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뺨치는 로봇화가 '아이다'…미술시간 뭘 가르치나?

인공지능 로봇이 영국 국왕의 초상화 그려 화제

개성과 창의성 강조해 온 전통 미술교육 딜레마

AI 도움으로 장애 극복해 예술 활동 가능해진다

미술수업에 알고리즘 활용 등 새로운 도전 열어

2025-07-30     김성수 시민기자
오른쪽에 서 있는 영국 AI  로봇 아이다(Ai-Da)/맨 오른쪽)가 그린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초상화 등 그림이 공개되면서 영국 미술가협회는 인간과 AI의 창의성에 대한 윤리적 질문에 직면했다. (flickr)

왕의 초상화를 그린 건 화가가 아니라 영국의 로봇 

올해 7월 중순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벌어진 일은 가히 충격적이다. '알고리즘 킹'이라는 제목의 유화 작품이 공개되었는데, 그린 이는 다름 아닌 영국의 아이다(Ai-Da) 로봇이다. 찰스 3세 국왕의 초상화를 그린 이 '예술가'는 눈에 달린 첨단 카메라와 복잡한 인공지능 알고리즘, 특별히 설계된 로봇 팔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아이다는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다. 유엔 정상회의에서 "폐하 찰스 3세의 초상화를 선보이는 것은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명이며, 인공지능이 문화지형을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라고 연설까지 했다. 로봇이 연설까지 하는 시대, 이제 정말 무엇이든 가능한 모양이다. 로봇 아이다가 연설하는 영상 (The Intersection of Art and AI) 

하지만 잠깐,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이 로봇은 찰스 3세를 그리면서 "아, 이분 귀가 참 크시네"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요즘 왕실도 참 힘들겠구나" 하며 동정심이라도 느꼈을까? 아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아이다에게 찰스 3세는 그저 분석해야 할 픽셀 덩어리일 뿐이었을 테니까.

 

영국의 인공지능 로봇 화가 아이다. (영국 AI Magazine)

미술 교실에 나타난 불청객

당신이라면 아이다를 미술 시간에 초대하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현대 교육이 마주한 근본적 딜레마를 담고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예술 작품이 진정한 표현인지, 아니면 그저 프로그램 된 시뮬레이션인지 묻는다.

전통적으로 미술교육은 '개성'과 '창의성'을 강조해 왔다. "네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을 표현해 보자"며 교사들은 학생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아이다의 등장은 이런 개념들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과연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인간만의 전유물인가? 아니면 알고리즘도 창의적일 수 있는가?

상상해 보자.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오늘은 자화상을 그려보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아이다 로봇은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요? 거울을 보면 금속과 전선만 보일 텐데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선생님은 한동안 말문이 막히지 않을까?

창작의 민주화인가, 예술의 몰락인가

사실 아이다의 등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드디어 예술이 민주화되었다!"며 환호한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손 떨리는 할머니도, 시각장애인도 이제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쪽은 "예술이 죽었다"며 통곡한다. 수천 년간 인간만의 영역이었던 창작이 기계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할 때 느꼈을 영감과 고뇌, 반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며 쏟아낸 절절한 마음이 모두 허상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아이다가 붓을 들고 있다고 해서 인간 화가들이 모두 실업자가 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런 상황이야말로 인간 예술가들에게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 로봇 화가 아이다(오른쪽)의 창시자 아이델 멜러(Aiden Meller)(왼쪽).(사진출처: Interalia 잡지)

교사들이 맞닥뜨린 새로운 숙제

"인공지능이 만든 예술은 진짜 표현인가, 가짜 시뮬레이션인가?"

이 질문 앞에서 교육자들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인공지능 작품 분석법을 가르칠 것인가?"

미술 감상 시간에 "이 작품의 붓질을 보면 작가의 감정을 알 수 있어요"라고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이 알고리즘의 패턴을 보면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알 수 있어요"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예를 들어 아이다의 찰스 3세 초상화를 분석할 때, 학생들은 "왜 로봇이 국왕의 눈을 이렇게 표현했을까?"보다 "어떤 데이터 세트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을까?"를 궁금해 한다. 어찌 보면 더 과학적인 접근법이다.

 

영국 AI 연구원 조나단이 AI를 활용해 그린 '반(半)인간 반AI'. (Jonathan)

창작, 작가권, 예술의 미래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

어쩌면 아이다의 등장은 우리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본질이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고 있느냐에 있다면, 기계도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아이다의 작품을 보고 감동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감동은 가짜인가? 그 사람이 로봇이 그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감동받았다면 어떨까? 감동의 진위는 누가 판단하는가?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미술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학생들은 단순히 그림 그리는 기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철학, 기술과 인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미술실의 새로운 동거인

사실 아이다 같은 존재는 미술 교육계에 꽤나 골치 아픈 존재다. 학생들이 "선생님, 로봇도 그림을 그리는데 우리가 왜 연필을 잡고 있어야 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음... 그게 말이지... 어... 손으로 그려야 마음이 전해져..."라고 얼버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이야말로 진짜 교육의 시작점일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더 깊이 탐구하게 만드는 계기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다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로봇 덕분에 "왜 인간이 예술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영국 AI 연구원 조나단이 AI를 활용해 그린 '반(半)인간 반AI'. (Jonathan)

알고리즘 시대의 미술교육

그렇다면 앞으로 미술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기법보다는 사고를 가르쳐야 한다. 붓질 연습보다는 "왜 이것을 표현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늘려야 한다. 아이다는 완벽한 기법을 구사할 수 있지만, 표현하고 싶은 간절함은 없다.

둘째, 협업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다와 같은 인공지능을 적대시하기보다는, 어떻게 함께 작업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인간은 아이디어와 감정을, 기계는 정교한 실행을 담당하는 새로운 창작 방식 말이다.

셋째,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영국 AI 연구원 조나단이 AI를 활용해 그린 '반(半)인간 반AI'.(Jonathan)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영국 왕실의 미래와 현대생활에서 전통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이다의 찰스 국왕 초상화는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혁신을 잇는 상징적 다리 역할을 한다.

이는 단순히 로봇이 그린 그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다. 기술을 두려워하며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현명하게 받아들이며 인간다운 가치를 더욱 단단히 다져갈 것인가.

찰스 3세도 아마 자신의 초상화를 로봇이 그릴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그림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변화를 거부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인간만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말이다.

 

AI로 그린 그림. (Jonathan)

그래서, 교실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이 사례를 교실에서 어떻게 활용하겠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아이다의 등장은 분명 충격이다. 하지만 이 충격을 교육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깊이 있는 사고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활동을 해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아이다의 작품과 인간 화가의 작품을 섞어서 보여주고, 어느 것이 로봇 작품인지 맞춰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는 "만약 당신이 로봇 화가를 설계한다면 어떤 기능을 넣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이때 학생들은 무엇이 진정한 예술인지, 감정이란 무엇인지,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하게 된다.

 

AI로 그린 그림.(Jonathan)

미술시간의 새로운 가능성

결국 예술이란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 아닐까.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인간의 눈물과 웃음, 분노와 사랑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다는 찰스 3세의 외모는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지만, 그가 왕이 되기까지의 기나긴 기다림이나, 어머니를 잃은 슬픔,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까지는 그려낼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 예술가의 진가가 드러난다.

미술시간이 망가진 게 아니라, 더 흥미로워진 건지도 모른다. 이제 학생들은 붓을 잡는 동시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도 함께 던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인공지는 로봇 화가 아이다야말로 최고의 미술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직접 가르치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예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AI로 직접그린 그림. 김성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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