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⑧ 외부 아닌 '내부의 적' 탄압 위한 법
국민을 수동적 '신민'으로 위축시키려는 목적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운동이 새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는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이다. 19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 항일운동가와 천황제 반대론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 1945년 이후 분단 냉전체제 하의 남한에서 부활되어 21세기까지 아직 살아있다. 그것이 존속하는 명분은 아직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았고, 남한 내부에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집단이 ‘암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북한의 김여정은 남한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며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 발도 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국정원은 “핵 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는데, 이 성명에서 북한은 전쟁 자체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아니 30년 사이에 북한이 간첩을 내려보냈다거나, 남한 내의 친북세력을 지원하거나 조종한 흔적이 있나? 오히려 그 반대다. 윤석열 정부는 드론을 이북 상공에 띄워 전쟁을 유도한 혐의가 있고, 지금 ‘외환죄’ 수사가 진행 중이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으니, 안보에는 항상적인 위협 요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제 경제력 경쟁에서 더 이상 비교가 되지 않는 북한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남한 대중을 선동하여 남한 체제 붕괴를 시도한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국가보안법이 전쟁을 막지는 못한다. 우리는 북한을 계속 대화의 테이블로 마주하여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
모든 객관적 증거나 남북한의 모든 담론에서 남북한은 이제 거의 별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여전히 주적이며,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 단체’라는 냉전 시기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나? 윤석열 전대통령이 오히려 전쟁을 유도하려 했으니 그들이 사실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권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 세력이 아닌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 약 40건의 국가보안법 수사가 진행되었고, 여러 단체 간부들 대상의 수사, 기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 단체나 간부들이 실제 국가보안법 상의 북한 ‘고무·찬양’을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전 정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다가 윤석열 정권 들어서 수사가 본격화되었으니, 그것은 과거 이래의 정치적 기획이라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존립 명분은 사라졌고, 필요하다면 내란죄만으로도 안보 위협 사범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사실 한국 국민의 아마 반 이상, 젊은 세대의 대다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럼 사문화된 법을 없애면 되지 않나? 이제 북한을 노골적으로 찬양하거나 추종하는 사람을 거의 찾을 수 없고,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을 듣고서 그들에게 넘어가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니 그냥 없애도 좋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오래 존속하고 있나?
민주화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개정 운동이 나올 때마다 그랬듯이 지금도 국민의 힘이나 조선일보 등 한국의 보수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나오면 극력 반대할 것이다. 실효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데 극력 반대한다? 여기에 국가보안법의 건재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바로 국가보안법은 안보 위협 즉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48년 제정 당시부터 국가보안법의 존립 목적이 외적의 방어가 아니라 내부의 적, 정치적 좌익으로 몰아서 탄압하고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80퍼센트가 7조 ‘찬양·고무죄’ 때문이라는 것은 바로, 그 법의 존립 이유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 반공 이데올로기가 흔들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찬양, 고무가 아니라 반자본주의 사상 일반에 대한 ‘고무 찬양’이며, 더 나아가 한국의 지배 집단,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막고 그들을 위축시키자는 것이다. 즉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국 보수세력의 이익 보장, 즉 기득권 세력의 안보를 위한 법으로 기능했다.
즉 국가보안법의 기능은 외부의 적인 북한이 아니라 ‘내부의 적’의 자유로운 비판 의견 표출을 차단하는 데 있다. 윤석열 정부 당시 몇 번의 입틀막 사건, 그리고 12·3 계엄 선포야말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계엄 포고령에 나온 야당과 비판 세력을 적대시한 문구는 모두 국가보안법 정신에서 유래한다. 그 기조는 바로 사회에서 비판적인 정치 토론, 정책 논쟁을 막고, 기존 권력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표현, 사상, 토론의 자유는 보장되기 어려울뿐더러, 학교 교실에 사회적 의제, 사회정책 관련 토론이 들어오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을 정치맹, 즉 정치 자체에 무관심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학생과 시민이 그렇게 되면 결국 국민들은 생각없는 존재, 주류 보수세력의 선전과 주장에 이견을 표시하지 못하는 존재, 선거 때 그냥 수동적으로 투표만 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이 한국에서 여전히 부드러운 전체주의가 지속되는 이유다. 국가보안법은 그런 수동적 시민, 아니 일제의 천황제와 군사독재가 그러했듯이 기성 권력과 돈을 가진 세력의 신민(臣民)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당신이 혹 여러 모임에서 미국, 한국의 권력 집단, 판검사, 재벌 등을 비판하려는 논조를 펴려다 약간 주저한 적이 있는가? 그렇게 당신을 주저하게 만든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암묵적인 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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