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속았수다」 너머에 있는 세상 '기본사회'
우리가 추구할 것은 돈이 아니라 화목한 공동체
얼마 전에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는 다양한 민초들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과 토론거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몇 가지 주제에만 국한해 살펴보기로 한다.
아빠가 덜 자면 자식들이 더 잘 수 있을까 싶어서…
주인공 오애순의 어머니는 해녀(드라마에서는 잠녀로 표현)다. 제주 해녀의 삶은 워낙 고되고 위험해서 그녀는 딸인 애순이만큼은 절대로 해녀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애순의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억척스럽게 물질을 하다가 요절한다. 애순의 남편 양관식은 어부다. 그는 처음에는 선원으로 일하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선장이 되어 고된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한다. 양관식은 ‘소’로 키워졌다고 언급된 것처럼 성실한 남편, 가장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했던 아버지처럼 애순의 어머니인 전광례, 양금명의 아버지인 양관식 같은 평범한 한국인들은 근면성실한 노동을 통해 한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해 왔다.
한국인들의 이 근면성실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양관식은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온 딸 양금명한테 일출을 보여주기 위해 새벽에 그녀를 깨워 배에 태우고는 바다로 나간다. 양금명은 문득 아버지가 평생 동안 이른 새벽부터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아버지에게 ‘아침에 더 자고 싶지 않았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딸에게 “더 안 자고 싶은 놈이 세상에 어딨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딸은 눈물을 머금으며 “근데 뭐 이렇게 혼자 일찍 배를 띄워? 맨날 어떻게 이렇게 살아?”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덜 자면 니들이 더 자고 살까 싶어서. 그럼 눈 떠져.”
한국인들이 근면성실하게 노동하고 생활했던 것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의 부모들이 힘겨운 노동과 삶을 견뎌냈던 것은 가족, 특히 자식을 사랑해서였다. 과거의 한국인들은 국가나 공동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가족, 자식만큼은 뜨겁게 사랑했기에 정말 열심히 일했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노동과 삶의 동기가 가족에 대한 사랑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었고 그것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되고 가족이 여타의 공동체들처럼 붕괴됨에 따라 한국인의 가족이나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빠른 속도로 시들고 있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키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자식사랑이 대순가, 가족공동체까지 파괴한 신자유주의
양관식과 오애순은 이상적인 부모이다. 그들은 고된 노동과 생활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헌신적으로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고, 변함없이 자식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격려해 주었다. 그래서였겠지만 양금명과 양은명 남매는 구김살 없이 자라났다.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신건강이 우수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부모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음에도 성인이 된 남매는 부모를 원망하고 비난한다. 왜 그랬을까? 애순 부부는 이상적인 부모이긴 했지만 가난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했던 양금명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함으로써 신분상승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타인들(특히 부자집 출신 애인인 영범이의 어머니)로부터 반복적으로 차별과 무시를 당한다. 게다가 IMF경제위기로 인해 양금명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업자가 된다.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가난에서 찾았다. 그래서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부모를 원망하며 비난한다.
오애순과 양관식은 딸인 양금명보다 훨씬 더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한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비난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오애순 세대의 한국인들은 부모가 가난하다고 해서 부모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어머니인 오애순보다 상대적으로 더 풍요로웠던 양금명은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게 된 것일까? 신자유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치열한 개인 간 경쟁을 강요하자 인간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돈을 위한 개인 간 서열경쟁 혹은 난투극 속에서 한국인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면서 돈이 없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가난한 집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고 부모들 역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자식 사랑이 불가능하고, 자식들과의 관계 악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체험한 양관식, 신자유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가난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게 된 아버지 양관식은 이렇게 한탄한다.
“옛말도 다 뻥이야. 돈이 다가 아니기는. 돈이 다데, 돈이. 뭘 좀 해주고 싶어도 쥐뿔이 있어야 해주지.”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리길도 십리 된다.”
신자유주의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난투극을 벌이면서 피를 흘리도록 강요했다. 자식들은 가난한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고, 부모들 역시 가난한 자신이 싫어서 자식들을 향해 “이 애비처럼 살지 마라”는 자기부정적, 자기혐오적 충고를 하는 음울한 시대가 도래했다. 신자유주의가 가족공동체까지 파괴한 것이다.
과거의 한국은 오늘날의 한국보다 훨씬 더 가난했다. 그 시절을 한국인들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왜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을까?
불의의 사고로 막내아들을 잃은 오애순 부부는 심한 우울증으로 거의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애순이네 부엌에다 정성 담긴 먹거리를 계속해서 가져다 놓는다. 이웃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부부는 다시 일어섰고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모녀의 의미심장한 나레이션이 등장한다.
어머니 오애순 “유채꽃이 혼자 피나. 꼭 떼로 피지. 혼자였으면 골백번 꺾였어.”
딸 양금명 “원래 사람 하나를 살리는 데도 온 고을을 다 부려야 하는 거였다.”
<폭삭 속았수다>에는 양관식이 실직하고 나서 한동안 취직을 하지 못해 애순 가족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는 장면도 나온다. 요즘 같으면 일가족이 동반자살을 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애순이가 아침에 일어나 한숨을 푹푹 쉬면서 빈 쌀독을 들여다보면 세 식구가 하루 먹을 정도의 곡식이 생겨나곤 했다. 그것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다음날 쌀독을 열어보면 또 그만큼의 곡식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누군가가 애순 가족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했던 셈이다. 애순 가족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들이 세 들어 살고 있던 주인집 노부부였다. 그들 역시 부유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부부는 애순 가족이 굶어죽을새라 매일같이 하루분의 곡식을 빈 쌀독에 부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애순이가 주인집 할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같이 가라. 같이 가. 같이 가면 백리길도 십리 된다.”
이웃이 있었기에 더 가난해도 행복했던 그 옛날
과거에 한국인들은 가난했다. 그래도 그때에는 이웃이 있고, 공동체가 있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쌀독에 쌀을 부어주는 이웃,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이웃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예전보다 훨씬 부유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웃이나 공동체가 없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이웃, 정서적 위로와 지지를 해주는 이웃이 없는 것이다. 어느 시절의 한국인들이 더 행복할까?
가난한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면서 짜증을 내는 딸에게 엄마인 오애순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살지 마. 엄마처럼 살지 마. 근데 엄마는 엄마대로 행복했어. 엄마 인생도 나름 쨍쨍했어. 그림 같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다고…. 그러니까 딸이 엄마 인생도 좀 인정해 주라.”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오애순은 비록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고, 세 해녀 이모들이 있었으며, 정다운 이웃들이 있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다. 훗날 산전수전 다 겪은 후 딸은 엄마의 말이 진실임을 깨닫고는 이렇게 말한다.
“힘든 날은 있었어도 외로운 날은 없었다는 엄마의 인생은 돌아보니 낙원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불행한 것은 무엇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상실한 채 혼자 살아가고 있어서다. 한국은 각자가 미친 듯이 돈만 좇는 사회가 아니라 내 쌀독이 비었을 때 국가를 매개로 이웃들이 쌀을 부어주는 화목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은 내란 종식과 사회대개혁을 통해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는 기본사회, 단결과 협력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대동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화목한 공동체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야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