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며 닮는다…영국 깊숙이 로마 통치 400년 유산
대영제국의 뿌리 된 로마의 '문명인 의식’
'모든 길은 로마로'…모든 도로는 일직선
법조계, 권위 세울 목적으로 라틴어 혼용
영국인들의 복잡한 로마감정 실린 성공회
영국 관료주의, 로마제국 행정체계의 잔재
로마제국의 영국점령
서기 43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갑자기 영국이 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에 지친 로마인들이 "좀 시원한 곳은 없을까?" 하며 북쪽을 바라보다가 발견한 것이 안개 자욱한 브리타니아 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로마의 영국 점령은 400년간 이어졌고, 그들이 떠난 후 1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참고로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했을 당시 영국의 수도는 런던이 아니었다. 에섹스주에 있는 콜체스터였다. 이 콜체스터에는 지금도 로마제국이 영국식민지 통치를 하던 당시 건설한 성이 있다. 이 성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
도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인들이 영국에 남긴 가장 대표적인 유산은 바로 도로다. 그들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영국 전역에 곧고 넓은 길을 깔았다. 문제는 이 길들이 너무 곧다는 것이다. 언덕이 있으면 뚫고, 강이 있으면 건너고, 마을이 있으면 관통했다.
오늘날 영국의 로마시대 도로들을 따라 운전해보면 로마 기술자들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현지 영국 주민들은 "돌아가는 길도 있는데요?"라고 조언했지만,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뚫어버린 그 정신력은 가히 존경스럽다. 덕분에 영국인들은 지금도 '로마식 직진'과 '영국식 우회'를 번갈아 경험하며 살고 있다.
목욕탕 문화, 깨끗함에 대한 집착
로마인들이 영국에 들여온 또 다른 '문명'은 목욕탕 문화였다. 영국 바스(Bath) 시의 온천 목욕탕은 로마인들의 청결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 영국 원주민들은 아마도 "저 남쪽 사람들은 왜 이렇게 물을 좋아할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로마인들이 떠난 후 영국인들은 한동안 목욕 문화를 잊고 살았다. 중세시대 영국인들의 목욕 빈도는 연 1회 정도였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서야 "아, 그래도 씻고 살아야겠다"며 다시 목욕탕을 지었다. 로마인들이 1600년 전에 이미 완성한 기술을 다시 발명한 셈이다.
법과 제도, 라틴어의 끈질긴 생명력
로마법의 영향은 영국 법체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오늘날에도 영국 법정에서는 온갖 라틴어 용어들이 난무한다. 변호사들은 라틴어 한마디로 상대방을 압도하려 하고, 판사들은 라틴어로 판결을 내리며 권위를 세운다. 일반인들은 "도대체 저게 무슨 뜻인지…"라며 고개를 갸우뚱 하지만, 사실 변호사들도 절반은 외워서 쓴다. 로마인들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틴어는 영국 법조계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기독교, 로마 황제의 종교적 선택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영국에도 가톨릭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물론 로마 철수 후 한동안 쇠퇴했다가, 6세기 말 다시 전해졌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백 년에 걸쳐 영국이 가톨릭교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16세기 영국왕 헨리 8세는 로마 교황과 결별하며 영국 국교인 성공회를 만들었다. 로마에서 온 종교를 받아들였다가 다시 로마와 결별한 것이다. 영국인들의 복잡한 로마 감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어, 라틴어의 은밀한 침투
영어에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들이 넘쳐난다. 'administration(행정)', 'civilization(문명)', 'education(교육)' 등 '-tion'으로 끝나는 단어들은 거의 다 라틴어가 그 뿌리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순수 게르만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라틴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영국 상류층은 라틴어를 많이 쓸수록 교양 있어 보인다고 여긴다. 그래서 간단한 말도 굳이 라틴어계 단어로 바꿔 말한다. '도움(help)' 대신 '지원(assistance)'을, '시작(start)' 대신 '개시(commence)'를 쓰는 식이다. 로마인들의 언어적 식민지화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도시계획, 격자무늬의 강박
로마인들은 어디를 가든 격자무늬로 도시를 만들었다. 런던의 시내지역, 체스터, 요크 등 로마 도시들은 모두 바둑판 모양이다. 이런 계획도시는 길을 찾기 쉬운 장점이 있지만, 너무 뻔한 게 단점이다.
로마인들은 "효율성이 최고"라며 어디서나 똑같은 도시를 만들었다. 마치 오늘날의 신도시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로마시대 영국 도시들은 "여기가 런던인지 요크인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행정체계, 관료주의의 뿌리
로마제국의 정교한 행정체계는 영국 관료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모든 것을 문서로 기록하고, 등급을 매기고, 승인을 받게 했다. 오늘날 영국의 복잡한 행정절차는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영국인들이 서류작업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건 규정에 어긋납니다"라며 도장을 찍지 않는 공무원들의 DNA에는 로마 관료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 로마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그들은 영국에 '절차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문화적 우월감, "우리는 문명인이다"
로마인들이 영국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문명인 의식'이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을 문명인으로, 다른 민족들을 야만인으로 구분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훗날 영국인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영국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우리는 다른 민족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배웠다. 그래서 19세기 대영제국 시절 영국인들은 "우리가 야만인들에게 문명을 전파해야 한다"며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로마인들의 제국주의 정신이 영국을 통해 부활한 셈이다.
현재진행형인 로마의 유산
오늘날 영국을 여행하면 곳곳에서 로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여전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경계에 서 있고, 바스의 온천탕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런던 시내 곳곳에서는 로마시대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영국인들의 정신 속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산이다. 그들은 여전히 라틴어를 고급스럽게 여기고, 격식을 중시하며, 서류절차를 신성시한다. 브렉시트 논란에서도 '우리는 로마(유럽연합)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2000년 전 로마인들과의 관계가 아직도 영국인들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제국의 그림자
로마제국이 무너진 지 1600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유산은 여전히 영국 사회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영국인들이 운전하는 곧은 도로, 그들이 쓰는 라틴어 투성이 영어, 그들이 자랑하는 법체계, 그들이 답답해하는 관료주의까지 모든 것이 로마의 선물이다.
영국인들은 로마인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한다. 고마워하면서도 원망한다. 로마 없이는 지금의 영국이 존재할 수 없지만, 로마 때문에 영국이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결국 로마제국의 영국 침입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문화수출 사례가 아닐까? 군대는 철수했지만 문화는 남았고, 황제는 사라졌지만 제도는 이어졌다. 로마인들이 영국에 남긴 것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였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진정한 정복자는 칼을 든 군인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로마인들은 영국을 떠났지만,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영국인들의 머릿속에 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승리가 아닐까?
참고로 영국지명 중에 '스터'(ster)로 끝나는 윈체스터, 글로스터, 맨체스터, 레스터, 체스터, 콜체스터 등은 로마제국 당시 세운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