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정연' 만든 영국 경찰, 호루라기 하나로 시작됐다
런던 치안 위해 '야경꾼'의 대안으로 설치
로버트 필, 무법천지 해결한 혁신적 발상
초기 장비라고는 곤봉, 호루라기, 수첩 뿐
시민 도와주는 친절로 부정적 인식 씻어
영국령 넘어 유럽에 퍼진 영국 경찰제도
새로운 치안 방식이 시작되다
영국인들이 줄서기를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질서정연'이 언제부터였을까. 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1829년 로버트 필(1788~1850)이라는 정치가가 "야, 이 나라 너무 난장판이야. 누가 좀 정리해봐"라고 외치면서부터다. 물론 그가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세계 최초의 근대 경찰 제도를 만들어냈다.
로버트 필이 경찰 제도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이고 철학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1820년대 런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범죄율이 치솟았다. 기존의 4500명의 야경꾼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런던은 이전까지 구식 야경꾼 제도로 치안을 유지했는데, 이들은 나이 들고 장비도 부족해서 효과적이지 못했다. 필은 범죄와 무질서를 예방하는 것이 군사력이나 가혹한 처벌보다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필은 가혹한 처벌보다는 개혁을 중시했고, 범죄자들도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교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경찰의 권한과 임무수행이 시민들의 승인에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필은 단순히 '질서를 잡아보자'는 생각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방식의 치안제도를 구상했다. 꽤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무법천지 런던의 참상
18세기 런던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길거리에서 소매치기가 판을 치고, 주취자들이 난동을 부리며, 강도들이 대낮에도 활개쳤다. 당시 치안유지는 '야경꾼'이라 불리는 할아버지들과 '치안판사'라는 동네어른들의 몫이었다.
야경꾼들은 밤새 등불을 들고 돌아다니며 "열시 정각, 모든 것이 평온하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정작 그들 뒤에서 도둑들이 집을 털고 있어도 모를 정도로 늙고 약했다. 어떤 야경꾼은 도둑과 마주쳤을 때 "실례합니다, 혹시 도둑질 중이신가요?"라고 정중히 물어봤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치안판사들은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았다. 그들의 권한은 자기 동네에서만 통했고, 범죄자들은 동네 경계만 넘으면 안전했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안전지대로 도망치는 것과 같다.
로버트 필 경의 혁신적 발상
로버트 필은 내무장관이 되면서 이 참상을 목격했다. 그는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제대로 된 경찰이 필요해." 하지만 당시 영국인들은 '경찰'이라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경찰은 프랑스의 비밀경찰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프랑스 것이라면 치즈와 와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필은 영리했다. 그는 새로운 경찰을 '보비'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 '로버트'의 애칭인 '밥'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치 무서운 약을 먹기 쉽게 달콤하게 코팅하는 것처럼, 경찰이라는 개념을 친근하게 포장했다.
1829년, 새로운 시작
1829년 9월 29일, 런던경찰청이 문을 열었다. 스코틀랜드 야드에 본부를 둔 이 조직은 총 1000명의 경찰관으로 시작했다. 그들은 파란색 제복을 입었는데, 이는 군대의 빨간색 제복과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영국인들은 자국 군대조차 의심하는 상황이었으니까.
1829년 런던 경찰청이 처음 세워진 본부가 휘트홀 플레이스 4번지에 있었는데, 이 건물의 정문이 '그레이트 스코틀랜드 야드'라는 거리 쪽으로 나 있었다. 왜 그 거리 이름이 '스코틀랜드 야드'였을까? 그 자리에는 중세시대에 스코틀랜드 왕족들이 런던을 방문할 때 머물던 궁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왕들은 997~1550년 그 지역에 거주지를 두었는데, 주로 외교적 목적이었다.
경찰청이 들어설 때는 이미 그 궁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냥 옛날 이름만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이 경찰청을 그 입구 거리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 '스코틀랜드 야드'가 런던 경찰의 대명사가 되었다. 결국 스코틀랜드와는 전혀 상관없는데 스코틀랜드 야드가 된 셈이다.
하여간 초기 경찰관들의 장비는 참으로 소박했다. 곤봉 하나, 호루라기 하나, 수첩 하나가 전부였다. 총은 물론 없었다. 범죄자와 마주쳤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곤봉으로 때리거나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것뿐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경찰보다 더 평화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의 반응, 사랑과 미움 사이
새로운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부유한 계층은 환영했다. 드디어 자신들의 재산을 제대로 지켜줄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서민들은 경계했다. 또 다른 권력의 감시자가 생겼다고 여겼다.
특히 술집 주인들은 경찰을 극도로 싫어했다. 경찰들이 술에 취한 손님들을 단속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떤 술집에서는 '경찰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월급이 적어서 술집 갈 돈도 없었으니까.
초기의 우여곡절
영국의 경찰제도 초기에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다. 어떤 경찰관은 순찰 중에 잠들어서, 시민들이 그 옆으로 지나다니며 구경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경찰관은 도둑을 잡으려다 자신이 도랑에 빠져서 도둑이 도망쳤다는 사건도 있었다.
가장 황당한 일은 경찰관 중 일부가 범죄자와 내통하는 경우다. 그들은 "나는 네가 도둑질하는 것을 못 봤다"며 눈감아주는 대신 돈을 받았다. 이런 일들 때문에 시민들은 "경찰이 도둑보다 더 나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점진적 발전과 정착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찰제도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길거리가 안전해졌다. 시민들도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실제로 도움을 받아보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경찰들이 길 안내를 해주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고, 취객을 집까지 데려다주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점차 마음을 열었다. 경찰이 단순히 단속하는 존재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세계로 퍼진 영국 모델
영국의 경찰제도는 곧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국령 국가들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국가들도 이 모델을 따라했다. 심지어 프랑스까지도 영국 경찰제도의 장점을 받아들였다. 이때만큼은 영국인들이 프랑스에게 "우리 것이 더 좋지?"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곤봉에서 시작된 질서
돌이켜보면 영국경찰의 역사는 참으로 흥미롭다. 무법천지에서 질서정연한 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경찰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있었지만, 결국 현재의 경찰제도라는 열매를 맺었다.
로버트 필이 1829년에 시작한 작은 실험이 오늘날 전 세계 경찰제도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곤봉 하나로 시작된 질서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경찰과 시민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앞으로도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하지만 그것도 민주주의의 일부가 아닐까?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그리고 끊임없는 개선 노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