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분향소 철거하면 우리도 죽은 목숨으로 나갈 것"
이태원 유가족 "분향소 지켜달라" 시민들에 호소
"경찰은 1인 시위와 시민들의 조문을 막지 마라"
정치권도 한목소리 "오세훈 눈물은 악어의 눈물"
"유족 한분 한분 위로하고 분향소 설치 협조하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킬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기로 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판하는 한편, 경찰을 향해 차벽과 방여벽을 치우고 시민들의 조문을 막지마라고 호소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회의는 6일 서울광장 시민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소속 정치인들과 종교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고 이지한 씨 아버지인 이종철 유가협 대표는 "유가협은 서울시로부터 어떠한 인도적 조치도 받지 못했다"며 "저희도 똑같은 국민인데도 불구하고 방치되고 따돌림 당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서울시가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추모공간을 제안한 것을 두고 "유가족들이 지하 4층 굴속으로 가서 이 참사로 인한 유가족 목소리가 조용히 사그라질 때까지 숨 못 쉬고 똑같이 죽으라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서울시장의 직무유기·직권남용이 아니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했지만 더 이상 대화할 용의가 없다고 한다"며 "어떻게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민들한테 목을 빳빳이 세우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따졌다.
이 대표는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이고 의무"라며 "지난해 11월 2일 합동분향소에는 영정과 위패가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국화꽃과 카네이션으로 치장된 우리 아이들의 분향소를 차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더 이상 서울시에서 유가족과 대화하지 않고 소통관, 추모관에 대한 일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서, 시민들을 향해 "서울시에 강력한 항의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고 이주영씨 아버지인 이정민 유가협 부대표는 "저희는 정부를 믿고 아무 걱정 없이 아이들이 나가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며 "정부는 무책임하게, 살려달라고 애원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을 방치하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말했다.
이 부대표는 "저희는 이태원 광장에서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많은 시민들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서 여기(서울광장)에 왔다"며 "그런데 이곳조차 있지 못 하게 나가라고 한다"고 탄식했다.
그는 "우리 가족들은 한몸으로 연대할 것"이라며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나가면 우리도 죽은 목숨으로 같이 나갈 것이다. 계고장 열 장, 백 장, 수천 장을 보내도 여기를 지킬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는 경찰들에게 "저기 분향소에 있는 희생자들은 여러분의 친구이자 형이고 누나이고 누이 동생들"이라며 "그들은 그날 이태원 골목에서 서서 죽었다. 차디찬 길바닥에 방치됐다가 전국으로 흩어져 죽음으로 부모형제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아이들이 살려달라 애원할 때 국가는 없었다. 경찰 여러분도 없었다"면서, 현장을 지키는 경찰들을 향해 "국화꽃 한 송이를 드리겠다. 제발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건드리지 마시고 국화꽃 하나 (헌화할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유가협과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서울시와 경찰에 △분향소 철거 시도 중단 △분향소 설치·운영 협조 △차벽·펜스(방어벽) 철거 △시민 조문과 1인 시위 보장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분향소를 철거하겠다는 서울시와 경찰의 의도는 결국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온전한 추모를 탄압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시민대책회의 이지현 공동운영위원장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 시민 조문이 줄을 잇는데도 경찰은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차벽과 펜스를 설치하고 조문하려는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방, 대응구조, 피해자 대응까지 제대로 한 게 없는데 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서울시와 경찰이 무슨 염치로 그런 일 하냐"며 " 분향소 철거 시도 즉각 중단하고 분향소 설치와 운영에 적극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남인순 의원은 "오 시장은 유가족이 제대로 추모할 수 있게 추모와 소통공간을 만들겠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라며 "유가족들이 찬 바닥에서 앉아 있는 것이 안 보이냐"고 질타했다.
이어 "오 시장이 흘린 눈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악어의 눈물인가"라며 "시민 분향소를 서울광장에 설치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행정대집행(강제철거)을 하겠다고 계고장을 언론에 알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남 의원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서울시를 향해 "정말 기가 막힌다. 유가족이 언제까지 피눈물 흘리고 고통당해야 하나"라며 "온전하게 추모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독립적인 진상 조사기구가 마련될 때까지 민주당은 함께 손잡고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오 시장에게 "국민과 서울 시민, 유가족들의 경고에 응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의원은 "유가족 한 분 한 분에게 사과하고, 공무원을 파견해서 유가족이 충분히 위로가 되도록 극진하게 정성껏 모시기 바란다"면서 "그것이 마지막 양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공동대표는 분향소 강제철거의 이유로 '안전'을 언급한 서울시를 향해서 "지금 와서 안전 운운하냐"고 비판하며 "오 시장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유가족을 지우고 시민들로부터 고립시킬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라"고 했다.
오 공동대표는 "이 사태를 이 문제를 해결할 진정한 책임은 오시장을 넘어 윤 대통령에게 있다"며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해야할 일은 유가족에게, 피해자 국민에게 사과하고 독립적 조사기구를 포함한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민 장관을 즉각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당초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시민분향소를 철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지했지만, 수많은 시민들과 더불어 정치권, 종교계 인사까지 철거를 막기 위해 모이면서 일단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서울시가 분향소 강제철거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기습 집행 시도 등이 우려된다. 이 때문에 유가족과 시민들은 계속해서 조문객을 받으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한편 이날 경찰이 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은 영정 사진과 국화꽃을 녹이기 위해 작은 전기 난로를 분향소로 가져가는 과정에서 서울시 직원과 경찰이 저지해 유가족이 기절하는 일이 발생했다. 유가족은 뇌진탕이 의심돼 119에 후송됐다.
이에 분향소를 지키던 유가족들이 오전 11시 10분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서울시 직원과 경찰들이 이를 완강하게 막으면서 약 1시간 20분 동안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이종철 대표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했는데 '사과할 이유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오 시장은 유가족이 항의하던 시간 오찬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