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입장 선회에 '쌍특검' 급물살…'야 4당 공조' 눈앞
법사위 의결 고집하던 정의당 "이제 인내에 한계"
대장동·김건희 특검법 '패스트트랙'에 동참 시사
좌고우면하다 진보당 원내 입성에 자극받은 듯
강성희 "이재명 체포동의 반대, 쌍특검 즉각 도입"
기본소득당도 맹활약…총선 앞두고 정의당 위기감
본회의 표결 27일 '디데이'…야 4당 177석+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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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김건희 씨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등 야권의 이른바 '쌍특검' 추진이 마침내 제대로 동력을 얻게 됐다. '캐스팅보트'를 쥔 정의당이 "이제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다"며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우선 지켜봐야 한다" "법사위에서 여야 합의로 심사·의결해야 한다" 등의 이유를 대며 3월 국회 회기 중에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직회부하자고 서둘렀던 민주당 요구를 거부했다. 처음엔 검찰의 '선의'에, 나중엔 국민의힘의 '선처'에 기댄 채 마냥 기다리며 시간만 끌어왔던 셈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쌍특검, 그중에서도 특히 '김건희 특검'에 대해 극렬 반발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입법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한 지 오래고 같은 당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 역시 쌍특검 법안을 법사위에 상정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정의당이 뒤늦게나마 미련을 버리겠다는 의사를 천명함에 따라 이미 패스트트랙 추진 의지가 확고했던 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등 4개 원내 야당이 모두 힘을 합친 '쌍특검 야권 공조'가 조만간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18일 오후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정의당이 제출한 김건희 여사 특검 법안이 숙려기간을 포함한 모든 법안 상정 요건을 마쳤다"며 "법사위는 즉각 법안을 상정해 국민적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직을 방패막이로 전체회의 일정도 잡지 않으며 오직 방탄 행보만 하고 있다"면서 "50억 클럽 특검법도 몽니 부리며 시간만 끌더니,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아예 다룰 생각을 안 하며 노골적인 방탄 태세"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특권 비리의 진실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 쌍특검은 준엄한 국민적 요구"라며 "막무가내 법사위 방탄 앞에 국회의 마땅한 책무가 더 이상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 이제 국민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여당에 경고했다. 그러면서 "진영과 정쟁에 빠지지 않고, 오직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민적 요구만 바라보고 달려온 정의당의 길은 이제 패스트트랙으로 통하고 있다"며 "국민의 쌍특검을 당리당략 '쌍방탄'으로 가로막는 국민의힘이, 야당의 패스트트랙을 국민의 패스트트랙으로 만들고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앞서 이은주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은 50억 클럽 특검법을 법사위에 상정한 뒤로 줄곧 겉으로는 진실 규명을 주장하면서 검찰 수사를 핑계로 특검법 처리를 지연시키는 화전양면술을 써왔다"며 "정의당은 국회법이 규정한 마지막 절차, 패스트트랙에 돌입할 수밖에 없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정의당은 지난 2월 20일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지난달 24일에는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을 각각 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이 수차례 연대를 요청하고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쌍특검 중재안'을 제시했는데도 좌고우면하며 뜸만 들이던 정의당이 입장을 급선회한 배경에는 진보당의 원내 입성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진보당은 4·5 재·보선을 통해 민주당 텃밭인 전주을에서 강성희 의원을 배출하며 정치권 안팎의 큰 주목 속에 원내에 첫 진입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후 8년 만이다. 이에 따라 진보 성향 정당 간에도 경쟁에 불이 붙게 됐다.
진보당은 이미 지난해 6·1 지방선거 때 원외 정당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당선을 비롯해 광역의원 3석, 기초의원 17석을 얻어 원내 3당인 정의당(광역의원 2석, 기초의원 7석)보다 선전한 바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진보당의 계속된 약진에 정의당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강성희 의원은 당선 직후인 지난 7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반대하고 쌍특검은 즉각 도입해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강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이 대표 체포동의안 반대와 쌍특검 즉각 도입은 저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진보당의 당론"이라며 "민주당과의 관계를 물어보신다면 당연히 협력하고 연대해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워야 할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 말대로 진보당은 지난 2월에 일찌감치 "검찰의 체포동의안 제출은 수사의 목적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를 체포 구금함으로써 범죄자로 낙인찍고 여론재판을 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검찰 독재에 오히려 면죄부를 안겨주는 체포동의안 처리에 찬성해선 안 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지난달 28일 논평에서는 "'지연된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3월 안에는 쌍특검을 반드시 패스스트랙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하고 쌍특검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당원들 탈당 사태까지 빚었던 정의당과는 대조적인 노선이다. 기본소득당 역시 협소한 형식논리에 집착하는 정의당과는 달리 대여 투쟁에서 선명한 목소리와 강인한 실천력을 보이고 있다. '비호감' 이미지가 누적돼온 정의당에 이들 신진 진보정당이 갈수록 자극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 야 4당은 4월 국회를 넘기기 전인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쌍특검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 3인 18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169석에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진보당 1석, 여기에 무소속 중 김홍걸·민형배·양정숙·윤미향·박완주 등 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가세하면 통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