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인권 짓뭉개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스리랑카 청년 벽돌더미 묶어 지게차로 인권 유린
피해자 평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우려
영암 양돈장 네팔 청년 자살 등 인권 유린 잇따라
노동부, 동료 노동자들 외면 방조가 사태 키워
우선 이주노동자들 한국어 이해 수준 높여야
고용허가제 등 차별적 이주노동제 철폐 등도 필요
대한민국은 정말로 선진국인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아·니·다. 이런 생각은 최근 전남 나주의 한 벽돌공장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더욱 굳어졌다. 스리랑카 국적의 서른 한 살 청년 이주노동자를 벽돌더미에 묶어 지게차로 이리저리 옮기며 30분가량 조롱한 사건이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무참하게 짓뭉개진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뉴스로 접했고 동영상까지 보았다. 참혹하고 부끄러운 광경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물론 선배 노동자가 자행한 인권 유린이다. 하지만 현장 동료들 모두 방조한 것이 더 큰 문제다. 공개된 영상을 보니 지게차를 따라다니면서 이 모든 것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는 노동자가 다수 있었다. 그 현장에서 누구 한 명이라도 강하게 제지를 했더라면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 한국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고 한국말도 서툴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스리랑카 노동자를 대신해 사건 발생 뒤 그 누구도 이를 적극적으로 언론이나 인권단체, 정부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생일날 축하 대신 저주를 받은 벽돌공장 스리랑카 청년
사건 그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도 그에 못지않은 문제로 보고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야만적 인권 유린 현장 모습이 담긴 충격적인 동영상을 보고 “소수자, 약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라며 엄단을 지시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 지게차 운전자인 50대 노동자를 주범으로 보고 특수감금·특수폭행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주범 한 명만 처벌하고 유야무야로 끝낼 수 있는 성격의 사건은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리고 한국민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실제 이 사건이 벌어진 지난 2월 26일은 피해자의 생일이었다. 축복을 받아야 할 날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가 지난해 말 단순노동을 하는 일반고용허가제(E-9)로 한국에 입국해 스무 명 남짓 노동자를 둔 이 벽돌공장에서 일한 지 석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5개월가량 지난 뒤인 7월 24일이 되어서야 현장 동영상과 함께 언론을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피해 이주노동자의 상담 신고를 받은 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란 단체가 이날 사건의 내막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뒤 범죄를 저지른 한국인 노동자와 방조 동료들은 “장난으로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스리랑카 이주노동자가 동료나 상관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 아니라 그동안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그는 꾹 참았다. 스리랑카에서 받는 급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보수를 받는 데다 몇 년 더 일하면 모국으로 돌아가서 집도 사고 마음에 둔 여성과 결혼도 할 수 있다는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사건 뒤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언어폭력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고 무시와 사건 관련한 침묵 강요만이 계속됐다.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결국 직접 노동인권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이 스리랑카 청년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로 남아 당시를 생각하거나 비슷한 상황이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증상이 도져 그를 갉아먹게 된다는 얘기다.
돼지농장, 달걀 포장 공장에서도 잇따르는 인권 유린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을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이주노동자 차별과 인권 유린 사건 중 하나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넘어간다면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될수록 한국 노동자의 권리도 탄탄해질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정책과 이들을 대하는 문화는 너무 오래 고질병을 앓고 있다. 나주 벽돌공장 사건이 벌어지기 나흘 전 나주시에 인접한 영암군의 한 돼지농장에서 20대 청년 네팔 이주노동자가 회사 기숙사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시도 때도 없이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괴롭히는 돼지농장 주인(사업주)의 폭압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정부 당국에 폭행 신고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6개월 만의 일이다.
이 돼지농장은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았다. 사건 발생 뒤 <한겨레21> 등 언론보도를 보면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이곳이 ‘교도소’로 불렸다. 2024년 한 해 동안 24명의 노동자가 돼지농장 ‘ㅇ축산’을 퇴사했다. 돼지를 3천 마리 넘게 키우는 이곳 대형 양돈장의 최대 고용 인원(40명)의 60%에 이른다. 사업주에게 폭행당한 이 회사 노동자가 이직했고, 고용센터 신고도 했다. 자살한 네팔 청년도 죽기 전 고용센터에 전화해 피해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증거가 있냐. 그냥은 (사업장 변경이) 안 된다”라는 답을 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네팔 청년 노동자 죽음 후에야 이곳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
2025년 5월 19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달걀 포장 공장에서 한국인 간부가 베트남 출신 20대 여성 노동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24~2025년에 걸쳐 경기도 안산시의 한 금속회사에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와 관리자로부터 심각한 폭행과 괴롭힘을 당한 사건이 널리 알려져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은 한국인 노동자의 무려 3.6배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고 인권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일터에서는 여전히 일부 노동자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모욕과 멸시를 당한다. 폭언과 폭행,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안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일하기를 강요받는다. 일을 시키는 관리자와 사업주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주노동자는 또한 안전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일한다. 이 때문에 일터에서 사고로 숨지는 산재사망률도 한국 노동자에 견줘 훨씬 높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이를 보정‧분석한 이주노동자 산재사망률은 한국인의 그것보다 무려 최대 3.6배나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매년 100~120명 안팎의 이주노동자가 숨지고 있다. 이는 산재보험으로 인정받은 사례에 국한한 것이어서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더 많다.
정부는 그동안 이주노동자 산재를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고용허가제 대상 이주노동자 입국 전 안전보건교육 시간 확대 △위험표지 송출국 언어로 표시 △송출국 언어로 된 안전보건 교육교재와 동영상 강화 등의 정책 또는 프로그램 개발‧보급을 꾀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3~4년이 된 이주노동자 가운데에도 여전히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일터에서 안전관리자, 한국인 동료 노동자와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안전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언어 소통을 위한 다각적 방안 마련 필요
이주노동자를 위험에 빠트리는 가장 큰 요소는 노동환경과 생활 여건 등을 배제하면 언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나 안전보건 교육, 일하는 도중 지시‧전달 이해와 이에 따른 행동 등에 우리말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가 되려는 외국인은 반드시 상당 수준의 한국어를 이해해야만 비자 발급을 해야 한다. 또 들어온 뒤에도 회사 또는 한국 정부가 이들을 위한 한국어 수준 향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정 수준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며 하위 수준자에게는 페널티를 주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이러한 한국어 수준 향상은 인권 침해나 유린을 막을 수 있고 자신의 권리 보호, 숙련공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주노동자도 임금 상승, 장기 체류, 한국 생활 만족도를 높이는데도 큰 구실을 할 것으로 본다. 이를 실행하는 기업에 정부가 비용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인권단체와 정의당을 비롯한 친노동정당 등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강제노동 양산, 차별과 폭력의 뿌리인 사업장 변경 제한 철폐 또는 혁신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차별적 이주노동제 철폐와 노동허가제 실시 △고용 기간 연장 신청 자격을 노동자에게도 부여 △이주노동자 차별과 폭력, 괴롭힘에 대한 엄중 처벌 △이주노동제 근본적 개선을 위한 노정협의체 구성 등을 정부와 국회는 심도 있게 살펴야 한다.
이주노동자 안전해야 한국인 노동자도 안전하다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는 한국인 노동자도 안전하고 건강하다. 노동자의 국적, 나이, 성별, 학력, 숙련도를 따지지 않으며 안전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일터가 곧 선진 일터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산재 사고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성패는 바로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얼마나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나주 벽돌공장 사건 피해자인 스리랑카 청년은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이 사건을 규탄하고 대책을 명령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하는 회사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에 만들어지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와 우리 사회는 그의 부탁에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