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불' 발언에 요동친 금융시장…주가↓ 환율↑ 채권↓
코스피 3일 연속 하락 3400 아래로 밀려
달러 환율 심리적 저지선 1400원 무너져
외국인 투매 영향 국고채 금리도 폭등세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요구에 투심 냉각
미국 경기 호전으로 금리인하 기대 저하
트럼프 대통령의 '3500억 달러는 선불' 발언에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국내 주가, 환율, 국채 등이 트리플 약세를 보였다. 한미 통상협상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다, 최근 미국 경기지표 호조로 미국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약화도 영향을 미쳤다.
코스피는 2% 넘게 떨어지면서 10거래일 만에 처음으로 34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원/달러 환율은 넉 달 만에 1410원대로 폭등했고, 국고채 금리도 외국인의 국채 선물 투매 속에 급등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투자 조건을 강요하는터라 환율은 상승 가능성이 열린 상태가 제법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정부가 협상 기술을 최대한 발휘해 한국이 감내 가능한 수준의 합의를 견인하길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폭탄에 3400선 아래로 밀려난 코스피
26일 증시는 코스피가 3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이날 전장 대비 85.06포인트(2.45%) 내린 3386.05에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지수가 3400선을 밑돈 것은 지난 12일(3,395.54) 이후 10거래일 만이다. 지수는 전장보다 30.72포인트(0.89%) 내린 3440.39로 출발해 낙폭을 키웠다. 한때 3365.73까지 내리기도 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6611억 원, 4889억 원을 순매도했고, 개인이 1조 975억 원을 순매수했다.
코스닥지수도 전장 대비 17.29포인트(2.03%) 내린 835.19에 거래를 마치며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1400원 가볍게 돌파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11.8원 오른 1412.4원을 기록했다. 이날 주간 거래 종가는 지난 5월 14일(1420.2원) 이후 약 넉 달 만에 최고치다.
환율은 전날보다 8.4원 오른 1409.0원으로 출발한 뒤 상승 폭을 키워 장 중 1414.0원까지 올랐다. 환율은 사흘 연속 상승하면서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400원과 1410원을 지난 24일과 25일 장중 차례로 뚫었다.
외국인 투매 속 국고채 금리 전구간에서 상승해
외국인의 원화 자산 투매 속에 국고채 금리도 일제히 급등했다. 채권 가격은 하락했다. 채권의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여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을 뜻한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4bp(1bp=0.01%포인트) 오른 연 2.562%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금리는 연 2.943%로 5.8bp 상승해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5년물과 2년물은 각각 4.3bp, 3.2bp 상승해 연 2.716%, 연 2.499%에 마감했다. 20년물은 연 2.879%로 3.6bp 올랐다. 30년물과 50년물은 각각 4.3bp, 4.3bp 상승해 연 2.812%, 연 2.678%를 기록했다.
채권 가격 하락을 이끈 건 외국인의 투매였다. 이날 외국인은 3년 채권 선물을 2만 7741계약, 10년 채권 선물 1만 2290계약을 순매도했다.
트럼프 선불 발언과 미국 경기 호조가 한국 금융시장 불안 야기
최근 주식시장이 하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며, 채권가격이 낮아진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한미 통상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증폭이 원화가치 자산의 투매를 촉발시켰다. 가뜩이나 한미간에 대미투자 관련 3500억 달러의 성격을 놓고 쳠예한 입장 차이가 벌어지는 마당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금액이 3500억 달러(약 490조 원)라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말했다.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발언이다.
거기에 더해 미국 경제가 견조한 상태임이 확인돼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2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확정치가 3.8%로 한 달 전 잠정치(3.3%)는 물론 시장 예상치(3.3%)를 크게 웃돌자, 미국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후퇴했다.
여기에 한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하고 있는 점도 외국인의 투매를 거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나 황건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이 잇달았고, 이들이 주요 변수로 꼽은 부동산 시장 과열 문제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으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줄어들었다.
특히 근심스러운 건 원화가치의 하락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이 ‘대미투자 협상 결과에 따른 향후 적정 환율 급등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달러당 원화값은 2027년 기준 ‘2년 집중 투자’ 시 1628원, ‘4년 분산 투자’ 시 1583원에 이를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동맹을 사실상 수탈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 이재명 정부가 한국이 감내 가능한 대미투자 조건을 관철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의 협상력을 깎아먹는 비난과 억지를 부리는 야당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