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 고졸만 가능” 장관과 국힘의 혹세무민?

간호법 거부권 건의 때 “ 간호조무사 학력상한 문제”

관련 규정 찾아보니 대졸자도 아무 제한 없어

직업계고 “전문대에 간호조무사과 신설 반대”

2023-05-22     민병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호법안 관련 국무회의 의결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2023.5.16. 연합뉴스.

복지부장관의 무지인가? 아니면 알고도 혹세무민을 했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이 어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조규홍 복지부장관과 국민의힘이 간호법에 반대한 이유다. 조 장관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간호법에 대해 반대하는 5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 중 4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간호법은 협업이 필요한 의료현장에서 특정 직역을 차별하는 법안입니다. 간호조무사에 대해 학력 상한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직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며, 국민의 직업 선택 자율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조 장관은 이어진 일문일답을 통해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 중 대졸자 비중이 50%라는 주장이 있는데, 간호법이 실제로 간호조무사 학력을 제한하나’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특성화고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나오면 자격시험을 바로 볼 수 있지만,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서 간호조무 관련 학과를 졸업하면 일정 기간 학원에 다녀야 시험 응시 자격이 부여된다. 이러한 입법 예는 다른 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여권 인사들도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제한한다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일 “간호법이 잘못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간호조무사 학력에 상한을 두는 제도라는 점”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박 의장은 “우리나라는 보건의료 관련 자격증만 24개가 된다. 이 중에서 자격 학력에 상한을 두는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여러 누리꾼이 관련 기사에 ‘정말 간호조무사는 대졸은 응시가 불가능한가’라는 궁금증을 나타냈다.

하지만 조 장관과 여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간호법 제5조를 보면 제1~5항에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 이수자’ 등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추가로 제6항에 ‘제3조 제1항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이나 전문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외국에서 대학이나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외국의 간호사 면허를 받은 사람’을 포함한다. 학력 조항은 의료법 80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대졸자도 간호조무사가 되는 데 제한이 없다.

조 장관은 제6항은 쏙 뺀 채 제5조 제1~5항만으로 학력 상한이 있다며 반대한 것이다. 공직 생활 대부분을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에서 보낸 조 장관이 보건의료 행정에 무지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제6항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국직업계고 간호교육교장협의회(협의회) 등 3개 단체가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 논란에 대해 밝혔기 때문이다. 회견은 조 장관이 거부권을 건의한다고 밝히기 3일 전의 일이다.

단체들은 “복지부와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의 간호조무사 자격 조항이 ‘고졸 이하’로 돼 있어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5조 제6항에는 대학 또는 전문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자와 외국 간호사 면허소지자도 응시 자격이 있는 것으로 분명히 나와 있다. 실제 현장 간호조무사 절반 정도가 대졸자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직업계고 등은 간호법 관련 입법이 다시 이뤄져 당정 중재안이 반영되면 이를 근거로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신설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간호조무사는 고졸 직역’으로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협의회는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설치된다면 학벌 위주의 우리 사회에서 고졸 간호조무사의 취업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질 것은 물론, 대졸자와 고졸자간 학력 차별, 학력 과잉, 교육비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나아가 특성화고 중심의 중등 직업교육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도 직업계고와 같은 입장이다. 지난달 19일 중등직업교육정책과의 쟁점 사항 보고를 통해 “교육부의 검토 의견은 청년층의 조기 입직 유도, 대입 경쟁 완화 등을 위해 고졸 적합 업무인 간호조무사는 현행대로 직업계고 및 민간 학원 등에서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편 간호법 거부권 관련 간호협회와 야권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22일 간호사 출신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 지역사무소 개소식에서 “국회 절차에 의해 심의 의결된 간호법 제정을 앞두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표류하고 있는데, 국회 논의과정에서의 역사 진실의 맥락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며 “다시 한번 간호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탁영란 간협 부회장은 이날 KBS라디오에 나와 간호법 제정이 의료체계 붕괴라는 주장에 대해 “간호법은 100년 전 미국에서 제정됐고, 일본은 75년 전 제정됐다”며 “90여 개국이 간호법 체계를 갖고 있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의료체계가 붕괴됐다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간호법을 의사와 간호사, 간호 보조역의 직역 간 다툼으로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며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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