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청 1위 달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K-컬처 소재 애니로 대박친 할리우드 상술

2025-07-05     오동진 영화 평론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한류 소품, 한국적 공간보다 더 착착 감기는 한국적 서사

화제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가장 큰 매력은 한국의 아이돌 스타가 주인공이라거나 그들이 김밥과 라면을 먹고 사우나를 좋아하며 한약으로 목소리를 치료한다든지 하는 한류 소품 때문이 아니다. 서울 성곽이 나오고 전통시장 분위기 이곳저곳이 지니는 공간의 한국화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진우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호랑이와 까치가 전통의 민화 스타일이라는 점은 기발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한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게다가 이 호랑이, 하는 짓도 아주 귀엽다. 주인공인 루미가 진우에게 마음을 열게 해주는 큐피드 역할을 해준다. 눈이 세 개 달린 까치는 갓을 쓰고 다닌다. 까치와 호랑이는 전통 민화의 주요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다 주변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중심은 역시 스토리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서사가 착착 감긴다. 스토리가 아주 혁신적이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너무 새로운 것이어도 곤란하다. 관객들은 복잡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새로워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기본 골격은 미스터리이다. 주인공 루미는 귀마에 조종당하는 악귀를 없애는 퇴마사이다. 그러나 뮤턴트이다. 엄마는 헌터스의 일원이었으나 무슨 영문에서인지 귀마족 남자와의 사이에서 루미를 낳았다. 귀마족들은 온몸에 귀마 문양이 타투로 새겨져 있다. 루미도 그 타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같은 멤버인 미라와 조이에게는 그것을 꼭꼭 숨기고 산다. 루미는 늘 그 점을 ‘더 이상 숨기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신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어 한다.

영화는 루미의 전사, 곧 부모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드러낼 듯 드러낼 듯 궁금증을 갖게 하며 그 비밀을 밝히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숨겨진 이야기의 골격이 드라마의 서스펜스를 만들어 나간다. 거기에 덧붙여서 루미가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나갈 수 있을지, 귀마족 진우는 그런 그녀와 사랑을 완결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또 다른 귀마족 3세인 데몬 헌터스를 낳게 될지, 그 인연의 업보와 선행의 반복과 윤회가 이루어질지, 그 한국적 사상의 핵심이 실현될지 자못 흥미와 구미를 당긴다.

 

얽히고 설키며 선악 대결 벌이는 걸그룹과 보이그룹

장르 영화의 규칙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 곧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구도의 삼각형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구도 면에서도 확실한 자기 방어진지를 구축한다. 이 드라마는 당연히 선악 구도이다. 헌터스와 데몬스의 대결을 큰 축으로 여자 아이돌그룹인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 보이스’의 대결이다.

가장 작은 축으로는 각각 이들 그룹의 리더 격인 루미와 진우의 대결과 갈등의 구도이다. 루미 등은 황금 혼문을 완성하려 한다. 일종의 악귀 방어망이다. 이게 완성되면 세상은 악령과 도깨비의 공격, 침공을 막을 수 있다. 악귀의 대장 귀마는 사람들의 영혼을 빨아들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자기 세계를 채워 나가려 한다. 루미는 사인검을 쓰고 미라는 일월오봉도를 쓰며 조이는 작호도를 쓴다. 이건 좀 중국 무협식이긴 하다.

 

어쨌든 이들 아이돌 삼총사는 궁극으로 자신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모든 할리우드 영화처럼 이 작품 역시 정(正)이 사(邪)를 이긴다. 그러나 요즘의 여느 할리우드처럼 정과 사가 살짝 얽히게 한다. 정이 사의 도움을 받는다. 사는 정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는다. 정과 사는 절대적 대립 관계가 아니라 상대적 관계임을,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서로는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일명 배트맨과 조커의 철학이다.

루미는 양쪽 세계관의 결실이며 스스로 어떤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 이런 얘기는 헌트릭스의 노래 ‘골든’의 가사에 다 담겨 있다.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이 애니메이션이 젊은 세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케이팝의 위대한 승리 뒤에 있는 할리우드의 기획과 자본

할리우드(소니 클래식), 곧 넷플릭스의 로컬리티 전략이 얼마나 치밀하고 전략적이며 공세적인지를 알 수가 있는 작품이다. 다소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이다. 일각에서는 이 작품이 케이팝 세계화의 뚜렷한 산 증거라고 흥분한다. 물론 문화의 융합성이 갖는 새로운 파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거리다. 케이팝이 무엇을, 어떻게 선도하고 있고 또 얼마만큼 선두를 달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뿌듯할 만하다. 그러나 케이팝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주체가 여전히 할리우드라는 것은 문화의 역(力)관계를 나타내는 만큼 좀 더 신중하게 이번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획과 자본은 여전히 할리우드가 주도한다. 그 주도권을 계속해서 가져갈 것이다.

연출은 한국계 감독 매기 강이 만들었다. 이 작품은 케이팝의 위대한 승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할리우드의 로컬리티 상술, 상업적 욕망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세계 문화의 한국화에 열광하는 것은 좋으나 그 본질에 대한 착시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미 할리우드와 넷플릭스는 ‘푸른 눈의 사무라이’로 한 차례 로컬리티 전략을 테스트한 바 있다. 그 시험 과정을 거쳐 이번 케이팝 드라마로 ‘대박’을 쳤다. 한국적인 것이 어떻게 비칠지 오매불망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한국 대중문화 그 자체는 이미 힙한 무엇이 된 지 오래다. 세계는 이미 어느 정도 케이팝스러운 스타일에 젖어 든 상태다. 오히려 케이팝 드라마가 글로벌 1위가 된 것은 그리 새삼스럽지가 않다

 

두려움 없는 아름다움으로 세상 구하라는 K(케이) 메시지

상처는 나의 일부다, 두려움 없는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하라는 메시지가 아마도 청춘 세대들에게 불을 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돌을 ‘몰래’ 좋아하는 아저씨 세대들도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들도 상처가 많다. 이 애니메이션은 한동안 계속 글로벌 시청 1위를 지킬 것이다. 한동안 케이팝, 케이푸드 등의 인기 역시 후속으로 따라갈 것이다. 문화의 세계화가 큰 판을 만들고 있다. 그건 좋은 것인가. 좋다면 언제까지, 어떻게 더 좋게 만들 것인가. 고민은 새로운 고민을 만든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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