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보란 듯 '반미 연대'…이재명 외교 본격 '시험대'
시진핑·김정은·푸틴, 톈안먼 망루에…66년만 '한 자리'
'한·미·일 동맹화' 캠프 데이비드 회동에 '반격'
윤석열, 북한에 활로…최대 수혜자는 김정은
북·러 시간 두되 한중 관계 복원 시급
'중국 봉쇄' 미 인태 전략 낙관 어려워
연내 북미 정상회담 성사 쉽지 않을 듯
김정은이 아쉬운 게 없는 상황이 문제
북한, 중국, 러시아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다.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열병식에서다. 이날 열병식을 지켜보는 톈안먼 광장 망루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앙에 서 있었고, 오른쪽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왼쪽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을 통해 "오늘날 인류는 다시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윈윈 협력과 제로섬 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중국 인민은 역사와 인류 문명의 진보라는 올바른 길에 굳건히 서서 평화 발전의 길을 견지하며, 세계 각국 인민과 함께 인류 운명 공동체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러시아 정상과 함께 '반미, '반서방 연대'를 보란 듯이 과시한 것이다. 연설을 마친 시 주석은 무개차에 올라 톈안먼 앞을 지나는 창안제(長安街)에 도열한 부대원들을 사열했다.
북·중·러 3국 정상, 66년만 '한 자리' 모여
중국 전승절 열병식서 보란 듯 '반미 연대'
북·중·러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건 1989년 구소련 붕괴로 냉전이 해체된 이후 처음이다. 구소련까지 포함해도 1959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 10주년 기념 열병식 이후 66년 만이다. 당시 톈안먼 광장 망루엔 김일성 주석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있었다. 1954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극히 이례적이란 점에서 이날 생중계된 북·중·러 3국 정상의 열병식 참관 모습은 전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한반도, 동북아를 포함해 세계 지정학적 구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내비치는 상징적 장면이다.
북·중·러 3국 정상의 회동은 한·미·일 3국 정상 회동을 의식한 행동임은 물론이다. 2023년 8월 18일 당시 한국의 윤석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정상회의를 열어 '준동맹' 수준의 3국 안보 협력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주적'인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을 뒷받침하고자 한 것이다.
북·중·러 정상 회동, 2년 전 이미 예고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회동에 '반격'
시기의 문제였을 뿐 북·중·러 정상 회동은 2년 전 이미 예고된 셈이다. 이번 중국 열병식을 계기로 남방 삼각인 한·미·일과 북방 삼각인 북·중·러 간의 '신냉전' 구도가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관측마저 나온다.
구체화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진영 대결 형태의 신냉전 구도는 미국이 바라던 그림은 아니었지 싶다. 바이든 때는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를 주저앉히고, 그 여세를 몰아 중국을 고립시키는 수순을 생각했을 것이다.
러시아 무너뜨리기 단계에선 유럽과 한·일 등 동맹국들의 공조는 물론, 러시아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과 인도의 협조가 필수적이었지만, 바이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쟁이 2년 반을 넘긴 지금 러시아의 승세가 굳어지면서 바이든의 전략은 사실상 실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또한 중국 고립에 집중하고자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복원하는 '역 키신저 전략'을 구사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뭣보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서 푸틴을 압박하고자 꺼내 든 관세 카드가 되려 역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트럼프는 자신의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시진핑을 향해 "당신이 미국에 대항할 모의를 하는데,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 달라"고 말해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분리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북·중·러 연대는 '역 키신저 전략' 실패
'중국 봉쇄' 미 인태 전략 낙관 어려워
러시아 원유 수입국에 '50% 관세 폭탄'을 경고했고, 인도가 시범 케이스가 됐다. 인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의 멤버로 대중 봉쇄에 필수적인, 미국 인·태 전략의 핵심인 인도를 아예 중국 쪽으로 밀어내는 모양새다. 인·태 전략의 앞날이 밝지 않아 보인다. 오죽하면 인도 역사학자인 카필 코미레디가 31일 자 뉴욕타임스에 "미국이 30년간 인도에 구애해 온 걸 트럼프가 몇 달 만에 날려버렸다"란 글을 썼을 정도다.
2년 전 8.18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한·미·일 어디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나도 3국 안보 협력체제는 깨지 못하게 미리 '대못'을 치는 차원에서 부랴부랴 기획됐다. 당시 윤석열-바이든-기시다의 의도대로 3국 모두 정권 교체에도 한·미·일 연대의 계승에 공감하고 있지만, 동맹국을 더 가혹하게 쥐어짜는 트럼프의 불합리한 관세 폭탄과 안보 비용 요구로 안으론 곪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반미 정서가 빠르게 확산하는 것도 중요한 변수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 한·미·일이 결속하니 북·중·러도 결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궁극적으로 중국을 노리는 미국에는 유리한 구도가 아니다. 이를 뒤집어 보면, 중국으로선 최상은 아니어도 미국의 공세를 완충할 제법 괜찮은 구도이고, 러시아나 일본의 관점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도다.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가시화?
김정은 최대 수혜, 이재명 입지 '협소'
한·미·일 vs 북·중·러란 '3 대 3 구도'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이고 김정은이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8~19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이전까지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 문제로 수없이 유엔의 제재를 받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에 동참했다. 그 당시 북한은 한·미·일·중·러와 '1 대 5' 구도로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이 최종 결렬된 데다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칩거했던 김정은은 4년 반 만인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고립 탈출'을 알렸다. 이듬해 6월 19일엔 푸틴이 24년 만에 평양을 찾아 자동군사개입 조항(제4조)을 담은 북·러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었다. 그 후 8월 12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를 침공하자, 북한은 이 조약에 근거해 8월 28일 파병을 결정했으며 그해 10월 북한 전투부대 등 1만1000명이 파병됐고 올해 1~2월에 약 3000명이 증원 개념으로 추가됐다. 북·러는 1년 가까이 전장에서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전우가 됐다.
고립무원 김정은 활로 터준 건 윤석열
분탕질은 윤석열, 뒷수습은 이재명 몫
이제 김정은의 외교는 중국을 향하고 있다. 6년 8개월 만에 중국을 다시 찾으며, 그것도 처음으로 다자 무대에 서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참가에 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는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증진을 통해 좀 더 많은 경제적 교류와 지원을 희망하고 있다"며 "북·러 관계 강화를 통해 안보는 러시아로부터 보장받고 북·중 관계 증진을 통해 경제적 이익은 중국에서 얻는다는 '안러경중(安露經中)'의 전략구상을 실현하려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5년 9월 2일)
활로를 터준 건 역설적으로 윤석열 수구보수 정권이었다. '힘에 의한 평화'와 '자유 통일'을 내세우며 극단적 대북 압박 정책을 펴는 한편, '가치 외교'와 '자유의 전사'를 외치며 우크라 전쟁과 대만 문제 등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면서 한·러, 한·중 관계를 분탕질했으며, 이는 북·러, 북·중 관계 개선의 촉매제가 됐다. 이를 반증하듯이 중국과 러시아는 2022년 5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사일 발사 관련 대북 제재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그 이후론 한미,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이 한반도 긴장의 주범이라면서 북한을 일관되게 두둔해왔다.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여정, 작년 담화서 "윤석열, 특등 공신"
북·러 시간 두되 한중 관계 복원은 시급
이런 신냉전 구도의 형성은 미, 일을 맹종했던 매국 성향의 윤석열 수구보수 정권이 지금도 있었다면, 김정은 정권과 적대적 공존을 해가며 장기 집권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반겼을 공산이 크다. 일찍이 현 국제정세를 '신냉전과 다극화'로 본 김정은에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는 최상의 상황이다. 그러잖아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작년 1월 담화를 통해 반북 대결로 일관한 윤석열에 대해 "우리에게는 자위적이며 당위적인 불가항력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단단히 공헌한 특등공신"이라고 속내를 냉소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신냉전 구도는 김정은에 가장 유리하다고 한다면, 한국의 민주개혁 진영, 특히 이재명 정부엔 가장 불리하다. 최악의 경우 자칫 한미동맹과 한미일 연대 틀에 갇히면서 '종속 변수'로 전락하고 북·중·러와의 대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일을 당할 수 있다. 지난달 23일 한일,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중심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임을 재확인했지만, 윤석열처럼 거기에만 갇혀선 안 된다. '적대성'을 드러내는 북·러와는 시간을 두더라도 한중 관계를 복원할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시진핑, 의외의 김정은 초대 카드 구사
이재명 정부에 윤석열과 차별화 주문?
이 대목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초대한 속내는 뭘까, 하는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가속화하는 북·러 밀착에 대한 중국의 우려와 견제 심리에 따른 것이란 해석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번 다자 무대에 '부정적' 이미지의 김정은을 굳이 초청할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김정은 카드로 이재명 정부를 압박하는 게 주된 의도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을 향해 미, 일에 맹종하며 반중 전선에 앞장섰던 윤석열과는 어떻게 '차별'할 건지를 묻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과 본격적으로 손잡고 핵과 한반도 문제를 다룰 때 이재명 정부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번 전승절 행사에 중국의 초청을 받았지만, 양해를 구하고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을 대신 참석토록 한 데서 이재명 정부의 고심이 묻어난다.
연내 북미 정상회담 성사 쉽지 않을 듯
김정은이 아쉬운 게 없는 상황이 문제
가시화하는 동북아 신냉전 구도를 뒤흔들 힘은 미국만 가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조력자)로 열심히 지원하겠다"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달라고 간곡히 요청한 것도 이런 현실 인식에서 비롯됐다. 트럼프가 "올해 안에 김정은과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지만, 실제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과 김정은은 서로에게 호의적이다. 문제는 김정은으로선 지금 아쉬운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대북 제재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안러경중' 하는 것만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줄 것도 마땅하지 않다. 핵 보유를 인정할 수도 없고 말이다. 이 대통령도 8월 21일 자 요미우리 인터뷰에서 △ 핵·미사일 동결 △ 감축 △ 비핵화 등 단계적 북핵 해법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해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일,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고비를 넘긴 이재명 외교가 또 다른 시험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