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나라' 한 꺼풀 벗기면 어둡고 불편한 진실

식민지 고통으로 이룬 '해 지지 않는 대영제국'

산업혁명의 굴뚝 연기 뒤엔 어린 아이의 노동

삼각무역으로 미화된 노예무역 종착은 설탕

자유무역 권리 침해를 빙자해 벌인 아편전쟁

누군가의 고통 위에 누리는 편안함 경계해야

2025-07-08     김성수 시민기자

영국을 떠올려보자. 런던의 장난감 같은 붉은 이층버스, 오후 네 시의 차 한 잔, 반듯하게 모자를 쓴 신사와 숙녀, 그리고 '신사의 나라'라는 별칭. 그러나 이 정갈하고 근엄한 겉모습을 한 꺼풀 벗기면, 그 안에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마치 고급 찻잔을 들춰보니 그 안에 시큼한 묵은 물이 고여 있던 것처럼.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불편한 진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라는 문구는 참으로 낭만적으로 들린다. 마치 온 세상을 다 밝혀주는 고결한 제국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지구 곳곳에 깃발을 꽂고 있으니, 어디선가는 당연히 해가 떠 있었던 것뿐이다. 진짜 문제는 그 깃발들이 어떻게 세워졌느냐이다.

인도에게는 "우리가 너희에게 철도를 놔 주었다"고 으스댄다. 하지만 그 철도는 면화, 향신료, 차 같은 물품을 싹쓸이해 영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통로였다. 이를 두고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니, 마치 강도가 집에 들이닥쳐 온 집안을 뒤집어놓고는 “마침 창문 고장 난 것 같기에 수리해 줬소”라고 하는 격이다.

 

대영제국 전성기의 세계지도, 분홍색이 영국 점렴지역(위키피디아)

산업혁명, 그 그을음 속의 진실

산업혁명기를 그린 그림들을 보면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참으로 인상 깊다. 그러나 그 아래 공장 안에서는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기계와 기계 사이를 오가며 열두 시간씩 일했다. "손이 작아서 부품 사이에 잘 들어간다."는 이유로 고용된 아이들. 오늘날 같으면 당장 법정에 설 일들이, 그때는 '효율적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아이들이 돌 대신 석탄을 가지고 놀았고, 책 대신 나사를 끼웠으며, 놀이터 대신 증기기관 옆에서 성장했다. 그렇게 어린 영혼들이 타들어 가는 동안, 어른들은 파이프 담배를 물고 “문명이 진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잖은 말 속에 감춰진 노예무역

영국이 벌인 노예무역을 가리켜 '삼각무역'이라 한다. 참으로 간결하고 교과서적이다. 그러나 그 삼각형의 한 끝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사들이고, 다른 한 끝에서는 아메리카로 보내 팔았으며, 마지막 꼭짓점에서는 설탕과 담배를 챙겨 돌아왔다. 세 꼭짓점 사이를 오간 것은 돈과 물건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고통, 뿌리 뽑힌 문화, 사라진 언어가 실려 있었다.

영국의 리버풀과 브리스틀 같은 항구도시가 눈부시게 번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무역 덕분이다. 오늘날 그 도시에 남아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그 기초는 인간의 비명과 피로 다져졌다는 점은 잊히기 쉽다.

노예제도 폐지 운동조차 완전히 순수하지는 않았다. 노예제도를 폐지하면서도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그 돈을 받은 것은 노예들이 아니라 노예주인들이었다.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보상해 준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인권'과 '자유'를 외치던 철학자들이 노예제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을 쓰던 시기에도 인도에서는 영국의 억압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국이 벌인 노예무역을 가리켜 "삼각무역"이라 한다. 삼각형의 한 끝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사들이고, 다른 한 끝에서는 아메리카로 보내 팔았으며, 마지막 꼭짓점에서는 설탕과 담배를 챙겨 돌아왔다. (위키피디아)

아편전쟁, 말장난의 극치

중국과 벌인 아편전쟁도 참으로 놀라운 논리의 향연이었다. 영국은 "자유로운 무역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전쟁을 벌였다. 다른 나라에 마약을 팔 자유, 그것도 상대가 싫다는데 억지로 떠넘길 자유. 이를 위해 무력까지 동원했으니, 그 뻔뻔함은 오히려 감탄스럽다.

마치 이웃집 앞마당에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고기 굽는 이가, "이것은 나의 식생활 자유"라며 항의하는 집주인을 타박하는 격이다. 그리고 불똥은 고스란히 중국의 청나라로 튀었다. 결국 아편은 물건이 아니라 권력이었고, 무역은 이름뿐인 강탈이었다.

 

아편전쟁 당시의 그림(위키피디아)

아편전쟁 당시의 그림(위키피디아)

빅토리아 시대의 이중생활

런던의 부유한 동네에서는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는 사람들이 하수구 같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여왕의 궁궐에서는 화려한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일랜드 기근 당시 영국정부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해결될 것"이라며 손을 놓고 있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을 '자연선택'이라고 했으니, 집안의 한쪽 방에서는 파티를 열고 다른 쪽 방에서는 사람이 굶어 죽는데도 "우리 집은 행복하다"고 하는 격이다.

신사 같은 식민지 다루기

영국의 식민지 경영법은 말 그대로 '신사적'이었다. 칼을 들이대기보다 현지 지배층을 이용해 간접통치를 일삼았다. 흔히들 말하는 '분할하여 다스리기'였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불화를 부추겼고, 아프리카에서는 부족 간 분쟁을 방조하거나 조장했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중재자'라고 불렀다.

가해자면서도 판사 행세를 하는 모습, 놀이터에서 친구들 싸움을 부추겨놓고는 "둘 다 잘못했네" 하는 아이처럼, 영국은 뒤에서 실을 당기며 '신사적인 통치'라는 외투를 걸쳤다.

문명화라는 이름의 말살

'문명화 사업'은 말이 좋아 문명이지, 실상은 문화의 뿌리를 뽑는 일이었다. 호주에서는 원주민 아이들을 가족에게서 떼어내 백인 가정에 맡겼고, 이를 '보호'라 불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언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이를 '교육'이라 포장했다.

이쯤 되면, 남의 집에 들어가 가구를 모조리 바꿔놓고 "당신을 위한 실내 꾸밈 서비스."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주인이 부재 중일 때 말이다.

오늘날의 교훈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오래된 일이고, 지금의 영국은 분명 달라졌다. 그러나 역사를 이해하려면 화려한 외면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어두운 얼룩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명작을 쓰던 시절에도, 대서양에는 노예선이 오갔고,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하던 해에도, 식민지의 농민들은 채찍 아래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현재의 영국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역사를 제대로 알고 인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그 행간에 숨어 있는 패자의 외침도 함께 읽어야 진짜 역사가 보인다. 영국의 정돈된 거리와 고색창연한 건물, 그 아래 깔린 발자국들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이 모양이 되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발전'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차 한 잔 앞에 앉은 신사의 뒷모습 너머로, 우리는 그가 걸어온 길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과거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거울이 되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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