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추모제' 불허했던 서울시, 유족들 반발에 "논의 중"

유가족 "오세훈 시장이 결정해야"…강행 예정

KBS "추모제 지장 없도록 촬영 앞당겨 진행"

민주당 "윤 정부 눈치보나…광장은 시민의 것"

2023-02-03     이승호 에디터
지난달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1.30

서울시가 오는 4일 오후 2시로 예정된 유가족과 시민들의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을 불허했다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으며 내부 논의 중”이라고 한발짝 물러섰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며 면밀히 검토한 뒤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2일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도 기사와 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살펴보고 있다”며 “유가족에게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지난달 12일 광화문광장에서 추모제를 개최하기 위해 사용 신청서를 서울시에 접수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달 26일과 31일, 두 차례에 걸쳐 광장 추모제 개최를 불허한다는 입장을 유가족 측에 통보했다.

서울시는 “3일 오후 2시~4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 남측 육조마당과 놀이마당에서 KBS의 방송 촬영이 예정돼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추모제와 방송 촬영 시간이 겹친다는 이유다. 서울시는 “4일부터 광화문광장 내 1.8m 높이의 책 모양 구조물 10 점도 설치해야 한다”는 이유도 들었다.

유가족들은 반발했고, KBS는 타협안을 내놨다. 유가족협의회는 “서울시가 광장 사용을 불허할 경우 세종대로에서 예정대로 추모제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이다.

KBS는 “추모제에 지장이 없도록 광화문광장 사용 시간을 앞당기겠다”는 타협안을 내놨다. KBS는 “유가족 측으로부터 광화문광장 사용 일정을 조정해 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다”며 “이에 제작진은 프로그램 촬영 이후 세트 철거 작업 등을 최대한 서둘러 4일 18시까지로 돼 있던 광화문광장 사용 시간을 12시(정오)까지로 앞당겨, 추모제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유가족 측에 알렸으며 서울시에도 통보했다”고 밝혔다.

송진영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추모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의 일선 공무원들은 시종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었다”며 “그런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최종 결정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리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추모제가 열리는 날, 민주당과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도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들었다”며 “유가족 측과 협의해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내비쳤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씨 어머니인 조미은 씨가 지난 3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출입문에 접근하던 중 경찰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2023.1.31.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일반적으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일정이 겹칠 경우 신청 주체끼리 조율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번엔 그나마도 하지 않았다”고 서울시의 결단을 촉구했다.

민주당 용산이태원참사대책본부(대책본부) 소속 남인순·이성만·박주민·오영환 의원 등은 2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는 윤석열 정부 눈치를 보면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이상민 장관 파면을 외치는 유족과 시민의 입을 막고 싶었던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추모 장소를 결정하는 건 유족들 몫”이며 “유족 의견이 최대한 존중 받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추모제 행사장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당일 유가족 측과 극우단체들의 충돌을 우려해 현장 방문으로 ‘안전 지키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 대변인도 “세금으로 조성된 광화문광장에서 목소릴 낼 수 있는 건 시민 권리”라며 “불허할 정도로 불법적 일을 저지를 것이라 예단하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 경찰에 협조 요청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시민, 유족에게 열어주고 그 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게 시간과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서울시를 압박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가족들의 광화문광장 사용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KBS는 합리적인 타협안을 내놨고, 유가족들은 “예정대로 추모제를 개최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서울시에 남은 명분은 “추모제 개최 예정일에 구조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없다. 궁색한 핑계다. 오 시장은 ‘정치적 이유로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는 비판을 받기 전에 유가족들에게 광장의 문을 열어야 한다. 광장은 시장의 것이 아니다. 시민의 것이다.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의 댓글창 운영에 대해 알려 드립니다] 

이태원 참사 집중 추모기간 중 2.3~5일에 2차 가해의 온상으로 지적되는 댓글창을 닫아 달라는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의 요청에 대해 시민언론 민들레는 그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다만 민들레의 관련 기사의 댓글창에는 다른 매체들에 비해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및 진상규명 노력을 지지하는 글들 외에 2차 가해에 해당되는 글은 거의-‘전혀’라고 해도 될 정도로-달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민들레는 댓글창을 닫아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의 글을 막기보다는 이 기간 중에는 혹시 달릴 수 있는 2차 가해성, 악성 댓글을 발견하는 대로 즉시 삭제 조치하는 방식으로 ‘댓글창 닫기’에 동참하기로 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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