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이터 존슨과 아웃복서 박정희의 워싱턴 매치
[베트남 참전 60돌]⑯ 동맹인가 보조인가?
박, 쿠데타 리더에서 미국의 파트너로 부상
존슨, 베트남전 파병 증원 집요하게 요구해
주한 미군 감축과 증파 요구는 모순된 주장
민심 동요 내세워 원조 확대 요구한 박정희
쿠데타 리더에서 선출된 대통령으로. 이제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파트너. 박정희는 4년 동안 많은 변신을 했다. 1965년 5월 17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 1961년 11월 그는 케네디로부터 냉랭한 대접를 받고, "빨리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라"는 일침을 들어야 했다. 3년 반의 세월이 지나 박정희는 존슨과 담판을 지으러 다시 백악관을 찾았다.
오후 5시 15분. 오벌 오피스는 4각의 권투 경기장이었다. 두 선수가 링에 올랐다. 린든 비 존슨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한국 대통령.
존슨은 전형적인 인파이터이다.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상대에 달려들어 여러 종류의 펀치를 섞어 날린다. 상대를 지치게 하면서 녹아웃을 노린다. 인파이터가 이기려면 '압도적(Overwhelming)'인 공격성, 즉 돌파력과 압박 능력을 과시해야 한다. 성공한 인파이터에 대해서 펀치가 '망치'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박정희는 아웃 복서다. 상대에게서 떨어져서 거리를 재고 펀치를 날린다. 양보다는 질이다. 아웃 복서는 민첩한 풋워크가 있어야 한다. 펀치력을 극대화하려면 거리 설정이 필수이기 문이다. 제대로 친 펀치는 압도적이기보다는 충격, 즉 쇼크 효과로 상대를 흔들어 놓는다. 이를 '송곳' 같은 펀치라고 평한다. 일반적으로 조 프레이저를 인-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아웃-복서라 평한다.
존슨에게는 망치 같은 펀치력이 있었다. '군사, 경제 원조'다. 박정희에게는 압도적인 상대이지만, 존슨에게 던질 수 있는 효과적인 펀치가 있었다. '베트남 증파'이다. 존슨은 1회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인파이터답게 박정희에게 달려 나와 펀치를 연거푸 날렸다. 이 매치의 기록인 대화록의 첫 문단은 침착하게 읽어야 제대로 뜻을 파악할 수 있다.
"존슨 대통령은 미국이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한국에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주둔 병력을 한국에 유지할 계획이며, 병력 감축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만약 조정을 하게 되면,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며,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President Johnson said that the U.S. planned to extend all possible aid to Korea. It planned to keep its troops there, and no reduction of troop strength was contemplated. However, if there were an adjustment, President Park would be the first to know about it, and full consultation would be held beforehand."
여기서 존슨이 무엇을 테이블 위에 내놓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박정희는 무엇을 확실하게 존슨으로부터 얻었나? 존슨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한국군의 병력 규모에 변화를 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 '계획'이 바뀔 수 있나? "가능한데 변화가 생긴다면 한국 정부와 상의해 결정할 것"이라 했다. 이 대목에서 박정희가 존슨으로부터 보장받은 것은 '미국의 '계획'을 미리 알려주겠다'가 전부다. 존슨은 펀치를 날리고 뒤로 살짝 빠진 모양새다.
존슨의 공격이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덕담이란 주먹을 날렸다. 소위 '매력 공세 (charm offensive)'이다. 존슨은 "난제인 한일 협상이 박정희의 지도력 덕분에 성공적이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이어 그가 치고 들어왔다. "한일 조약 체결이 베트남 문제와 관련해 (한미) 공동 노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박정희 선수도 물론 맞펀치를 날렸다. 한일 협상이 앞으로 한 달 안에 타결될 것이라며 희망적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난 후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박정희는 "협상을 방해하려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지만, 내 자신의 홍보 및 기타 노력을 통해 협정 체결을 확실히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미국을 애태우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자신의 역할이 절대적임을 상기시켰다. 박정희의 이 발언에 아쉬움이 있다. '무책임한'이란 표현이다. 반대 세력을 하찮아 보이게(trivialize) 해서 얻을 것이 없는 코멘트다. (단순히 무책임한 반대 세력이라면 박정희가 계엄령(1964년 6월)과 위수령(1965년 8월)을 선포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존슨이 또 원조 얘기를 꺼냈다.
"(미국은) 1954년 (한미 상호 방어) 조약에 따른 우리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한국의 안보가 손상되지 않도록 현재와 동등한 수준의 군사력을 한국에 유지한다. (We would keep in Korea a military strength equivalent to that at present so that, in accordance with our commitments under the 1954 treaty, Korean security would not suffer.)"
그의 이 발언은 한국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의지 표명이란 분석이 많다. 더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먼저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10년 이상 상점 전시대에 놓여 있었던 물건이다. 신상품이 아니다. 베트남과 관계없이 지켜야 하는 공약이다. 한국은 미국이 상황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여유있는 지정학적 공간이 아니었다. 미국이 한반도를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한국이 베트남에 전투 부대를 파병하는 것과 관계없이 미국은 자신을 위해 방위 조약을 준수해야 했다. 미국의 국제 패권 시스템은 다자 또는 양국 간의 방위조약과 동맹관계로 형성되어있다. 한미 방위조약은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의 전략적 린치핀(핵심 부품)이다. 그럼에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시혜로 보는 시각은 지금도 있다.
어쨌든 존슨의 발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현재와 동등한 수준의 군사력'이다. 군사력은 지상군만을 말하지 않는다. 지상군을 줄여도 다른 무력 수단으로 공백 메울 수 있다. 박정희가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케네디를 방문했을 때, 국방부 장관 맥나마라는 마치 사관학교 생도 가르치듯 장황하게 한국이 의지할 수 있는 미국의 핵전력에 관해 설명했다. 박정희에게 군대 머릿수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맥나마라는 미국의 군사력은 공산권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전제하고, 케네디의 지시에 따라 이 상태는 유지될 것이라 했다. 핵전력 측면에서는, 최근 공산권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소련보다 상당히 우세하다. 양적으로는 3~8배, 질적으로는 그보다 더 앞서 있다고 했다. 이런 자랑도 했다. 핵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폭격기가 1700대인데 이 중 850대가 15분이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갈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마치 비싼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 같았다. 옆의 케네디도 미국이 먼저 핵 공격을 당해도 소비에트를 더 강력하게 반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들었다.
맥나마라가 제시한 수치들의 본뜻은 재래식 군사력 증강을 위해 미국의 군사 지원을 매달리고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풀어본다. 1. 북한은 남한을 침략하지 못한다. 2. 중국과 소련이 북한을 후원하지 않을 것이다. 3. 그 이유는 미국의 핵전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병력을 줄여도 안보에는 지장이 없다. 4. 60만 대군을 유지하는 비용의 일부를 경제개발 자금으로 돌리면 된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사고는 '억제력 (deterrence)'이다. 손자병법의 가르침과 같다.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 싸우지 않고도 적을 굴복시키는 방책이 있다면 최고다. 하지만 전쟁 억제력은 비싸다. 오래 전에 야간 절도범이 담벼락을 넘지 못하게 한다며 유리 조각을 콘크리트 담 위에 박는 억지책을 이용한 집들이 간혹 있었다. 두꺼운 수건을 덮으면 무력화되는 수준의 억제력이었다. 동네에 도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의 욕구를 무력화하려면 정신이 번쩍 드는 가시성과 과시성이 합쳐진 억제 수단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는 그 어떤 쪽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전략사고는 독일의 군사이론가 클라우제비츠에 가까웠다. 전쟁에서 승리와 패배의 개념은 단순하다. 적의 병력을 부수는 것을 의미한다. 사망과 부상 또는 기타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 완전하게, 아니면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을 만큼 파괴해야 승리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는 적의 섬멸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적을 전장에서 섬멸할 수 있는 군사력을 원했다. 그에게 군사력의 핵심은 적을 죽이거나 파괴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미국과 생각이 많이 달랐다.
존슨과 박정희의 전략 사고에 다른 점이 또 있다. 박정희에게는 미국의 가공할 군사력이 한반도에 투입되려면 촘촘한 인계철선이 필요했다. 미군이 희생돼야 미국이 온다는 당연한 전략 사고였다.
미국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65년 봄 박정희의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나온 종합 정보 보고서가 있다. 한국군 전투 부대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공산권의 반응을 분석한 문건이다. 한국군이 와도 위험 상황으로 간주해야 하는 공산 세력의 행동은 없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한국군 참전을 선전 선동에 이용할 수 있으나, 중국도, 북한도, 북베트남도, 남베트남의 인민해방전선도 추가적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적 (공산권)의 시각에서 한국군은 중요하거나 결정적 요소가 아니란 뜻이다. 북베트남이 한국의 참전을 이유로 들어 소련이 더 많이 또 빨리 원조를 제공할 것을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 전투 병력의 존재가 "그 자체로 군사적 상황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가 결론이다. 다시 말해 한국군은 한국과 미국을 위한 상징적 가치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군사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한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북한과 북한의 보호국들을 자극할 수 있는 군사 행동을 멀리 타국에 가서 하는 만큼 한국에 대한 안전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박정희는 주장했다. 특히 일부 주한 미군의 재배치 같은 얘기가 한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며, 감군 얘기가 없어야 한국이 불안감을 극복하고 파병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박정희 선수가 존슨 선수에게 잽을 날렸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한 마디(펀치)하면 존슨은 네다섯 마디했다. 박정희는 그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2)을 말하면서 미국의 경제 원조가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존슨이 또 연속 펀치를 날렸다. 숫자로 받아쳤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해외 원조로 1000억 달러를 지출했고, 16만 명이 타국을 돕다 생명을 잃었다. 이런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감사한 마음이 없는 나라들이 있다. 예산권을 갖고 있는 의회가 화나지 않을 수 없다. 원조 정책을 아예 없애자는 화난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였다. 미국의 고마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라 운영을 잘해 전에 비해 강해졌고, 그 결과 베트남에서 미국을 돕고 있다. 의회가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존슨 펀치의 노련함이 보인다. 베트남에서 미국을 도와야 의회가 감동할 것이고, 그래야 원조를 더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반문이다. 의회가 점점 더 구두쇠가 되어 가는데, 한국의 2000명 비둘기 부대 파병이 큰일을 했다. 해외 원조보다는 미국이 우선이라고 외치는 의원들을 움직였다. 존슨의 발언으로 박정희는 선택의 여지를 잃어버렸다. 도움을 목말라하는 박정희에게 원조를 원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않냐고 반문한 격이다. 그리고 존슨은 박정희에게 1개 전투 사단을 요구했다.
존슨은 증파를 요구하고 나서 반대급부를 언급했다. 미국은 한국에 필요한 품목의 수입을 지원하고, 개발 차관을 제공하고, 기술 지원 및 잉여 농산품 제공을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박정희를 향해 잽을 날렸다.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했다. 이 좋은 인상을 베트남 참전 거부로 망치지 말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박정희 선수도 이날 선방했다. 발놀림이 좋았다. 전투 부대 파병을 개인적으로 지지하지만, 확답은 줄 수 없다고 했다. 파병 제의를 연구 검토를 해봐야 하는데, 미국에서 들려오는 주한 미군 감축설 등이 자신의 입지를 좁힌다고 했다.
꽤 좋은 펀치도 한 번 날렸다. 한국의 국민은 베트남에 너무 많은 군대를 보내 한반도의 전선을 약화하면 북한이 군사 행동을 취할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요즘 표현으로 개인적으로는 존슨의 편이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민심을 거스를 수야 없지 않냐는 뜻이다. 한국인들의 우려를 잠재울 반대급부를 제공하란 요구다. 아웃-파이터는 치고 빠져야 한다. 존슨의 의회 쪽으로 치고 빠졌다면 박정희는 민심 뒤로 몸을 숨겼다.
존슨은 한국의 전투 부대 파병이 가져올 다른 효과를 언급했다. 뜻이 정확하지 않지만, 한국의 파병에 대한 합의가 있으면 북한으로부터의 압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베트남에서의 한미 동맹이 북한을 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한국보다 베트남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동남아시아 우방들이 한국의 참전에 자극받아 미국과 연합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한국의 베트남 증파는 존슨에게 1석3조였다. 첫째, 한국군의 군사적 도움을 간과할 수 없다. 둘째, 국제 사회와 미 의회를 향해 베트남에 자유세계 연합 전선이 형성돼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셋째,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 한국의 희생정신을 닮으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에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리 여러 혜택을 나열해도 결국 답은 '원조'다. 불편한 진실이다.
이 역사적 경기를 복기하면, 존슨 선수는 베트남 증파를 지치지 않고 거듭 요청하면서, 그래야 의회가 움직이고 원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대편 박정희 선수는 증파 의사가 있지만, 미군 철수 논의를 끝내고 경제 원조에 대한 답이 주지 않으면 자신도 확답을 못 하겠다며 버텼다.
박정희는 이미 "존슨 대통령의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여러 루트를 통해서 전했다. 병력을 보내겠다는 메시지는 주었지만, 미국의 말버릇과 태도는 좀 고쳐야겠다는 '잽'을 날렸다고 할 수 있다. 1961년과는 상황이 크게 달랐다. 이 시합은 다음 날에도 이어지지만, 현재 스코어는 동점으로 볼 수 있었다.
이날 존슨 선수는 끝까지 글러브를 내리지 않았다. 대화록에는 "(존슨)대통령은 한국이 1개 사단 규모로 증파하기 바란다는 뜻을 거듭 전하며 회담을 끝냈다"라고 기록돼 있다.
존슨은 잘 싸웠지만, 한 가지 아쉬운 감점의 요인이 있었다. 백악관 안보 보좌관실의 제임스 톰슨은 첫 회담 다음 날 존슨에게 전날을 돌아보며 몇 가지를 조언했다.
미국 측 통역 폴 크레인에 따르면 첫 만남에서 존슨이 박정희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매우 수줍음을 타는 박정희에게 오늘(18일)은 그가 하고 싶은 말,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라고 했다.
존슨이 너무 말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복싱으로 치면 펀치를 너무 많이 날렸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