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잘못 잘랐다간 지역정치가 뒤바뀌는 영국

플리머스 지방 110그루 벌목 보수당 참패

과수원 250, 라임나무 50그루 때문에 논란

급증하는 주민들의 벌목 반대여론

제주 비자림로 벌목, 한국도 그런 시대로

2023-05-23     한승동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봄철 산불 조심 기간 입산을 통제한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오는 5월 3일 다시 문을 여는 가운데 28일 연둣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2023.4.28. 연합뉴스

이달 초 영국 지방 의회선거에서 보수주의자들이 대패했다. 많은 지방 의회 의원들은 중앙정치 탓을 했다. 예컨대 이달 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전임 리즈 트러스 총리 때의 감세정책과 보리스 존슨 총리의 파티게이트 등의 여파에다 물가 급등으로 지난해 10월 집권한 리시 수낵 총리의 보수당 성적이 형편없었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해 집권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플리머스 지방선거 보수당 참패는 벌목 탓

하지만, 보수당이 거의 모든 의석을 잃은 플리머스 지방선거에 보수당의 참패를 부른 것은 중앙정치가 아니라 그 지역 관심사들, 특히 나무를 함부로 자른 탓이 크다고 <이코노미스트>가 22일 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지난 3월 이 도시 보수당 정부가 어둠을 틈타 도시 중심부에 있던 나무 110그루를 잘랐다. 1270만 파운드(약 207억 원)짜리 재개발 사업을 위해서였는데, 지역민들이 그 일로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시의회 의장이던 보수당 대표를 낙선시켰다. 투표소들에서는 여전히 분노가 끓어 오르고 있어서, 보수당의 어느 시 의원은 “유권자들이 투표용지에 나무들을 그리고 있다”면서 그것이 표밭을 바꿔버렸다고 <BBC>에 말했다.

 

 21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시민들이 도로미화를 위한 벌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3.05.21. AFP 연합뉴스

세인트올번스 250그루, 스탠턴 크로스 50그루 때문에

벌목은 지금 플리머스 이외의 지방에서도 분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런던 북부 인근의 세인트올번스에서는 나무 250그루를 자르는 데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약 1만 7000명의 지역민들이 캠브리지와 그 인근 소도시 캠본 사이에 1억 6000만 파운드(약 2619억 원)가 투입되는 버스 전용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을 철회하라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그 도로가 100년 된 과수원을 통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3월에는 노스햄프턴셔 주의 10억 파운드(약 1조 6310억 원)짜리 스탠턴 크로스 지역 개발의 일환으로 건설하는 고속도로 때문에 50그루가 넘는 라임나무를 벌채해도 된다는 승인이 떨어졌다. 이 나무들은 중요한 지역사회 나무들의 보호활동을 지원하는 수목보호령(Tree Protection Orders. TPOS)의 적용 대상이다. 이 나무들의 벌목은 주민 4명이 체포당하는 2주일간의 항의 끝에 일단 중지됐다. 개발회사 비스트리 그룹이 지역 이해관계자들과 얘기하는 동안 작업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급증하는 벌목에 대한 항의

2020~2021년 사이에 자선단체인 우드랜드 트러스트는 가로수와 숲 벌목 위협에 대해 그것을 막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이 173%나 늘어나는 것을 지켜봤다.

벌목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나무 보호장치가 없다고 얘기한다. 지역 주민들이 벌목할 때 제일 처음 듣게 되는 것은 전기톱 소리다. 이는 이미 일이 다 진행되고 나서 자르는 단계에 가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주민들이 알게 된다는 얘기다.

이탈리아에서는 오래된 나무들이 보호를 받는 등록된 건축물과 같은 대우를 받지만, 영국에서는 대다수의 오래된 나무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수목보호령은 지역 정책당국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마음대로 제외해버릴 수 있다. “전형적인, 닭장을 지키는 여우다. 나무들을 보호해야 할 의원이 나무를 자르고 싶어 한다”고 압력단체 ‘자연을 위한 변호사’ 소속 활동가 폴 파울리스랜드 변호사는 말했다.

 

4월 17알 남미 가이아나 타사위니의 중국 금광개발지의 숲. 붉은 표지가 있는 나무가 1380헥타에 이르는 금광지구 경계 표지목이다.  2023.04.17. AP 연합뉴스

무조건 벌목 반대는 아니다

모든 나무들이 꼭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탄소 격리와 탄소 집적, 그리고 생물다양성에는 성숙한 나무들이 훨씬 더 좋다. 새로 심은 나무들은 실패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 증대(net biodiversity gain)’를 위해 심은 어린 묘목 86만 그루 중에서 4분의 3이 2020년 캠브리지와 헌팅던 사이의 15억 파운드(약 2조 4465억 원)짜리 A14 고속도로 개선 사업 중에 고사했다.

벌목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수목 보호활동이 건설계획에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벌목 때문에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 나무들 중 일부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문제의 플리머스 지방 나무들은 1980년대에 도로로 에워싸인 잔디밭에 심은 것들이다.

절실하게 필요한 프로젝트들도 있다. 예컨대 캠브리지 버스 전용도로는 새 주택개발지와 연결되는 것인데, 이는 그 도시로 가는 자동차 통행량을 줄여 줄 것이다. 그 도로가 없을 경우 2031년까지 자동차 통행량이 70%까지 증가할 수 있다.

주민과 개발자의 소통 협의 필요하다

“대중이 원하는 것과 정당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예컨대 더 많은 주택건설, 더 많은 도로, 더 많은 인프라, 더 많은 성장은 서로 충돌한다”고 우드랜드 트러스트 의장 바버라 영 남작부인은 얘기한다. 서로 협의(상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서포크 주의 힌틀셤 우즈를 통과하는 내셔널 그리드의 송전선로 운영 계획은 서포크 야생동물 트러스트, 우드랜드 트러스트, 왕립 조류보호협회 등과 협의한 뒤 수정됐다.

수목담당 관리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물론이고 좀 더 일관된 수목보호령의 규칙들이 건설계획 시스템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를 높여 줄 것이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개발업자들은 자연스런 친구는 아니지만, 약간의 상호 이해가 뿌리를 내리게 해 주는 방법들이 있다.

 

한국철도 강원본부 직원들이 8일 지난 4월 11일 강릉시 경포동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해 화재 잔존물 제거 및 벌목 봉사를 하고 있다. 2023.5.8. 연합뉴스

한국도 그런 시대로 가고 있다

2018년 8월에 제주도 ‘비자림로’가 도로가에 자라고 있던 삼나무들을 벌목하는 일로 소동이 일면서 전국적인 관심사가 된 적이 있다. 비자림로라는 명칭이 상기시키는 비자나무 이미지로 인한 혼동이 문제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도 삼나무든 비자나무든 잘 자란 나무들을 베어내는 일을 영국 사람들만큼이나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세계 자연유산에 등록돼 있는 유명 관광지이자 휴양지의 나무와 숲들이 단기적 자본수익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의 희생이 되는 것은 제주도와 그 주민들을 위해서도 좋을 리가 없다. 문제의 비자림로 삼나무들은 아마도 도로 확장을 위해 잘려나갔을 텐데, 제주도 도로의 대형화와 직선화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지나친 개발을 우려하는 소리들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런 일이 벌어져, 무분별한 벌목을 반대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이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국 전역에서 대형 도로들이 끊임없이 건설되면서, 자동차 운전자들과 자동차 제조업체에게는 좀 더 편리하고 유용해졌을지 모르지만 국토는 과도한 도로건설로 촘촘히 분단돼 야생동식물들이 서식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고 인간의 삶의 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비판이 늘고 있다.

영국의 예에서 보듯 나무들로 대표되는 주변환경의 훼손이 지역 정치를 바꾸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오래된 나무 몇 그루 자르는 일로 지역의 오랜 정치 기류가 바뀔 수 있는 시대로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을 듯하다.

민주주의가 관건

벌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나 찬성이 아니라 현지 지역민들과 개발자들이 진심으로 대화하고 협의해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는 건전한 민주주의 풍토를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개발의 형식요건을 채우기 위한 형식적인 대화나 환경영향평가 같은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우리 삶을 파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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