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국가보안법을 역사의 무대에서 내릴 때다

사상의 자유 억압하고 형제를 적으로 돌린 악법

우리 사회와 민족을 오랫동안 죄의 굴레에 묶어

오늘날까지도 시민의 삶과 양심을 여전히 위협

국가보안법 폐지, 시대적 사명이자 신앙의 과제

2025-10-24     박철 시민기자(은퇴 목사)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와 민족을 오랫동안 죄의 굴레에 묶어 온 악법이다. 이 법은 진실을 말한 이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며, 형제를 적으로 돌려세운 분단의 사슬이다. 그 이름 아래 수많은 생명이 상처 입고, 양심이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침묵의 깊은 밤에도 진실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오늘 우리는 그 불꽃을 다시 밝혀 자유와 정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7월 1일 열린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1203인 선언 기자회견' 2025.7.1. 사진=엄상빈

억압과 분단의 도구로 작동한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억압과 분단, 권력의 도구로 작동해온 상징적 제도다. 1948년 제정된 이래 '국가 안보'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권력자들이 시민사회의 정당한 요구와 비판적 목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군사독재 시절, 국가보안법은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들을 감옥으로 몰아넣고, 비판적 언론인과 학자를 침묵시키는 족쇄였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용공'이라는 낙인 앞에서 무력했다. 

그 그림자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2023년, 전북민중행동 하연호 대표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과 관련한 회합과 연락을 이유로 기소됐다. 
▪︎2025년, 제주에 거주하는 탈북민 A씨가 북한 지시에 따른 정보 제공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25년, 충북동지회 간부들이 북한 공작 지령 관련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같은 시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 간부가 ‘반국가 활동’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들은 법이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사람들의 삶과 양심을 여전히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국민을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권력 유지와 사회 통제의 도구이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대적 족쇄로 남아 있다. 

국제사회가 지적한 악법 

유엔 인권이사회,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은 오래전부터 한국 국가보안법이 보편적 인권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폐지를 공식 권고했다. 

국가보안법의 국제적 부적합성은 단순한 외부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이 법은 인류 보편의 가치와 충돌하며,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과도 배치된다. 더구나 과거 존속 명분이었던 북한 노동당 규약의 '남조선 인민 투쟁 지원' 조항은 삭제되었고, '민족의 공동 번영'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붙드는 것은 안보의 명분이 아니라, 권력과 통제의 욕망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역사적 맥락과 악법의 실체 

국가보안법은 반공법의 변형이며, 독재정권이 체제 수호를 위해 개악한 법이다. 인혁당 사건, 통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사건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이 법 아래 탄압당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국회의 동의 없이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법을 개악·통합하였다. 그 결과 광주민주화운동과 민주화 세력 탄압의 주요 수단이 되었고, 고문과 불법 연행, 조작 사건이 빈번했다. 

오늘날도 사례는 이어진다. 오경무 씨의 재심 무죄 판결(2023년)은 국가보안법 적용 과정에서 고문과 조작이 여전히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평화운동가, 청년단체 활동가, 노조 간부 사건은 이 법이 여전히 사람들의 신념과 양심을 죄로 만드는 장치임을 입증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 불행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적 장애물이 된다. 

신앙과 자유를 억압하는 법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국가보안법은 용납될 수 없는 악법이다. 성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선언한다(창 1:27). 그 누구도 제도나 권력의 이름으로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제국과 종교 권력의 결탁 속에서 억눌린 민중을 해방시켰으나, 권력은 그를 '질서 파괴자'로 낙인찍어 십자가에 처형했다. 국가보안법의 논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진리를 말하는 이를 '위험분자'로, 평화를 외치는 이를 '체제전복 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사도 바울로는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국가보안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자유를 훼손하는 불법적 구조다. 교회가 이 법 앞에서 침묵한다면, 그것은 예수의 복음을 부정하는 일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박철 시민기자

폐지는 시대적 사명이며 신앙의 과제 

77년 동안 국가보안법은 수많은 양심수를 만들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 희생 위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세워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법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다. 

이제 국가보안법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한다. 폐지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신앙적 결단이다. 정의와 평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결단과 행동으로 쟁취해야 할 가치다. 

신앙의 양심으로 드리는 호소 

생전에 문익환 목사는 "남은 친북(親北)을 하고, 북은 친남(親南)을 해야 진정한 통일이 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말이 지금도 절절히 들려온다. 진정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바란다면, 북한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내려놓고 이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손에는 오직 사랑과 신뢰의 동기만 있어야 한다. 

오늘날 정치권과 일부 이른바 원로들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과거 이 법을 통해 권력에 기생하고 자기 보신에만 급급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고난당한 수많은 이들, 이름 없는 양심수들의 피와 눈물이 우리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예수 또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 구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국가보안법의 적용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교회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입으로는 예수의 사랑과 십자가를 설교하면서, 왜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가? 

이제 국가보안법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단지 정치적 과제가 아니라, 신앙의 명령이며 양심의 결단이다.이 법이 폐기될 때, 비로소 정의와 자유가 강물처럼 흐를 것이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이 땅 위에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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