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금지조약' 거부하며 핵 줄이자는 G7
‘핵군축에 관한 히로시마 비전’ 발표
‘핵 선제공격 불가’ 정책 안된다고 한
기시다의 ‘히로시마 액션 플랜’의 재탕
윤석열 정부 정책도 가시다 정부와 닮은 꼴
전쟁 막는다는 ‘억제력’ 강화가 되레 전쟁 유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19일 ‘핵군축에 관한 G7 정상 히로시마 비전’(이하 ‘핵군축 비전’)을 발표했다.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 피폭도시인 히로시마에서 핵군축에 초점을 맞춘 G7 정상회의 최초의 문서인 핵군축 비전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핵공격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용 억제 효과에 대한 기대를 낳고 있다. 그러나 G7 국가들 자체가 주요 핵무장 국가이거나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나라들인데다,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핵을 핵으로 막는다’는 발상이 핵 선제사용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대적 세력의 핵 개발과 무장을 촉발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핵군축 비전이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침략과 전쟁 방지를 위한 억제력?
G7 핵군축 비전은 먼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77년간 이어져 온 핵무기 불사용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핵무기 사용 위협 또는 실제 사용이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핵무기가 방어목적의 침략 억제, 전쟁 및 위협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곧 상대방을 침략, 전쟁 위협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 핵확산금지조약(NPT)이 국제적인 핵확산금지체제의 초석이며 이를 통한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이 자신들의 궁극적 목표임을 재천명하고, 이를 위한 일본의 ‘히로시마 액션 플랜’을 지지했다. 미국과 함께 핵탄두 배치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로운 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 탈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이를 유보한 러시아에 대한 유감도 표시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투명성과 대화 없이 핵전력 증강을 가속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도 핵 개발과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며 도발적인 행동의 자제를 요구했다.
거꾸로 가는 ‘핵없는 세계’
G7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인 핵군축 비전 마련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올해 의장국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내세운 ‘핵무기 없는 세계’는 현실에서는 그 지향점과는 정반대 쪽으로 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위협뿐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사용 위협과 연이은 미사일 발사, 중국의 급속한 핵전력 증강 등으로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인류 멸망을 경고하는 ‘종말시계’ 바늘이 자정 90초 전까지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G7 정상들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호소하면서 위기를 부른 구조 또는 시스템을 바꾸거나 개선하려는 것이 이번 히로시마 회의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오해”라고 가와사키 아키라 핵무기폐기 국제캠페인(ICAN) 국제운영위원은 지적했다.(‘G7과 히로시마-핵 폐기를 얘기하라’, <세카이> 2023년 6월호)
가와사키 위원에 따르면, G7은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거나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서방의 핵무기 보유 3대국이고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은 모두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 있다. 이들 나라 모두 ‘핵 억제력’, 곧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안전보장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2017년에 채택되고 2021년에 발효된 유엔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대해 핵폐기로 가는 “출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조약”이라면서도 서명하거나 비준할 의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다. TPNW는 모든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보유·사용뿐 아니라, 핵보유국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핵우산’ 제공까지도 금지한 최초의 국제조약인데, G7의 핵보유 3개국과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나라들이 서명하지 않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러시아, 중국 그리고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도 가입하지 않았다.
‘히로시마 액션 플랜’의 재탕
이번 핵군축 비전에 들어가 있는 핵무기 불사용, 핵무기 수 감축, 핵무기의 투명성, 무기급 핵분열성 물질 생산금지, 핵확산 금지, 핵실험 금지, 플루토늄 관리의 투명성 등의 항목들은 대부분 기시다 총리가 지난해 8월 NPT 재검토 회의에 자진해서 참석해 발표한 ‘히로시마 액션 플랜’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2월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와 방위비(군사비)를 향후 5년간 GDP의 1%에서 2%로 올리는 등의 대규모 군비확장을 천명한 이른바 '안보 3문서' 개정을 감행했다.
기시다는 일본의 안보군사 정책의 근간인 ‘전수 방위’ 원칙을 파기하고 본격적인 재무장을 선언하며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대만 사태’를 상정한 대응력·억제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오키나와 남쪽 대만 인근까지 늘어서 있는 이시가키 등 난세이 제도 섬들에 자위대 기지를 구축해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배치하고 실전 훈련을 실시하는 쪽으로 급진전되고 있다.
미국제 장거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500기를 구매하고 기존 수백킬로미터 사정거리의 자위대 보유 미사일들을 1000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 미사일로 바꾸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이것이 ‘적기지 공격 능력’과 결합하는 것을 중국, 북한 등 주변국들이 큰 위협으로 간주할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들 나라는 자국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일본의 기지들을 겨냥해 배치할 것이다. 이 때문에 미사일 배치 자위대 기지가 있는 섬들에서 주민들이 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을 놓고 분열하고 있다. 전쟁이 나면 조그마한 섬 전체가 미사일 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핵 선제공격 불가정책 불가하다는 기시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정권 부통령 시절부터 핵무기 선제공격 불가론자로 알려져 왔으나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핵태세 재검토(NPR)에서 핵무기 선제공격 불가 정책을 채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기시다 정부가 미국이 핵 선제공격 불가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집요하게 반대한 것이라고 가와사키 위원은 썼다. 선제공격을 전제하지 않은 핵무기정책은 그 위력, 즉 억제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한미일 3국은 핵억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고 있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방문 때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발표한 ‘워싱턴 선언’에 그 대강의 골격이 드러나 있다. 일본도 거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과거사 문제를 건너 뛴 ‘한일의 정치적 유착’이 급진전되면서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은 차관급 ‘핵협의그룹’(NCG)을 중심으로 한 ‘확장억제’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공유 기반의 ‘핵기획그룹’(NPG)과 결합헤 나토와 인도태평양 안보협력체제의 통합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처음으로 참석한 것이 이런 변화 내지 전환을 상징한다.
미국 등 G7이 대표하는 서방 가치동맹의 확장 억제력 강화는 중국, 러시아,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이들 나라의 군비축소나 무장해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다.
나토의 ‘핵공유’는 불법
G7 정상들은 러시아가 이웃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전략을 비판하지만, 미국은 예전 전부터 나토 5개국 즉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투르키예에 100~150개의 전술핵을 배치해 놓고 여차하면 이들 나라와 함께 전술핵을 적대국에 투하하는 핵공유의 ‘핵기획그룹’을 운용해 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나 아베 신조, 그리고 기시다 정부도 나토식 핵공유를 주장해 왔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이 핵공유는 아니지만 핵확장억제를 명기한 ‘핵협의그룹’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나토 국가들의 ‘핵공유’는 NPT를 위반하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독일 전문가는 지적한다.(‘평화통일연구소’ 온라인 사이트 게재 논문 ‘독일의 핵 공유의 불법성 – 핵확산금지조약[NPT], 조약법 협약,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핵무기의 합법성에 대한 권고의견의 관점에서’, 베른트 한펠트 반핵국제법률가협회[IALANA] 독일지부 이사 참조)
군비확장으로 갈지 모를 핵군축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나토의 동진, 즉 냉전과 소련 붕괴 뒤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16개국에서 최근의 핀란드까지 포함하면 31개국으로)해 온 나토의 위협에서 찾았다. 북의 김정은 체제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폭 강화한 미사일 발사실험과 공세적인 핵전략 강화 구실을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 재개 등을 통한 대북 압박에서 찾고 있다. 중국이 최근 속도를 높이고 있는 핵전력 증강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즉 대결은 대결을 부른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다.
따라서 이번 히로시마에 모인 G7 정상들의 핵군축 비전이 실질적인 핵군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군비 확장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기시다 정부와 닮은 윤 정부
기시다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12년간 유지해 온 탈원전 정책을 뒤집어 노후 원전들을 재가동하면서 수명을 연장시키는 역주행을 하고 있고, 이는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가와사키 위원은 이들 원전 가동 확대가 민수용이지만 농축 우라늄의 핵무기 전용 위험성을 높인다고 본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처럼 원전에 대한 적대세력의 무력공격을 부를 위험성 또한 커진다고 주장한다.
기시다의 자민당 정부는 일본 방위산업을 제약해 온 ‘무기수출 3원칙’ 완화작업도 벌이고 있다.
요컨대 기시다가 내세우고 있는 이상적인 정책 전망과 실제 현실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G7 차원에서도 크게 다를 게 없다.
핵무기금지조약 거부하는 G7
냉전 붕괴 뒤 빠른 속도로 줄여가던 미국 러시아의 핵탄두 감축도 지금은 장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1980년대 중반에 7만 개가 넘었던 지구상의 핵탄두는 1990년대 초 냉전이 무너진 뒤 군축이 시작되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 러시아 두 나라가 매년 1000~2000개꼴로 핵탄두를 해체해, 지금은 총 1만 2000개 정도가 남았다. 모든 핵무기 보유국들이 폐기에 나서면 10년 정도로 완전히 해체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핵무기금지조약 제1차 체약국회의에서는 핵보유국들이 조약에 가입할 경우 핵무기 폐기 기한을 ‘10년 이내’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G7 정상들이 내놓은 핵군축 비전은 남탓을 하며 자신들의 핵억제 강화를 정당화하는 군축 불가 논리로 변질될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해 억제력(군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오히려 그것을 파괴하는 전쟁으로 이어진 예들이 역사에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