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 ⑦ 이 법을 놔두고 5.18을 말할 수 없다
광주학살 가능케 했던 법이 버젓이 살아 있는 현실
1980년 5월, 나는 광주 충장로 3가에 살고 있었다.
옥상에 쏟아지는 5월의 햇살은 눈부시게 고왔다. 학교를 가지 않고, 옥상에 올라와 느끼는 햇살과 바람은 자유롭고 충만한 즐거움이었다. 작은 아이 큰 아이들이 모여서 터뜨리는 웃음소리와 하늘을 향한 힘찬 손 인사가 까르르 경쾌했다.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던 어른들은 허겁지겁 달려왔다. 다급하고 우악스럽게 우리들을 옥상에서 끌어내리고 옥상문을 닫아 걸었다. 헬리콥터의 출현에 흥분상태의 찰나의 즐거움을 망쳐놓은, 그러면서도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 우왁스러움에 4살짜리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고, 나도 서럽고 억울했다.
학교를 갑자기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대문 밖을 나가지 못한다는 것, 어른들의 불안한 단속으로 두렵고 갑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늘 안타깝다. 차마 울지 못했던 4학년 사촌오빠도 3학년 언니도 2학년 나보다 엄마와 이모가 먼저 울 것 같았다. 이내 헬리콥터만큼 크고 위협적인 소리가 들렸다. 타탕타탕타탕타탕타탕..
갑작스런 휴교가 기쁨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니랑 방바닥에 귀를 대면 탈탈탈탈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엄마와 이모가 쌀과 먹을 것을 사오마 하고 나가기 전 단도리 단도리 단도리. 그리고 아빠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엄마와 같은 집 2층에 사시던 이모와 이모부가 아빠의 부재를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빠는 전남매일신문 기자였다.
그 뒤로 많은 사연이 집안을 들락거렸다. 광주 곳곳마다 서럽고 참담한 절규들이 박혔다. 긴 시간 동안 사는 내내 집안의 가구와 벽지에조차도 5.18의 절망이 들러붙어 절어 있었다. 아픔이 눅진하게 들러붙은 광주만의 공기에는 처절함이 가득했다. 그 처연한 공기를 마시면서 광주는 우리는 사연 많은 세월들을 살아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학살당한 시민들과 살아남아 있는 광주시민들을 강타한 것은 국가보안법이었다.
5.18 광주학살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국가보안법이다. 굉장히 많은 정치인들이 광주를 찾아오고 광주를 기억한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을 말하지 않았다. 광주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노라 약속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에서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5.18 광주학살을 가능케 했던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살아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광주 5.18 정신은 국가보안법과 공존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없이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겠다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결혼시키려는 것만큼 잔인하고 무도한 이야기인 것이다.
지난 12월 3일 내란의 밤. 다시, 계엄을 맞는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지인들은 국회를 가고 있다는데...내일의 등교가 무사히 가능할 것인가 생각하며 아이들을 잠자리로 들여보내면서 솟아나는 두려움, 두려움을 밀어내며 분노가 밀려왔다. 12·3 내란 이후 봄은 대한민국의 분노였다. 시민들과 국회가 윤석열과 내란세력을 기선 제압했으나, 내란이 멈추지 않는 기득권 곳곳의 쿠데타로 2025의 겨울과 봄은 불타올랐었다. 한 명 한 명 그 엄청난 한 명들의 모임이 막고 두드리고 밀어내서 겨우 겨우 만들어 놓은 6월 3일의 결정은 멈춤이고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멈춤은 멈추지 않았고,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이 상황은 무엇인가?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내란세력을 용서하고, 내란세력과 화해하자고 우리를 어르고 달래며 속삭이는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의 역사를 교육하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당하고 7년 동안 재판받으며 시달려야했던 역사교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당하고 압수수색을 받은 시인과 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색깔 앞에서 생각이 멈춘다는 예술가가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국가보안법으로 체포당하고, 법정구속되어 잡혀가고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은 광장에 나왔던 우리 시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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