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영국을 아름답게 망치다

벽지 디자인으로 시작해 혁명가까지 줄변신

'금수저' 신학도가 예술가로, 사회주의자로

산업혁명에 저항해 펼친 '수공예 부활 운동'

'워라밸'도 그의 '일과 예술의 통합'서 영향

2025-07-09     김성수 시민기자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는 참 별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만큼 '아름다운 혁명'을 꿈꾼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벽지 디자인으로 시작해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끝난, 말 그대로 '취미가 직업이 되고 직업이 신념이 된' 인물이다.

 

윌리엄 모리스(위키피디아)

부르주아 출신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걱정하다

모리스는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 출신이다. 이런 인물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아, 이 세상이 너무 추하다!"며 예술가의 길로 빠져버린다.

신학도에서 예술가로, 예술가에서 사회주의자로…요즘 같으면 '방황하는 청년'이라고 했을 텐데, 다행히 당시는 그런 말이 없었다. 대신 '낭만주의자'라는 좀 더 폼나는 용어가 있었으니까.

 

젊은시절의 윌리엄 모리스(위키피디아)

산업혁명을 벽지로 저항하다

모리스가 살던 시대는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고, 공장에서 찍어낸 획일적인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를 본 모리스는 "이게 뭔가? 예술이 죽어가고 있잖아!"라며 발끈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바로 '수공예 부활운동'이다. 기계 대신 손으로, 공장 대신 작업장에서, 획일성 대신 개성으로! 모리스는 직접 벽지를 디자인하고, 가구를 만들고, 직물을 짜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제품들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서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정작 그 예술품을 살 수 있는 건 부자들뿐이었다. 아이러니의 극치다.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작품들. 왼쪽부터 벽지, 직물, 타일. (위키피디아)

'아름다운 사회주의'라는 형용모순

모리스는 여기서 깨달았다. "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사회체계 자체를 바꿔야 해!" 그래서 사회주의에 들어섰다.

모리스의 사회주의는 좀 달랐다. 마르크스처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환경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미학적 사회주의였다. 혁명 후의 세상을 상상한 소설 〈뉴스 프롬 노웨어〉에서 그는 미래사회를 중세 수공예 공동체 같은 모습으로 그려냈다.

21세기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아저씨, 중세 광신도 아니야?"라고 할 법하지만, 당시에는 나름 진지한 사회 비판이었다.

영국을 바꾼 '열정광'의 힘

모리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그가 시작한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은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심지어 바다를 건너 미국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의 핵심은 '일과 예술의 통합'이었다. 모든 사람이 창조적인 일을 통해 삶의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과 삶의 균형'이니 '작은 행복'이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리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모리스의 디자인 작품들. (위키피디아)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다

모리스는 또 "좋은 디자인은 모든 사람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는 20세기 독일의 건축과 디자인 운동과 현대 디자인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가 디자인한 벽지와 직물 양식들은 지금도 '모리스 스타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대량생산'을 통해서 말이다. 모리스가 이걸 알면 '관에서 벌떡 일어날 것' 같다.

정치적 올바름의 원조?

모리스는 환경보호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파괴를 일찍부터 우려했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설립한 '고대건축물 보호협회'는 영국 최초의 문화재보호단체였다. 개발이니 효율이니 하며 역사적 건물을 무차별 철거하던 시대에, "잠깐, 이거 보존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외친 것이다.

모리스의 유산, 아름다운 모순

윌리엄 모리스는 모순 덩어리였다. 부르주아 출신이면서 사회주의자였고, 수공예를 옹호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은 기계로 대량생산 되었다. 중세를 동경하면서도 미래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바로 그 모순이 그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완벽한 이론보다는 진실한 고민이, 냉철한 분석보다는 뜨거운 열정이 세상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의 모리스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모리스 같은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을 다니면서도 소상공인을 걱정하는 사람, 스마트폰을 쓰면서도 디지털 끊기를 외치는 사람,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

모리스가 살아 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모순? 그게 뭐 어때서! 중요한 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마음이야!"

어쨌든 윌리엄 모리스는 벽지 하나로 시작해서 영국사회 전체를 바꾼 남자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디자인'에 대해 생각할 때, '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때, '아름다운 사회'를 꿈꿀 때마다 말이다.

결국 그는 영국을 '아름답게 망친' 남자였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망가진 영국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영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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