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복 입고 '화해의 장'에 온 특전사 단체

"마치 5·18 그때처럼…꼭 그래야 했나"

전 특전사령관 "정복이라도 입었더라면…"

군인복제령, 군복단속법, 예비군법 등 위반

지역사회단체 비판 봇물…"오월 정신 퇴행"

2023-02-20     김성진 기자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19일 오전 국립 5·18 민주묘지를 기습 참배하고 있다. 2023.2.19 [5·18묘지관리사무소 제공] 연합뉴스.

특전사동지회가 전투복·전투화 차림으로 5·18민주묘역을 '기습 참배'한 것을 두고, 1980년 5월 공수부대 특전사의 전투화에 짓밟힌 광주 시민들의 상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울러 이들의 전투복 착용이 현행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최익봉 총재 등 특전사동지회 집행부 25명은 지난 19일 오전 황일봉 5·18부상자회 회장, 정성국 5·18공로자회 회장 등 5·18 단체 2곳 대표와 함께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합동 참배했다.

애초 이들은 19일 오후 5·18 묘지를 참배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부상자회·공로자회 2곳을 제외한 다른 오월 단체들과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배 저지를 경고하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 '군사작전'하듯 전투복·전투화 차림으로 5·18 묘지를 찾았다.

이들의 '기습 참배' '도둑 참배'로 오월 단체와 시민사회에서는 거센 비판과 항의가 이어졌다. 소식을 들은 오월 단체와 시민단체 회원들은 이들을 찾아 '피묻은 군홧발로 5·18을 짓밟지 말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계엄군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정식 참배한다고 해 놓고는 변경 신고도 없이 몰래 참배를 하고 왔다"며 "떳떳하지 못하니 도둑 참배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전사동지회 홈페이지에도 비판 글이 이어졌다. 김승현 씨는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에게 "80년 5월 '충정작전'처럼 여러분(특전사회) 동지들은 기습적으로 오전 10시에 군복을 입고 기습 참배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여러분들의 전우 일부가 80년 5월에 광주 시민들께 저지른 행동을 43년이 지나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 시민들에게 다시 일깨웠다"며 "여러분들을 용서하려는 마음도 굳어버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일부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이 군복을 입고 군홧발로 광주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며 "광주 시민들을 아직도 북한에서 침투한 간첩으로 인식하느냐. 바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촉구했다.

전투복·전투화 차림으로 참배를 한 것을 두고 광주 시민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복장 자체가 현행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행 군인복제령, 향토예비군 설치법에 따르면 전역 또는 퇴역한 군인은 계급에 맞는 복장을 할 수 있지만 예비군 표지장을 달아야 하고 △군인의식에 초청된 때 △학생의 군사교육을 담당할 때 등을 제외하고는 전투복이 아닌 정복이나 예복을 입어야 한다.

또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군복단속법)에 따르면 군인이 아닌 자는 군복을 착용해서는 안 되고, 군복과 외관상으로 식별이 곤란한 '유사군복'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 군복 착용도 문화·예술활동, 법령이 허용한 경우, 국가·지방자치단체 공익활동 등으로 극히 제한된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19일 오전 국립 5·18 민주묘지를 기습 참배하고 있다. 2023.2.19 [5·18묘지관리사무소 제공] 연합뉴스.

그러나 예비역 또는 퇴역 군인으로 구성된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은 법에서 정하지 않은 행사에 참석해 현재 군에서 사용하는 전투복과 똑같거나 구별이 거의 불가한 복장을 하고 부대 휘장까지 가슴에 붙였다. 어깨에 녹색 지휘 견장을 착용하거나, 전투복 옷깃에 규정에도 맞지 않는 철제 계급장을 부착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행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참배에 전투복·전투화를 착용한 것은 5·18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도 아니다. 군인이 최고의 예우를 갖출 때는 통상 정복이나 예복을 입는다. 우리 군과 문화가 유사한 미군 역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정복이나 예복을 착용함으로써 최고의 예우를 표한다.

문형철 특수및지상작전연구회(LANDSOC-K) 상임연구원은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특전사동지회의 전투복 참배에 대해 "군복의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킨 행위"라며 "군복이 자랑스러우려면 군인으로서 기본인 준법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문 상임연구원은 이어 "계급장이나 표지장 등 현재 군에서 사용하는 것을 민간인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데, 특정부대 소속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관련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화해를 하러 가는 자리에 군복을 입고 가야했느냐"고 꼬집었다.

전임범 전 특수전사령부 사령관(퇴역 중장)은 <민들레>와 통화에서 "화해의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됐는지 봐야 한다"며 "정복이나 정장을 착용했으면 화해와 더 근접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유가족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정한 화해·치유로 나가기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부상자회·공로자회는 지난 19일 '기습 참배' 뒤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열고, 5·18 당시 투입된 계엄군이 저지른 학살 만행을 "군인으로서 명령에 의한 공적 직무를 수행한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참석했고, 국민의힘 소속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보냈다. 광주시장, 광주시의회 의장, 전남도지사, 도 의장 등 지역인사는 참여하지 않았다.

부상자회·공로자회는 또한 계엄군에 대해서도 "민주 시민의 정의로운 항거를 억압한 가해자가 아니다"라며 "그 다수가 오늘날까지 정신·육체적 아픔으로 점철해왔던 점에 따라 피해자로 봐야 마땅하다"고 했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는 선언식 인사말에서 계엄군에 대해 "질서회복 임무를 위해 투입된 선배 전우들"이라고 표현하며 "군 선배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발포명령, 암매장 등 광주 시민이 원하는 진상규명을 위한 고백이나 사과, 유감 표명은 없었다.

 

19일 오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특전사동지회 초청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 행사를 앞두고 5·18단체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반대 행동에 나서고 있다. 5·18단체 일부가 추진한 이날 행사에 반대 측은 진상규명 협조와 진솔한 사과가 먼저라고 요구했다. 2023.2.19. 연합뉴스

광주 지역사회에서는 특전사동지회의 참배와 선언식이 '역사 퇴행'이라며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20일 광주시청에서 기자들과 차담회를 하고 "어제 망월 묘역 참배와 선언식은 화해를 얘기하면서 상처를 덧내고, 미래로 가기보다 과거로 되돌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추모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특전사동지회 최익봉 총재가 학살자 계엄군을 '질서 유지'의 임무를 맡은 사람들로 둔갑시켜 극우 보수 세력이 주장하는 발언을 했는데도 5·18 두 단체 회장을 비롯해 행사 참여자들은 한마디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엇이 두려운지 국립 5·18 민주묘지에 도둑처럼 몰래 들어와 기습적인 참배를 강행하기까지 했다"며 "오월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월의 역사를 퇴행시키는 저들에게 맞서 싸워 오월 정신을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지 않는 용서와 화해란 없다"며 "5·18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사유화되는 문제를 바로 세워 모두의 5·18이 될 수 있도록 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광주시당은 "용서와 포용으로 진상규명의 진전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였지만 지역사회의 갈등과 분열만 남긴 채 그 의미가 퇴색됐다"며 "일방적인 화해를 중단하고 고백과 성찰에 매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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