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은 왜 영국에서 처음 일어났을까?
끊임없이 추구한 '효율적 게으름'이 밑바탕
"사람 대신 기계가 일하게" 증기기관 고안
'섬나라'의 제약…일찍 해양무역 나선 동력
살기 위해 익힌 상업정신과 기술혁신 욕구
늘 '왜 그럴까' 묻는 습성 과학혁명 가능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였다. 수천 년간 농업에 의존해 온 인간 사회가 하루아침에 기계의 소리로 가득 찬 공장사회로 바뀌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영국이었을까? 프랑스도 있고, 독일도 있고, 심지어 중국도 있었는데 말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영국이 가장 게을렀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가장 효율적으로 게을러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석탄, 그 검은 보물
영국인들은 나무를 때다가 나무가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석탄을 파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석탄은 더럽고 냄새난다"며 코를 막고 있을 때, 영국인들은 "그래도 따뜻하잖아"라며 석탄과 친해졌다.
문제는 석탄광산에 자꾸 물이 스며들어 온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직접 물을 퍼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물을 빼내려고 만든 기계가 나중에 세상을 바꾼 셈이다. 마치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버그(컴퓨터 프로그램 오류나 예상치 못한 현상)를 발견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것과 같다.
섬나라의 축복과 저주
영국은 섬나라라는 특별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의 침략을 받기 어려웠다. 대륙의 다른 나라들이 전쟁터가 되어 불타는 동안, 영국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
하지만 섬나라라는 것은 양날의 칼이었다. 땅이 좁아서 농업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 무역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업정신과 기술혁신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땅이 좁으니 머리를 쓰자'는 것이 영국식 생존전략이었다.
양털과 면화의 만남
영국은 양털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양들이 "매에~" 하며 풀을 뜯어먹는 동안, 영국인들은 그 털로 옷을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양털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비싸고 가공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때 등장한 것이 면화였다.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면화는 양털보다 저렴하고 가공하기 쉬웠다. 문제는 면화를 실로 만드는 작업이 손으로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웠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방적기계들이다. 제니 방적기, 물레방아 방적기, 힘직기 등등. 이름만 들어도 산업혁명의 냄새가 나는 기계들이 차례로 발명되었다. 영국인들은 '손으로 하기 귀찮으니까 기계한테 시키자'는 철학을 실천한 셈이다.
자본주의의 맹아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자본주의적 사고가 발달했다. 귀족들도 장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상인들도 돈을 벌어서 사회적 지위를 올릴 수 있었다. 이는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점이었다. 특히 영국의 특허제도는 발명가들에게 큰 동기를 부여했다. "네가 새로운 것을 발명하면 일정 기간 동안 독점권을 줄게"라는 약속이었다. 이는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돈 냄새를 맡으면 어디서든 달려오는 영국인들의 특성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됐다.
과학혁명의 유산
17세기 영국에서는 과학혁명이 일어났다. 뉴턴이 중력을 발견하고, 왕립학회가 설립되면서 과학적 사고가 사회전반에 퍼졌다.
영국인들은 "왜 그럴까?"라고 묻는 습관을 길렀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이런 과학적 사고방식이 기술혁신으로 이어졌다. 다른 나라에서는 "조상들이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할 때, 영국인들은 "조상들도 틀릴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불경스러운(?) 생각이 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교통의 혁명
영국은 일찍부터 교통망 건설에 투자했다. 운하를 파고, 도로를 닦고, 나중에는 철도까지 건설했다. 이는 단순히 이동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석탄을 광산에서 런던까지 운반하는 비용이 너무 비쌌던 것이다. 그래서 운하를 파서 배로 나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증기기관차로 더 빠르게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실천에 옮긴 나라가 영국이었다.
노동력의 확보
영국의 산업혁명은 농업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농촌에서 일할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동시에 지주들의 '울타리운동(Enclosure Movement)'로 농민들이 땅에서 쫓겨나면서 도시로 몰려들었다. 양털 수요증가로 목양업의 수익성이 높아지자, 지주들이 농지를 목초지로 전환하면서 농민들을 내쫓은 것이 '울타리운동'의 역사적 배경이다.
이렇게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바로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다. 농촌에서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공장은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했다. 물론 그 일자리가 천국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먹고 살려면 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산업혁명의 숨은 동력이었다.
정치적 안정
영국은 17세기 후반부터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다. 왕과 의회가 권력을 나누어 가지면서 극단적인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장기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들이 정치적 혼란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동안, 영국은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정치는 정치대로, 장사는 장사대로'라는 실용적 접근이 효과를 본 것이다.
식민지라는 보너스
영국의 광대한 식민지는 원료 공급지이자 제품판매 시장이었다. 인도에서 면화를 가져와서 영국에서 옷을 만들어 다시 인도에 팔았다. 이런 식의 무역은 영국 공업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는 식민지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하지만 영국에게는 산업혁명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다.
때로는 운도 실력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에는 운의 요소도 있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가 증기기관을 개량한 것도, 아브라함 다비(Abraham Darby, 1678~1717)가 코크스(coke/석탄을 고온에서 가열하여 불순물을 제거한 연료)로 철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것도 어느 정도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우연을 놓치지 않고 활용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발견이 있었을 수 있지만, 영국만큼 체계적으로 활용한 곳은 없었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이 맞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석탄, 철, 면화라는 자연자원, 자본주의 정신, 과학적 사고, 정치적 안정, 교통망, 노동력, 식민지 등 여러 조건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인들이 "더 편하게 살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답을 기계에서 찾았다. 다른 나라들이 전통을 고수하며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으니까"라고 할 때, 영국인들은 "조상들보다 더 잘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이런 불온한(?) 생각이 결국 세상을 바꾸었다.
산업혁명은 단순히 기계의 혁명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혁명의 진원지가 바로 안개 낀 섬나라 영국이었다. 물론 그 혁명의 대가로 환경오염, 노동자 착취, 식민지 수탈 등의 어두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세계의 출발점이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