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박스쿨식 극우 세뇌교육 방파제는 ‘정치교육’
‘교육의 정치화’ 금지하고 ‘정치의 교육화’ 받아들여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리박스쿨 사태가 뉴스타파의 연속보도로 일파만파 충격을 주고 있다. 대선 직전 국힘당 대선 후보와의 연관성 의혹을 제기한 리박스쿨 보도로 선거판이 흔들렸다. 선거 이후에도 보도가 이어지면서 고구마줄기처럼 얽힌 극우 뉴라이트 세력의 복잡하고도 광범위한 조직실태가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여론조작을 목적으로 한 조직적 댓글부대 운영과 다단계 기업형 세 확장 사업방식, 정부 정책사업을 활용해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을 빨아들인 의혹 등이 드러나며 철저한 수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여론조작 차원을 넘어선 극우 역사의식 세뇌 공작
그러나 더 큰 충격적인 일은 이들이 여론조작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 발언에서 드러나듯 ‘이승만·박정희 전문가’를 양성해 아이들에게 ‘새로운’ 역사교육을 함으로써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에 의해 철저히 왜곡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육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한 마디로 스스로 ‘초등학교 안 별도 학교’라 부른 늘봄학교에 침투해 국가교육과정에 위배되는 뉴라이트 역사교육을 조직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리박스쿨 사태로 첫째, 우리 사회 곳곳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뉴라이트 세력망이 형성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둘째, 이들이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등 공식 정부조직에 깊숙이 침투해 활동해 왔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교육부는 물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이들과 어떤 관계인지도 밝혀져야 한다. 셋째, 가장 경악할 일은 이들 뉴라이트 세력의 극우 역사의식 세뇌에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댓글부대 등을 통한 여론조작과 극우단체 조직화로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극우 뉴라이트 세력의 재생산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그 대상이 아직 비판적 사고력이 채 형성되기 전인 어린 초등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늘봄학교 강사 뿐 아니라 돌봄전담사 양성과정을 운영해 정규교육과정 외 상대적으로 느슨한 관리 사각지대를 치고 들어왔다. 늘봄학교나 학교 돌봄교실을 이용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경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정부정책이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니 가장 신뢰할 만하다 여겼을 학부모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일 수밖에 없다.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의 디지털 세상
이들의 불법적 행위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고 합당한 법적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 그러나 리박스쿨과 그 네트워크에 포함된 세력들을 다 밝혀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전국 6000여 초등학교에서는 교육과 돌봄의 이름으로 정말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교사나 강사, 전담사처럼 직접 대면활동을 하는 이들은 엄격한 자격기준과 교·보육활동원칙, 연수강화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 등으로 관리 가능한 면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디지털 세상은 어떤가.
각종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의 디지털 세상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이트에 접속해 얼마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교사도 부모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로 완전히 되돌아가지 않는 한, 설사 파악한다 해도 그것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게 현실 아닌가. 아이들의 생각과 가치판단, 태도형성에 디지털 세상이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크다. 이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리박스쿨 사태를 아무리 그 뿌리까지 들춰낸다 해도, 그것을 일회적 사건으로 보고 대처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아이들에게서 잘못되거나 유해한 정보 자체를 핀셋 제거해주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학교 안팎에서, 현실세계와 디지털 세상에서 아이들이 접하는 무수히 많은 정보와 콘텐츠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상한 고기를 직접 골라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먹어도 좋을 고기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눈을 갖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배탈이 나거나 더 심각한 질병에 노출되지 않고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가장 확실한 예방약이 바로 정치교육이다. 세뇌교육에 대한 해법이 정치교육이라고?
‘민주시민은 학습과 훈련 통해 길러지는 것’
가장 잔인한 인류사적 범죄를 저지른 히틀러 나치당을 경험한 독일은 전후 중요한 사회적 성찰과정을 거친다. 세계지성을 대표하는 칸트와 괴테의 나라, 당시 가장 진보적이었다고 인정받던 바이마르 헌법을 가졌던 나라에서 어떻게 히틀러 같은 인간이 탄생하며, 독일인들이 그를 따라 600만 유대인 학살 공범이 되었는지 자문하였다. 독일인들이 그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은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민주시민인 사람은 없으며, 민주시민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인종주의의 토대가 된 혐오·차별의식과의 절연, 이성적 판단과 비판적 사고, 다양성 존중을 내면화하고 이를 삶속에서 실천할 줄 아는 태도를 함양하는 정치교육 필요성을 자각하고, 연방정부와 각 주마다 정치교육원을 통해 정치문해력 기르는 일에 매진했다. 1976년에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도출해 민주시민을 기르는 정치교육 3원칙을 확립했다. 주입과 세뇌를 금지하고,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문제를 논쟁적 방식으로 교실에 들여와 교육하며, 학생의 삶과 결부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학교교육 뿐 아니라 성인교육에까지 확장되고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 정치교육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안타깝게도 오랜 군사독재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학교교육에서 정치교육은커녕 정치적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해 왔다. 아니 죄악시해 왔다.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는데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교육에서 정치를 말하지 못하게 한 현실은 우리 아이들을 정치냉소주의자나, 정치문맹 상태로 사회에 나가게 하였다. 이는 교육기본법 제2조 ‘민주시민의 자질 함양’이라는 교육목적을 법전 속 활자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 결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 대신 주어진 정답만을 찾고, 교과서 속 지식습득만이 교육인양 잘못된 교육관이 수십 년 우리 교육을 지배하게 해 왔다.
진보교육감 시대에도 풀지 못한 교사정치기본권 박탈 족쇄
2010년 소위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려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고 이를 교육현장에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쟁점이 되는 사회현안이나 정치적 문제를 교실 안으로 들여오는 것을 금기시하는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편협한 해석과 이에 기초한 교사정치기본권 박탈 법들로 정치교육을 금지하는 현실은 민주시민교육을 옭죄는 족쇄가 되었다. 세월호 사태 직후 세월호 계기교육 교사에게 징계 협박 공문이 내려가고, 윤석열 탄핵 헌재 판결 방송 시청을 문제 삼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정치교육을 반대하는 이들이 논거로 삼는 헌법31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국가권력이 교육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중립성 보장’ 명령이다. 이를 정치교육을 금지하고, 심지어 정치적 문제 자체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논거로 악용하는 이들은 실은 ‘정치를 말하지 말라’는 가장 정치적인 목적에 교육을 종속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이 정치문해력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다. 금지해야 할 것은 ‘교육의 정치화’이지, ‘정치의 교육화’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교과서에 유신헌법을 넣어 가르치게 하고, 전두환 정권이 북한이 금강산댐으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려는 걸 막아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평화의댐 성금 모금을 강요했던 것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이며,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이승만·박정희 찬양 세뇌교육을 시킨 리박스쿨, 그 협력단체인 대한민국교원조합이 ‘교육과정 내 정치편향 차단 등이 담긴 정책제안서’를 김문수 후보에게 전달한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인 것이야말로 교육의 정치중립성 원칙을 왜곡한 전형적 사례다.
뉴라이트 역사왜곡 이겨낼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을
자신들은 특정 정치세력, 특정 정당, 심지어 특정 정권과 연계해 정치활동은 물론 조직적 정치세뇌교육을 하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들이밀며 ‘근무시간 외 교사정치기본권 보장’과 사회적 합의 원칙을 전제로 한 정치교육, 사회현안교육이라는 이재명 후보 공약을 반대한 이들이 리박스쿨로 드러난 극우 뉴라이트 세력이다. 교육계에 침투해 정치교육 제1원칙인 ‘주입·세뇌 금지 원칙’을 파괴한 뉴라이트 극우세력을 제대로 수사해 발본색원하자.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말고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주입·세뇌 금지, 논쟁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현안·쟁점교육, 지식교육에 갇히지 않고 아이들 삶과 결부된 교육. 우리도 한국형 보이텔스바흐 합의원칙을 수립하자. 그리고 그 원칙에 입각한 정치교육을 적극 실시하자. 그것이 혐오와 차별의 극우적 공격과 뉴라이트 역사왜곡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며,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 정치문해력을 갖춘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자라게 하는 길이다. 그것이 이준석류 약자혐오정치, 서부지법 폭동을 막아내는 길이며, 우리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