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평화안 “기회주의와 전략적 근시안의 슬픈 혼합”

‘이코노미스트’,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평화안 비판

‘가디언’ “미국정부 계획 아닌 ‘러시아의 희망목록’”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도 주시할 것이다”

“전적으로 트럼프의 변덕”에 달린 우크라 지원계획

유럽은 미국 없는 싸움 각오해야

2025-11-23     한승동 에디터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는 22일, 우크라이나가 스위스에서 미국과 전쟁 종식 방안에 대한 회담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에 러시아의 강경한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하는 전쟁 종식 협상안을 승인하라는 촉박한 시한을 주자,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22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사진은 2025년 2월12일 합성한 이미지. 2025.11.25.AFP 연합뉴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정부가 제시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28개 항의 평화계획(트럼프 평화안)이 너무 형편없고, 모호하며, 균형도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라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그리고 미국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사에는 “그것은 벌거벗은 기회주의와 전략적 근시안의 슬픈 혼합”(It is a sad mix of naked opportunism and strategic myopia)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트럼프와 미국 공화당에 비판적인 유럽과 미국 내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코노미스트>의 이날 기사는, 오는 27일까지 수용 여부를 밝히라고 우크라이나에 최후통첩을 보낸 트럼프 평화안이 “좀 더 정상적인 세상이었다면 나올 수도 없고, 나오더라도 즉시 쓰레기통에 던져졌을 것”이라면서, 위선과 배신에 대해 경고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의 격언을 상기시켰다. 기사는 우크라이나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에 직면해 있다”며 “존엄을 잃거나 핵심 동맹국(미국)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21일 연설을 인용한 뒤 “주님, 제 친구들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십시오”라는 ‘볼테르의 기도’를 덧붙였다.

 

JD 밴스 부통령(오른쪽)이 2025년 2월 28일 워싱턴 백악관 타원형 사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듣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2025.2.28. AP 연합뉴스

‘가디언’ “미국정부 계획 아닌 ‘러시아의 희망목록’”

<가디언>은 23일 트럼프의 28개 항 평화안을 “미국정부의 계획”이 아니라 “러시아의 희망목록”으로 받아들였다는 미국 상원의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이를 “1938년 네빌 체임벌린과 아돌프 히틀러가 맺은 뮌헨협정을 연상시킨다며 비난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28개 항 평화안을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와 러시아 특사인 키릴 드미트리예프가 작성했다고 21일 전했다. 크렘린궁은 이 제안을 지지하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제안이 "최종 평화 합의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올렉산드르 메레주코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정책위원장은 22일 트럼프 평화안을 “난센스요 쓰레기”라며, “비윤리적이고 모순 가득하며, 노골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해 미국의 위신을 손상하는 부끄러운 것이라며, 이를 1938년 뮌헨협정의 배신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938년 뮌헨협정은 당시 네빌 체임벌린 영국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총리가 히틀러의 전쟁 압박에 굴복해 체코의 주데텐란트 지역 일부를 체코의 허락도 없이 떼어줌으로써 전쟁을 막으려 했으나, 히틀러는 다음해 폴란드를 침공했고,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려 들어갔다.

비판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제안이 “최종 제안”은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서서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평화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프랑스와 ​​영국, 독일의 안보 관리들도 참석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평화안의 모호함과 기이함(vagueness and oddities)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예컨대 평화안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불허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어느 지역을 공격하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도 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평화안에 따라) 침공을 중단한 대가로 점령한 (우크라이나)영토와 (아직) 점령하지 못한 일부 영토까지 확보하게 되고, 주요 8개국(G8)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다시 합류하며, 제재에서도 벗어나 관대한 자금조달 기회를 보장받는다.

우크라이나도 휴전과 함께 자금 조달 기회를 얻게 되고,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보장한다. 하지만 정말 보장할까?

우크라이나는 자국민들이 다수인 대도시들과 자국이 지난 3년간의 전쟁기간에 건설하고 무력화한 대규모 요새들을 러시아에 넘겨 줘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병력을 60만 명으로 제한해야 하는 반면, 러시아는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영토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가 주둔할 수 없게 돼, 지금까지 미국도 지지해 온 것으로 알려진 유럽의 ‘안전보장군(평화유지군)’ 주둔계획도 폐기된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트럼프 평화안이 부당한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격을 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이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다시 공격할 동기가 되며, 푸틴이 북극에서 흑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접경 국가들을 위협하고 압박하려는 장기적인 목표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군대 재건의 시간과 돈을 벌게 해 줄 것이다. 국제협정을 잇따라 파기한 인물인 푸틴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은 부당하고 위험하다.

 

11월 21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공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국민들에게 영상 연설을 하는 동안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2025.11.21. AP 연합뉴스

“일본, 한국, 중국도 주시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평화안 채택 과정에서 유럽 동맹국들과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며, “이는 미국에게 좋지 않다. 일본과 한국도 이를 주시할 것이다. 타이완을 바라보는 중국도 그럴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기사는 트럼프의 측근들이 이런 비관적인 독해(pessimistic reading)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무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며, 그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평화안 제10항을 예로 든다.

제10항 '미국 유럽 공동 군사대응' 믿을 수 있나?

제10항은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미국이 “공동 군사대응”을 주도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제대로 실현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에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주권과 영토 보전에 관한 보장을 받았지만, 2014년과 2022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보전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거나 못했다.

 

1938년 뮌헨협정 서명 직전의 협정 서명자들 모습. 앞줄 왼쪽부터 네빌 체임벌린 영국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총리,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   위키백과

“전적으로 트럼프의 변덕”에 달린 우크라 지원계획

트럼프는 나토가 침공당할 경우에조차 그런 보장약속을 이행할지 불분명한 태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우크라이나 지원계획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whimp)”에 달려 있으며, 미국 의회조차 그런 약속 이행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진영은 우크라이나 현실을 직시하라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전선에서 영토를 잃고 있으며, 모든 협상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도시와 전력 시스템은 밤마다 러시아의 무인기와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휘하 공무원들이 수천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다. 부패는 정부 수뇌부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동맹국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약점들을 개선하려 하기보다는 이용해 먹을 재료로 여긴다. 우크라이나가 밤마다 러시아 미사일과 드론의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은 그것에 저항하며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싸워 왔다. 우크라이나가 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지도를 보면 그렇게 해서 러시아가 새로 빼앗은 땅은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너무 적은 지원을, 너무 늦게” 제공해 왔다. 최근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서방이 압류한 서방 소재 러시아 자산 160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통제 아래 미국의 이익을 창출하는데 사용하려 하고 있다.

 

11월 22일 우크라이나 대통령 언론 서비스에서 촬영, 배포한 사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에서 왼쪽)과 그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왼쪽에서 오른쪽) 그리고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키이우에 있는 국립 홀로도모르-대량학살 박물관에서 1932-1933년 기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 2025.11.22. AFP 연합뉴스

11월 2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창인 가운데, 한 남성이 키이우에 있는 홀로도모르-대량학살 국립 박물관에서 1932-1933년 기근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을 켜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시대의 홀로도모르 기근 92주년을 맞았다. 이 기근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크라이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사건 중 하나였다. 2025.11.22. AFP 연합뉴스

유럽은 미국 없는 싸움 각오해야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미국이 없는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싸움은 절망적일 것이고 비용은 엄청나겠지만,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경우 러시아의 가중되는 위험으로부터 나토를 방어하는데 드는 비용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트럼프 평화안대로 가면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것이고, 그때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나토 전체를 방어하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이며, 위험과 비용은 몇 배로 불어날 것이다.

“미국의 현재 계획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도 위험하다. 따라서 유럽 지도자들은 이제 분노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들은 이미 희망적 사고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이것이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내린 결론이다. 그럼에도 유럽이 제대로 움직일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제네바 회동 결과부터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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