 실세였기 때문에 교사나 학생들이 상당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원치 않는 화해'였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이 특보가 "당시 학교 선도위원회 결정으로 자녀 A에 대해 학기 중 전학 조치가 내려졌다"면서 "자사고 재학생이 일반고로 전학 가게 될 경우 학교의 커리큘럼이 완전히 달라 대학 입시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과 이에 대한 우려가 커 A의 학부모는 1학기 이수 후에 전학 조치를 요청했으나 학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학부모는 이의제기 없이 이를 수용했다"고 해명한 부분은 거꾸로 이 특보 아들이 일방적 가해자였음을 학교 측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 특보는 또 학폭위가 열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가해 학생이 즉시 잘못을 인정해 피해 학생에게 화해를 요청하고, 피해 학생이 화해에 응하는 경우 담임교사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학폭위를 열지 않은 것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3조 위반 사항에 해당한다. 이 법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발생한 사실을 신고받거나 보고받은 경우'(제13조 2항) 학폭위 위원장은 반드시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2020년 3월 1일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에 따라 각급 학교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폐지되고, 각 교육지원청 단위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대체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5년 11월 16일 이 특보 아들의 학폭 사건을 인지하고도 학폭위를 열지 않은 혐의(업무 방해)로 하나고 교감을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검찰이 1년을 끌다 무혐의 처분한 사실을 들어 이 특보는 '무죄 판명'을 강조했지만 정치검찰의 평소 행태를 볼 때 의도적으로 사건을 덮고 면죄부를 안겨줬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와 관련해 서동용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최초 고발 사건을 받은 검사는 그 이름도 유명한 손준성 검사이고, 최종 혐의없음 처분을 한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박근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수사를 했던 김도균 검사였다"고 지목했다.
이 특보가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 시절 '왕수석'이기도 했지만, 하나고 이사장인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또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이자 '금융 4대 천왕'(강만수‧어윤대‧김승유‧이팔성) 중 한 사람으로 정관계에 막강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서부지검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기 딱 한 달 전인 2016년 11월에는 무려 '검찰총장' 출신인 김각영 변호사가 하나고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림이 빤히 그려지는 것이다.
하나고 전경원 교사가 2015년 8월 26일 서울시의회 '하나고등학교 특혜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회의에 나와 "뒤에 청와대 이동관 씨 부인이 학교에 와서 '그 말을 교무회의 시간에 했던 교사들 명단을 적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한 부분에 대해 이 특보는 "전혀 사실과 다른 음해성 유언비어"라고 강력 부인했다. 당시 전 교사도 "이건 확인되지 않고 (다른) 선생님한테 들었던 얘기"라고 전제했던 만큼 이 특보 말이 맞을 수 있다. 이 특보는 "A의 어머니가 학교를 방문한 것은 당시 담임교사가 학교로 부른 데 따른 것으로 상황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담임에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상의를 한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이 특보 본인이 하나고 김승유 이사장과 통화하면서 압력 또는 청탁을 넣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사장과 당시 전화 통화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어찌 된 일인지 문의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나고 관계자 중 면식이 있었던 인사는 기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김 이사장이 유일했다"고 해 김 이사장과의 친분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아들의 학폭 사태를 맞아 이 특보가 과연 '문의'만 했을지, 김승유 이사장도 단순히 '교장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기'만 했을지는 몹시 미심쩍은 부분이다.
이 특보는 2019년 12월 MBC '스트레이트'가 하나고 의혹 편을 방송한 데 대해 "교사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한 대표적인 악의적 프레임의 가짜뉴스"라면서 "실체가 불분명한 이른바 '진술서'를 어떤 동의 과정도 없이 공영방송에서 보도한 무책임한 행태를 개탄하며 방송의 자정능력 제고가 시급한 것을 절감하는 계기였다"고 했다. 전경원 교사가 학교 측의 엄청난 압력과 예상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왜곡된 주장'을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이 특보가 '자정능력 제고 시급' 운운한 것은 향후 공영방송 통제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이 특보의 아들은 서울 강남구 소재 모 고등학교로 전학 간 뒤 고려대에 수시로 합격했다. 2015년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입학사정관은 만약 이 특보 아들의 학교폭력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돼있었다면 수시 모집에서 불합격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특보는 입장문을 통해 한사코 부인했지만, 유력 인사이기에 가능했을 학폭 사건의 축소‧은폐가 자녀의 특혜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제대로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 '정순신 검사특권 진상조사단 TF' 단장인 강득구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동관 자녀의 학폭 사건은 '제2의 정순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라며 "실제 이 일을 잘 아는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순신 전 검사 아들 사건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학폭 가해 사건이자 정권 핵심 권력자인 '아빠 찬스'의 끝판왕이었다"고 전했다.
강 의원은 "일단 가장 중요한 건 학폭위를 열지 않은 상태에서 전학을 보냈다는 것으로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당사자 간 합의 이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저희가 들은 얘기로는 여전히 피해자 쪽에서는 후유증이 남아있다"면서 "우리가 알기론 피해 학생이 4명"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