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에 다른 잣대"…미국 ‘가상화폐 퀸’과 김남국 의원
신디아 루미스, 미국 상원 최초 코인 보유 공개
지난해 미국 최초 코인 규제 법안 발의
이해충돌 비판에 “오히려 전문성 발휘” 반론
“공화당서 제명”, “의원직 사퇴” 등 요구 전혀 없어
한국 김남국 의원 사례와 대비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 상원에는 ‘가상 화폐의 여왕 (Crypto’s Quee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의원이 있다. 와이오밍주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이 된 공화당 소속 신디아 루미스(Cynthia Lummis)가 그 주인공이다.
김남국 의원이 코인 투자로 인해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미국에서 코인에 투자한 의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생겼다. 미국에서 국회의원의 코인 투자와 함께 코인을 규제하는 법안 논의가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과연 미국에서는 의원이 코인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것 아닌가?”라거나 “거래하는 데 시간을 뺏겨서 의정활동이 부진했을 것”이라는 맹비난이 나왔을까? 아니면 코인에 투자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제명해야 한다”거나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까?
가상 화폐의 여왕으로 불리며 미국 상원 최초로 코인 보유 사실이 알려진 신디아 루미스 의원의 사례를 보면 김남국 의원의 사례와는 다르게 전개됐다. 이해충돌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논쟁이 일어났지만 루미스 의원의 사퇴를 거론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루미스 의원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미국 매체 ‘비지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따르면 루미스 의원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와이오밍주 재무담당관을 지냈다. 이후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2021년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뒤 상원 은행위원회(Banking Committee)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6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팀에서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루미스 의원은 2013년 처음으로 330달러를 투자해 비트코인을 샀다. 이후 2021년에는 최대 10만 달러어치의 코인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에는 인터넷 매체 ‘롤 콜(Roll Call)’에 자신의 코인 가치가 12만 8000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코인 가격의 등락 폭을 고려하면 평가금액 기준으로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는 이보다 훨씬 많은 가치의 코인을 보유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그녀는 상원의원 가운데 코인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사례가 됐다. 뉴저지주 출신 연방 하원의원 제프 밴 드루(Jeff Van Drew) 의원은 최대 25만 달러의 코인을 보유해 보유액 기준으로는 가장 많았다.
루미스 의원은 그동안 코인과 관련된 숱한 어록을 남겼다. “달러로 소비하고 코인으로 저축하라”, “은퇴자 펀드 포트폴리오에 코인을 넣어달라”는 말은 특히 유명하다. 그는 달러화가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연방 정부 부채가 30조 달러가 넘는 상황이어서 장기로 보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은퇴자 펀드에 코인을 넣어달라고 한 것이다.
루미스 의원의 코인 관련 활동은 투자에 그치지 않았다. 코인을 보유하면서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Banking Committee)에서 활동하면서 지난해 6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코인을 규제하는 법안인 ‘책임있는 금융 혁신 법(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상품적 성격이 있는 코인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서 감독하고 다른 코인들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감독하는 것을 규정하는 등 코인과 관련된 각종 규정과 규제를 망라하고 있다.
루미스 의원의 이같은 입법 활동에 대해 ‘이해충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딜란 헷틀러 가우뎃 정부감독 프로젝트(the Project of Government Oversight) 대관 매니저는 “그녀가 이 법안에 사회를 위한 최선의 방향으로 접근하는지 아니면 그녀가 직접 투자하고 긴밀하게 엮여있는 산업에 수혜를 주기를 원하면서 이 법안에 접근하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면서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단순하고 명백한 이해충돌”이라고 말했다.
반면 루미스 의원의 코인에 관한 관심이 정책 입안 과정에서 자산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케네스 굿윈 블록체인 정보 그룹 규제 및 제도 업무 담당 이사는 “루미스 의원의 가상 화폐에 관한 관심은 이 산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반영하며, 규제 관련 대화에서 산업계에 있는 이들의 입장도 반영되어야 한다”면서 “이 법안은 가상자산을 지정하고 이에 따른 위반 행위를 정하는데 매우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루미스 의원 자신도 ‘이해충돌’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목장주의 자손인 그녀는 척 토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소도 갖고 있으며 소도 상품이고 비트코인도 상품이다”면서 “내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관련이 있는 은행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그것들이 상품이기 때문에 팔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소의 소유와 마케팅에 영향을 미치는 법도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현재 루미스 의원은 상원에서 자신이 발의한 ‘책임있는 금융 혁신 법’을 개선하고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와도 코인 관련 입법 논의에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미국에서 언론과 동료 의원들로부터 루미스 의원의 이해충돌 가능성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아무도 루미스 의원에게 “의원직을 사퇴하라”거나 “공화당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와 관련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김 의원이 가상화폐 과세 유예법안을 공동 발의한 것이 이해충돌에 해당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이에 더해 의원직 사퇴와 제명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국에 비해 과도한 ‘여론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