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10만 노동자 "노동 기본권 보장하라"
민주노총 '2025 세계노동절대회' 개최
"평등한 일터, 평등한 사회 위해 투쟁하자"
"노동자가 주인인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사회대개혁·의료개혁 선택이 아니라 필수"
민주노총 대선 후보에 3대 16개 과제 제시
"민주노총 투쟁으로 내란세력 척결하자!" "차별을 철폐하고 노동 기본권 쟁취하자!" "개헌으로 새로운 세상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사회대개혁 실현하고 불평등 박살 내자!"
1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노동자의 권리 증진과 내란세력 척결을 촉구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최한 '내란세력 청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대개혁 실현! 2025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한 10만 명(주최 쪽 추산)의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들은 윤석열 정권에서 청년, 여성, 장애인 등 노동자가 겪고 있는 노동 현실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폭우도 '노동개혁'과 '사회개혁'을 향한 이들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은 앞서 2주 간 '영원한 건설 노동자' 고 양회동 열사를 추모하는 기간을 가졌다. 건설노조는 지역본부별 사무실을 중심으로 열사 추모 분향소를 마련했다. 2주기 추모제 다음으로 노동절 투쟁 사업인 '2025 세계노동절대회'를 이어갔다.
룩트리앙 글레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연대사를 통해 세계노동절대회 개최를 축하했다. 그는 "세계 노동절인 오늘 민주노총의 용기에 존경을 보낸다. 오늘은 단순한 축하의 날이 아닌 선언의 날"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노동자들은 군부 통치로의 회귀를 허용하지 않았다"며 "윤석열 파면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해 투쟁한 결과"라고 말했다
개회 선언에서는 청년,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 현실을 알렸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현재호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은 "청년 노동자는 여전히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며 "안전하지 못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가 청년 노동자들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있다"고 했다. 그는 "광장 시민과 함께 연대해 윤석열 파면을 이끈 것처럼 여기 계신 노동자와 함께라면 청년들의 노동기본권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오영철 상임공동대표는 휠체어를 타고 올라와 "장애인의 인권, 노동권 쟁취를 위해 노동자와 함께 투쟁하겠다"며 "장애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계노동절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를 대표한 라셰드 알 마문(Shek al mamun)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도 대한민국 시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윤석열을 파면시키고 사회대개혁의 전환점에 서 있다"며 "우리도 한국 사회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계신 노동자분들과 연대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서비스일반노조 한국장학재단콜센터지회 김윤숙 지회장은 "임금 차별, 채용 차별, 승진 차별까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겪는 수많은 수난과 억압을 뿌리 뽑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명흠 조합원은 "나는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이라며 "윤석열 파면 투쟁의 광장이었던 국회, 남태령, 한남동, 광화문에는 용기 내어 성소수자의 권리를 외친 동지들이 있었다"며 "우리는 낯설었지만 서로의 삶이 맞닿으면서 동지가 됐다"고 말했다. 김 조합원은 "평등한 일터, 평등한 사회를 위해 투쟁하자"며 "성소수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계노동절에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이들은 함께 "우리의 힘으로 내란세력 청산, 우리의 힘으로 노동기본권 쟁취, 우리의 힘으로 사회대개혁 실현,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 2025 세계노동절대회를 시작하겠다"고 외쳤다.
민주노총은 개회선언 다음으로 1년 동안의 활동 영상을 틀었다. 이 영상에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가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고공농성,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가 원청 회사의 상여금 인상 거부에 항의하는 고공농성 장면이 담겼다. 이 외에도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자들의 다양한 몸부림이 펼쳐졌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영상을 보면서 지난 1년동안 노동현장에서 벌어진 부당함과 이에 맞선 투쟁활동을 회상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2025년 노동절을 맞아 '우리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각오와 결심으로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며 "그러나 파면된 윤석열은 아직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00만 원 돈뭉치를 쌀독에 던져두고 누가 줬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자들의 곳간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며 "내란 내각의 총책임자가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반노동 극우세력의 나팔수와 검찰 독재의 선봉장이 권력을 탐하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양 위원장은 "윤석열 파면 광장에서 울려 퍼진 시민들의 외침을 민주노총이 나서서 실현하자"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조법 개정으로 노조할 권리를 쟁취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확인받고, 비정규직과 중간착취가 없는 일터에서 안전하게 노동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 두텁게 보장해 의료와 돌봄, 교육과 공적 영역의 국가책임을 강화하자"고 말했다.
노동법의 한계는 헌법과 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별, 인종 등으로 시작되는 고용 형태의 차별이 노동 차별을 만든다. 노동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개인이 먼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 양 위원장은 "나의 가정, 나의 일터 앞에서 멈춰선 민주주의의 빗장을 과감히 열어젖히자"며 "그렇게 시작된 변화는 헌법도 제도도 바꾸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더 크게 조직된 민주노총은 기득권이 독식하는 선거제도와 낡은 정치체제를 바꿀 수 있다"며 "우리의 투쟁은 착취와 탐욕의 자본을 굴복시키고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산재사고 사망자는 윤석열 정권에서 증가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4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을 보면, 지난해 일터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827명이다. 1년 전 812명에서 15명이 늘었다. 전국민주일반노조 최윤실 누구나노조지회 운영위원은 이에 대해 "윤석열 정권 이후 우리는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수많은 혐오범죄를 마주하게 됐다"며 "노동자들은 '더 이상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쳐도 외면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이 있었던 과거로,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며 "제2의 윤석열이 다시 집권하는 세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서 '내란세력 청산'을 강하게 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말한다. 내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은 "노동자들은 사회에 맞서는 저항의 주체가 됐다"며 "하나를 위해 싸우는 모두의 연대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 복지가 결여된 곳도 있었다. 바로 업무 환경이 가장 안 좋기로 유명한 건설 노동 현장이다. 휴식 공간이나 시간이 보장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김우석 의정부양주 지대장은"일년에 수 백명이 죽어도 아무 일 없다는 것 굴러가는 것이 건설현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겨울 영하 20도 칼바람을 맞아가며, 한여름 30도가 넘는 더위속에서 일을 해도 임금 떼이기가 일쑤며 다쳐도 산재는 꿈도 못 꾸는 시절이 있었다"며 "일반 기업노동자와 달리 건설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해고와 취업이 반복되는 항시적인 고용문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김 지대장은 "일자리 때문에 사장님 눈치 보고 부당한 차별과 대우에도 말 한마디 못 하던 우리가 건설노조를 통해 취업을 하고 단체협약을 만들어 정당한 임금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며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감히 사장님의 고용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건설노조 건폭몰이(건설 폭력배 몰이)를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건설 노조는 8만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4만 명만 남았다. 절반이 노조를 떠난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무실이 22번의 압수수색을 당하고 42명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김 지대장은 "채용절차법으로 2억 3000만 원의 과태료도 부과됐다"며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4억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그는 "심우정 딸은 채용 공고도 수정해 모셔가더니, 건설 노동자들은 감히 고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감히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이런 탄압을 맞았다"고 말했다.
김 지대장은 "오늘은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에 양회동 열사가 분신으로 항거한지 2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열사의 염원대로 윤석열을 끌어내렸다. 이제는 그가 원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계획 없이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해서 의료 공백이 생겼다. 이때 의료 공백을 메운 것은 간호사 등의 보건의료 노동자들이다. 보건의료노조 보훈병원지부 서울지회 이남지 지회장은 "이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며 "돈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의료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 곳곳에 공공성의 활력이 넘쳐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가자"며 "우리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만든 의료 대란을 끝내고, 올바른 의료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7월 말 산별 총파업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광장의 힘으로 열어낸 새로운 대한민국에서 사회대개혁·의료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병원에서, 공장에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모든 일터에서 사회대개혁을 이야기해 나가자"고 밝혔다.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이뤄진 극단 희망새는 검은 옷차림으로 노래 공연을 했다. 이들이 부른 노래 가사에서 '물러섬 없어라. 노동자 가길. 노조를 바로 세워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라는 구절은 노동자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이들은 공연을 마치고 "무너진 사회를 일으켜 세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사람은 우리 노동자"라며 "노동자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과 꿈을 향해 나아가자"고 했다.
본대회는 거리행진으로 이어졌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우비를 벗은 뒤 깃발을 들고 머리에 빨간색 띠를 둘렀다. 민주노총은 숭례문 교차로를 지나 한국은행, 을지로 2가 교차로, 종로 2가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 북광장까지 총 3.8㎞를 행진했다.
노동자들은 '5인 미만 사업장·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근로기준법 적용하라!' '이제 정말 때가 됐다. 노조법 2·3조 개정하라' 등의 펼침막을 들었다. 행진하면서 주먹을 들고 결의를 다지는가 하면 노동자 인권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숭례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후보자들에게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사회공공성 강화 △사회대개혁 등 3대 영역 16개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노동권을 보장하고 사회대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