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물가↑ 고용↓…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들어가나?
계속 고개 드는 소비자물가…8월 2.9% 상승
실업수당 청구건수, 거의 4년 만에 최대 규모
물가 상승해도 고용 나쁘니 기준금리 내려야
연준, 연말까지 기준금리 2회 이상 인하 전망
물가 상승+성장 부진은 스태그플레이션 신호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했다. 7월보다 상승 폭이 더 커져 관세영향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더 놀라운 건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다. 9월 첫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021년 10월 넷째 주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비농업 신규 일자리 건수의 격감과 함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고용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형국이다.
물가가 고개를 들고 있는데도, 고용 시장의 상황이 워낙 급박한터라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건 이제 기정사실로 보인다. 문제는 그런다고 고용시장이 호전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정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지금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지속적으로 우상향하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미국 국내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 노동부가 11일(현지시간)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4% 올랐다. 시장 예상치(0.3%)도 웃돌고, 상승 폭도 7월(0.2%)보다 커졌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 폭은 1월(0.5%) 이후 최대치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2.9% 올라 상승 폭이 7월(2.7%)보다 확대됐다. CPI는 4월 바닥을 찍은 후 계속 우상향 중이다.
또한 8월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3% 상승해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예상치에도 부합했다. 지난해 동월 대비로는 3.1% 상승했다.
한편 연준이 중시하는 7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했다. 예상치에는 부합했지만 2월(2.9%)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전월 대비로는 0.3% 올랐다. 통상 연준이 ‘2%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 여부를 판단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를 지표로 삼는다.
2021년 10월 넷째 주 이후 최대를 기록한 신규 실업청구건수
인플레이션 불길이 다시 살아나는 신호가 뚜렷한 가운데 미국의 고용시장은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이날 발표된 9월 첫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계절 조정 기준으로 26만 30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시장 전망치 23만 5000건을 대폭 웃도는데다, 2021년 10월 넷째 주(26만 8000건) 이후 가장 많다. 4주 이동 평균 건수도 24만 500건으로 올해 6월 이후 최고치다.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 폭증은 실업률 상승을 의미한다.
한편 8월 비농업 신규일자리도 전월 대비 고작 2만 2000명이 증가해 전문가 전망치(7만 5000명)를 충격적으로 밑돌았다. 또한 7월 비농업 신규 일자리가 기존 발표치 '7만 3000명 증가'에서 '7만 9000명 증가'로 조금 높아졌지만, 6월 일자리는 '1만 4000명 증가'에서 '1만 3000명 감소'로 수정했다. 일자리가 감소한 것은 2020년 12월 이후 처음이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5~6월 증가 폭은 기존 발표치 29만 1000명에서 3만 3000명으로 무려 25만 8000명이나 축소 수정됐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노동 시장이 급랭하고 있다는 지표가 넉 달 연속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최소 2회 이상 인하할 가능성 높아
인플레이션의 불길이 다시 살아나는 조짐이 완연하지만, 고용시장이 무너지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연준이 기준금리를 최소 2회 이상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시장은 11일(현지시간) 오후 7시 현재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25bp(1bp=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93.9%로 반영하고 있다. 50bp 인하 가능성은 6.1%로 반영했다. 금리 동결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로이터 통신은 8~11일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107명 중 105명이 이달 25bp 인하를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조사 때(61%)보다 올라갔다.
리건 캐피털의 스카일러 와이앤드 매니징 디렉터는 "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은 연준이 노동시장의 지속적인 약세를 막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준다"고 했다. 그는 "'연준이 다음 주에 25bp를 인하하고, 올해 두 차례 더 25bp씩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제니오 알레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레이먼드 제임스는 "우리는 여전히 9월에 연준이 25bp 인하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준이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 한, 시장이 올해 예상한 거의 세 차례의 금리 인하를 두 차례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9월 연준은 4년 반 만에 금리 인하를 재개한 뒤 12월까지 75bp를 내렸다. 그러나 올해 들어 5회 연속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미국에 짙게 드리운 스태그플레이션 그림자
흔히 물가가 상승하면 고용도 좋아지고 경제도 성장하기 마련이다. 반면 물가가 하락하면 고용도 나빠지고 경제성장률도 부진한 게 통례다. 문제는 물가 상승과 성장 부진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다. 흔히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에 대한 해법을 경제학자들은 찾지 못했다.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스태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비하면 오히려 쉽다.
트럼프의 미국이 이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어가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 후 인플레이션은 진정시킨 채 고용시장만 살려내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 후 미국의 물가지표와 고용지표 추이를 주의 깊게 관찰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