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⑤ 내란세력의 동아줄, 박물관에 보내야
악착같이 되살아나는 법…사문화만으론 안 돼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일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쳐 몇 시간 만에 좌절됐지만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반국가 세력으로 몰려 ‘처단’될 뻔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옭아넣었던 ‘치안유지법’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윤석열의 난’에서 보듯이 이 악법은 여전히 날선 이빨로 국민의 안위와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3대 특검법으로 내란세력에 대한 심판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들 세력이 무기 삼았던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않는다면 언제 또 정의가 유린될지 알 수 없다.
이에 시민사회에서 이참에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자며 국보법 폐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7월 1일 100여 개 사회단체들과 이 법의 피해자들 1203인은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을 발표하고 국회 입법청원에 돌입했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이 문제이고,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해 10회(예정)에 걸쳐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편집자 주).
지난 4월 9일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 50주기였다. 이날은 50번째 사법 암흑의 날이기도 하다. 국가가 고문으로 증거를 조작해 사형을 선고하고, 24시간도 채 지나기도 전에 사형을 집행해 8명의 고귀한 생명을 사법살인 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도예종·서도원·하재완·이수병·김용원·송상진·우홍선·여정남,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염원했을 뿐인 이들 8명의 목숨을 앗아간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된 줄 알았다. 문재인 정부 시기 들어와 남북 화해국면이 시작되었고, 국정원법을 개정하여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의당은 강은미 의원 주도로 2021년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발의했고, 한국진보연대와 민변은 10만인 폐지 청원 운동을 시작해 10일도 채 안 돼 성사시켰다. 결국 폐지 입법안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어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모였다고 판단했다.
그런 국가보안법을 다시 끄집어내 2022년 철 지난 공안정국을 열어젖힌 자, 바로 윤석열이었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과오와 몰락의 길만 걸었던 그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반국가세력’ 운운해대며 국가보안법 바람을 일으키려 들었다. 그가 파면된 4월 4일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50주기를 5일 앞둔 날이었다. 그를 역사 밖으로 쫓아낸 뒤에야 2025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가보안법 되살린 윤석열을 쫓아낸 해, 그리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 50주기. 국가보안법 폐지 원년으로 삼기에 이만큼 상징적인 시기도 없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국가보안법이 다시 활개치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상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되었던 문재인 정부 5년이 끝나자마자 윤석열이 국가보안법을 재활용했듯이, 이 법은 사문화하는 것으로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누군가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의 반대자들이 있는 한, 낡은 이념전쟁을 조장하면 정치적 이익을 노릴 수 있다고 믿는 정치세력이 잔존하는 한 국가보안법은 몇 번이고 되살아나 이 나라의 역사를 한참이나 뒤로 되돌리고 말 것이다.
정의당에 있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일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일과 목적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란세력의 완전한 청산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권력을 잃고 쪼그라들었던 내란세력은 그때마다 차별몰이와 공안몰이를 구심점 삼아 재결집하곤 했다. 정책적 실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내부 자정도 불가능하게 된 내란세력에게 남은 동아줄이란 차별과 공안뿐이다. 즉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그들의 마지막 남은 동아줄을 끊어버리는 일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21대 대선에서 정의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정의당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21대 국회인 2021년 10월 민형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이 마지막이며, 22대 국회에서는 관련한 법안이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전혀 언급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이야기하면 다시 이념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되어, 중도보수를 선언하고 실용주의를 주창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체성과 배치될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도리어 이념전쟁의 잔재이며 실용주의의 방해꾼이며, 케케묵은 반공 타령과 종북몰이의 효과적인 도구다. 구질서의 병폐, 군사독재의 잔재,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확실하게 폐지해야 지난 시대의 정치를 비로소 박물관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기도 하다. 광복 3년 뒤 국가보안법이 탄생했다. 이런 법이 77년이나 존속되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광복 80주년, 그리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 50주기, 이 소중한 시기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되겠다. 정의당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권 선진국,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썩은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국민과 함께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에서도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