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뿌리뽑자던 조선, ‘유서대필’ 조작 기자 해고하길
‘유서대필’ 오보 인정…‘분신방조’ 보도엔 침묵
방상훈 조선 사장도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위협’ 강조
해외에선 단순 오보라도 기자 해고 사례 많아
한국언론 신뢰회복 위해 반성·강력징계 뒤따라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언론으로서 기본양식과 책임 의식이 결여된 가짜뉴스, 가짜언론은 결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위협한다.”
이 말은 ‘뜻밖에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올해 1월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던진 신년사에서 한 말이다. 방 사장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1등 언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저널리즘의 기본가치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강력한 족벌 오너 체제로 운영되는 조선일보는 방 사장의 이런 신년사를 받들어 올해 ‘가짜뉴스를 뿌리뽑자’는 취지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기사 검색 사이트 ‘박카인즈’에서 조선일보 기사 중 ‘가짜뉴스’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하면 최근 3개월 동안만 100여건이 쏟아져 나온다.
“‘너 때문에 1조원 배상’ 폭스, 가짜뉴스 방송 앵커 해고”(4.25), “가짜뉴스 언론인 퇴출 이어...미·유럽, AI 활용한 허위정보 막는다”(4.27), “가짜뉴스 넘치는데, AI발 가짜뉴스까지”(5.24, 사설), “가짜뉴스는 ‘완전거짓’ 아닌 ‘반쪽 진실’로 당신을 홀린다”(4.22), “가짜뉴스 퍼나르는 패널들”(3.17), “북한발 가짜뉴스 없다고 할 수 있나”(3.20), “가짜뉴스 90%가 정치권·SNS에서 생산, 사회적 검증 장치 마련할 때”(2.24) 등.
조선일보는 특히 지난 3월 29일 대통령 윤석열씨가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말한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발언, 4월 9일 부활절 연합 예배에서 가짜뉴스 비판 발언 등도 꼼꼼히 챙겨 비중있게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이런 가짜뉴스 근절 보도가 ‘뜻밖’인 것은, 조선일보 스스로가 ‘가짜뉴스 공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불량식품 생산자가 거리에서 띠를 두르고 불량식품 근절 캠페인을 벌이는 모양새다. 가짜뉴스의 정의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가짜뉴스란 ‘기사의 형식을 갖춘 허위·조작된 정보’를 말한다. 일반 국민은 오보나 왜곡보도 그리고 기사형광고나 선정적 기사까지도 가짜뉴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조선일보의 오보·왜곡보도, 기사형광고와 선정적 기사는 양적· 질적으로 다른 매체에 비해 압도적이다. 과거 김정일 사망 오보, 현송월 총살 오보, 김정남의 천안함 관련 발언 오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패륜적 보도 등 굵직한 오보와 왜곡보도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9년, 2021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적발한 기사형광고 1위 신문도 조선일보였다.
발행부수 1등에다, 조선일보 주요 독자층인 기득권층과 6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조선일보 가짜뉴스의 심각성은 그야말로 1등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 언론신뢰도가 세계 꼴등 수준이고,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매체’ 1등에 조선일보가 올라 있는 이유로 볼 수 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조선일보를 한국 언론의 ‘빌런’(악당)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있다.
지난 5월 조선일보가 보도한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분신방조·유서대필 의혹’ 기사는 그동안 조선일보가 쏟아낸 오보 중에서도 역대급이었다. 부실한 취재에 악의적 프레임을 씌워 만들어낸 패륜적 보도다. 언론의 정치편향이 극단에 빠지면 저널리즘이 아니라 그저 선전·선동지로 전락한다는 전형을 보여줬다.
‘유서대필’을 보도했던 월간조선이 12일만에 오보임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조선일보 자매지인 이 매체는 5월30일자(인터넷판)에서 “취재기자는 필적감정 같은 기초적인 사실 확인 절차를 생략한 채 기사를 썼고, 이를 걸러내야 할 편집장과 데스크들은 게이트 키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고 밝혔다.
“월간조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면서 “잘못된 기사로 고통을 받은 고 양회동씨의 유족과 건설노조 관계자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내부적으로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한편 이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취재·송고 시스템 정비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독자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기사를 삭제하거나 정정하지는 않았다. 오보임을 인정하고도 ‘재발하지 않도록 취재·송고 시스템을 정비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도의 대책을 내놨다. 게다가 ‘분신방조 의혹’ 보도에 대해서는 아직 오보를 인정하지도, 사과를 하지도 않고 있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니 뿌리뽑자는 주장을 그토록 목청 높여, 자주 해왔던 점에 비추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태도다.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대통령 윤석열씨나 조선일보 오너 방상훈 씨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에도 미달 수준이다. 한국 언론사의 흑역사를 찍었던 32년전 강기훈 씨 유서대필 조작 보도의 재판이라고 할 만한 이번 ‘분신방조·유서대필’ 가짜뉴스의 엄중함을 고려하면, 해당 기자 해고와 책임 라인에 있는 편집장·데스크에 대한 중징계 정도는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닐까?
기자 해고까지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여러 가지 특별한 권한과 권력을 준 것은 그만큼 사회적 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는 기자에 대한 오래되고 특별한 관대함이 있다. 언론의 자유가 강조되다 보니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이런 온정주의적 관대함이 한국 언론의 신뢰도를 꼴찌로 만들어 왔다는 비판에 귀를 한번 기울여보라.
언론이 오보를 낼 수도 있다. 신뢰도 꼴찌인 한국 주요 언론의 진짜 문제는 오보와 엉터리 기사를 써도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피해를 보상하고 폐해를 예방할 만큼의 적절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 언론에는 ‘오보의 자유’가 만발해왔다.
오보에 대한 미국 주요 언론의 대응은 한국과 다르다. 미국 권위지라는 뉴욕타임즈의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기자 해고는 유명한 사례다. 블레어의 해고 사유는 ‘기사 표절’이었다. 2015년 NBC 뉴스 앵커였던 브라이언 윌리엄스도 과장된 말실수 하나로 앵커 자리에서 하차하고 중징계를 받은 뒤 회사를 떠났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4년전 오보를 낸 기자를 해고한 적이 있는데,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분대를 방문한 게 아니라 골프를 쳤다’는 오보 때문이었다. 가짜뉴스 근절을 강조하면서 불과 한달여 전 “너 때문에 1조원 배상, 폭스 가짜뉴스 방송 앵커 해고”라는 기자 해고 뉴스를 가장 신나게 보도한 매체가 바로 조선일보다.
남의 언론사 기자를 해고하라 마라 왜 간섭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사영언론사의 인사나 징계 문제에 간섭할 일은 아니다. 조선일보 오너가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각별히 강조했다고 하지만, 사실 무슨 뜻으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내 알 바도 아니다.
다만, 한국 언론도 이제 오보에 대해 철저한 사과나 반성 없이 넘어가는 비윤리적·반윤리적인 모습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악의적이고 패륜적이기까지 한 희대의 오보를 남긴 기자가 얼마 후 다시 지면과 화면에 나타나서 피해자에게 2차, 3차 가해를 하고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 가치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다. 시민들이 한국 언론의 신뢰 회복을 갈망하니까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