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복지장관의 반노동 반복지…약자 부처의 ‘배반’
이정식 노동 “노란봉투법 큰 혼란을 초래” 거듭 반대
“소수 기득권 강화, 미조직 근로자 격차 확대” 궤변
조규홍 복지 “간호법은 혼란 초래” 판박이 발언
잘못된 제도 개선 손놓고 ‘을과 을 갈등’ 부추기기만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법 통과시)파업 만능주의를 만연시켜 국내기업들의 투자뿐 아니라, 해외기업들의 직접투자에도 큰 타격을 초래할 것이다.”
“개정안이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불법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 특정 노조의 기득권만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4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야당 단독 의결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것에 대한 반응들이다. 위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6단체의 성명서 내용이다. 아래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다. 경제단체와 이 장관의 발언이 똑같다.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고용노동부를 담당하는 장관이 ‘노동’보다 ‘고용’의 시각을 내비쳤다.
한국노총의 정책연구위원을 지낸 이 장관은 현 정부에서 그나마 노동 쪽을 아는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그가 장관이 되자 노동계보다는 사용자를 대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 장관의 반노동 행보
최근 현 정권이 친기업, 친시장 기조와 공안 통치를 펼치면서 서민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특히 약자를 보호해야 할 부처인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현 정권의 강공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오히려 ‘반노동’ ‘반복지’ 행보와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두 장관은 최근 노란봉투법과 간호법 등에 대해 2가지 기조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첫째로 입법 관련 활동이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논리다. 제도 개선 입법에 맞서 ‘기존 질서’를 흔들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 장관은 2월 ‘혼란’을 강조하며 노란봉투법에 반대했다.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법이 통과되자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1953년 이후 노조법의 개정은 전체 법체계의 정합성을 고려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그러나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헌법, 민법과의 충돌 문제, 노사관계 및 법·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추진됐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해 하청·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장관의 다른 반대 논리는 ‘을과 을의 갈등 유발’이다. 이 장관은 16일 ‘노동의 미래 포럼’ 2차 회의에 참석해 “(노란봉투법이 노조로) 조직화 된 14.2% 소수의 기득권만을 강화하여 다수 미조직 근로자와의 격차를 확대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사관계와 경제 전반의 큰 혼란을 초래해 장기적으로는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 자리는 노동부가 청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날 회의는 ‘노동시장 약자 보호’가 주제였다. 한마디로 노란봉투법이 청년일자리를 뺏는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노조 vs 청년’ 구도를 만들어 입법에 부정적인 여론을 유도한 것이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대결 구도를 만든 윤석열 후보의 대선 전략 그대로다.
이 장관의 발언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낮은 노조 조직률을 높이면 노동자의 권리가 증대될 것이다. 경제협렵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2018년 기준 14.8%에 불과하다. 노동자 10명 중 1명 정도만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조건이 결정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OECD 29개 국가 중 우리는 꼴찌에서 7번째다. 유럽 선진국은 대부분 OECD 평균(32.1%)보다 높다.
복지부 장관도 판박이 논리로 반복지 앞장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과 행보에도 ‘복지’가 빠져있다. 급속히 진행 중인 고령화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만든 간호법에 대해 조 장관은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그의 반대 논리에도 ‘혼란’이 등장한다.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조 장관은 “의료현장은 직역 간 유기적 협력이 중요한데, 13개 보건의료단체가 간호법 제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통과되면) 협업을 어렵게 하고 의료현장의 혼란이 야기돼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 침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정식 장관의 경우처럼 ‘갈등 유발’도 언급했다. 조 장관은 3일 경기 성남시 분당러스크재활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간호·간병 통합제도처럼 국민들이 실제 요구하는 서비스는 돌봄의 다양한 직역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조하는 원팀이 돼야 완성될 수 있다”며 “이는 의료기관 내에서뿐 아니라 장기요양시설, 환자와 어르신들이 계신 집 등 의료기관 밖에서도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호법안의 국회 의결로 인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내에서도 직역 간의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되레 간호법에 찬성하는 간호사와 반대하는 간호조무사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법이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것처럼 본인들의 처우 개선 입법을 원한다.
조 장관은 기획재정부 등 예산 관련 부처에서 근무한 경제관료다. 현 정부의 ‘3대 개혁’(연금, 노동, 교육) 과제 중 하나인 연금 개편의 임무를 맡아 장관에 임명됐다. 복지 확대는 뒤로 밀리고 ‘예산 쥐어짜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공공의료원은 축소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울산의료원 건립 사업을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서 탈락시켰다. 17개 전국 시·도 가운데 지방의료원이 없는 곳은 울산과 광주 2곳뿐이다. 2021년 기준 울산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1%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 대표적인 공공의료원인 성남시의료원은 민간 위탁 움직임이 나오면서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환자 치료의 중추적 역할을 한 공공의료원의 축소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이 많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후퇴해 환자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3월 복지부는 ‘제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확정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통해 단기적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단기간에 급증한 일부 MRI·초음파 등 항목 급여 기준 재검토 △중증질환 진료비 지원을 위한 산정특례 적용범위 명확화 △외국인 피부양자 등 건강보험 자격요건 강화 등이다. ‘문재인 케어’의 대표적인 급여 확대 방안인 MRI와 초음파의 급여기준을 강화하고, 복부 초음파 촬영의 건강보험 적용 횟수도 줄이기로 했다.
조 장관은 의료인이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선고유예 포함)을 받을 경우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에도 반대했다. 이는 의사들만 반대하는 법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