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갈취 비행 청소년 상대하는 것같은” 대미 관세협상
‘이코노미스트’, 안보문제로 더 어려운 한일 조명
한국 우익과는 차원이 다른 일본 우익의 기개
안보 때문에 저자세 보이는 한국과 일본
힌덕수 권한대행, 미국과의 “협력적 협상” 강조
“너무 예의를 차리며” 할 말 못하는 한국
“야당 국회의원인 오구마 신지 의원은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mutter privately)을 큰소리로 말했다(said out loud).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는 것은 ‘돈을 갈취하는 비행 청소년’(a juvenile delinquent extorting money)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4월 27일 기사 ‘트럼프, 무역과 군대:한국의 악몽(Trump, trade and troops: South Korea’s nightmare)-관세전쟁 속 대통령 권한대행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관세 압박으로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더 심각한 고통을 당할 수 있는” 한국과 일본의 처지를 다루면서 마지막에 덧붙인 구절이다.
한국 우익과는 차원이 다른 일본 우익의 기개
오구마 의원은 일본의 개혁적 극우정당인 ‘일본유신회’ 창당에 참여한 정치인이다. 지금은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의원(중의원)으로, 정무조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98년 금융기관에 부당한 압박을 가했다는 혐의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자살한 재일동포 출신 자민당 중의원 의원 아라이 쇼케이(본명 박경재) 의원실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총련계 재일 민족학교를 나온 아라이의 ‘스캔들’은 그가 ‘조선적’ 출신(조센진)의 귀화인이었기에 당한 인종차별이 배경에 깔린 비극이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아라이는 더욱 우익적인 행보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돈을 빼앗는 비행 청소년의 못된 짓과 같다고 일갈한 오구마 의원의 발언은 일본 우익다운 기개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한 나라의 우익을 자처한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걸핏하면 태극기와 함께 미국 성조기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한국 우익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개다.
안보 때문에 저자세 보이는 한국과 일본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 대상국들 중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저항하며 반격(fighting back)했지만, 한국과 일본은 70년 넘게 자신들을 지켜 준 미국의 안전보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약화시키거나 철회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terrified)며 경제와 안보 문제를 통합 처리하려는 트럼프의 ‘원스톱 샵’(one-stop shop) 협상 고집에 잘 보이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협력적인(co-operative) 협상을 통해 윈-윈 솔루션(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쪽 협상팀을 이끈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지난 16일 백악관을 찾아가 트럼프 앞에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썼다.
윤석열 12.3 계엄 발동으로 더 어려운 처지의 한국
한국은 윤석열 씨의 12.3 계엄령 발동이 야기한 정치적 혼란 때문에 더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6월 3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씨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대선 출마설이 돌고 있는 한 대행은 그에 관한 답변은 거부했으나, 어떤 문제든 미국과 “상충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 대행은 주한 미군 철수 위협과 관련해 미군의 한국 주둔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을 유지할 것인지, 미군 주둔과 핵우산을 철수해 역내 불안정을 조성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유도할 것인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시바 일본총리 “국가적 위기”
미국에 대한 수출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무역 중심 경제국들인 한국과 일본은 그런 미국을 붙잡아두려 애쓰면서 동시에 트럼프 관세전쟁 충격을 최소화하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각각 25%와 24%의 상호관세를 부과당한 한국과 일본은, 90일간 실행이 유보되긴 했지만 중국 등 다른 주요국들이 트럼프 관세전쟁으로 타격을 받아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이 교란되면서 다른 나라들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한덕수 대행은 이를 “충격 요법”(shock therapy)이라고 했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는 그 때문에 “국가적 위기”(national crisis)가 초래됐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양국이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보다 경제적 고통이 더 심각할 수 있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2일 올해 한국의 성장 전망치를 지난 1월의 2%에서 1%로 하향조정한 사실을 들었다. 일본의 성장 전망치도 0.5%p 하락했다. 세계 전체의 성장률 전망치도 0.5%p 내려갔다. 스탠더드차타드은행 관계자는 미국이 모든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GDP(국내총생산)는 0.8%p 줄어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일본의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도 24%의 대일 관세가 유지될 경우 일본 GDP가 0.8%p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자동차 및 철강 관세는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한 대행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걸 인정하면서 트럼프 다음 행보의 불확실성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와 소비자들이 지출을 미루면서 4월의 첫 20일 동안 한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줄었고, 대미 수출은 같은 기간에 14% 감소했다.
근거없는 트럼프의 비관세장벽 주장과 상호관세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상황을 낳은 트럼프 상호관세의 근거가 된 비관세장벽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 비판했다. 한일 양국 모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무역협정을 체결했음에도 트럼프는 이를 무시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위반하면서, 한국이 미국 상품에 대해 50%의 실효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엉터리 주장”(spurious claim)을 근거로 그 절반인 25% 상호관세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는 2012년 체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미국산 수입품에 평균 1% 미만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일본은 이런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여러 부처와 기관의 고위 관계자들을 47명이나 포함시킨 대규모 태스크포스 협상팀을 차렸다.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 주는 협상방식이 중요”
<이코노미스트>가 만난 한국의 한 전직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고 했다. 수많은 투자자들을 미국으로 끌어오고 있고 이미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고 화려한 투자 쇼도 펼쳐야 한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 채굴과 1300km 파이프라인 건설, 못쓰게 된 미국의 노후 조선산업 재생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를 그런 차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이밖에도 많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낮추기, 미국산 농산물 수입쿼터 늘리기, 위생 요건 완화, 의약품 가격 규제 철폐, 구글 등 정보기술 기업들에 대한 지도 정밀 데이터 수출제한 철폐와 세금 감면 등 트럼프가 비관세장벽이라며 바로잡으라고 집요하게 주장하는 것들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으로서는 자국의 안전 및 환경기준을 미국의 요구에 맞추라는 트럼프의 주장 중에 부당한 것들이 많지만, 항의하고 떠들어봤자(fussing)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썼다.
“너무 예의를 차리며” 할 말 못하는 한국
그럼에도 협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한일 두 나라가 아무리 미국산 석유와 무기를 더 많이 구입해도 미국의 무역적자를 없앨 수 없다. 동아시아 나라들의 대미 무역 흑자가 줄어들면 오히려 트럼프가 요구한 미국 내 신규 공장 건설에 투자할 자금만 줄어들 것이다. 한국은 조선업에서 미국을 도울 수 있지만 배 만드는 데에는 막대한 철강(트럼프 관세로 값이 뛰었다)과 다양한 관련 공급업체 및 숙련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미국에는 없거나 부족하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 투자할 기업이 있을까. 미국 조선업의 비효율성과 낙후는 그것이 미국에서 보호받는 독점적 업종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먼저 바꾸라고 요구해야 하는데, 한국은 “너무 예의를 차리며” 할 말을 하지 못한다. 오구마 신지 같은 기개있는 우익도 없다. 한국의 우익은 오히려 그런 요구를 하는 자국 내 비판세력을 반미,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간다.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농축에 대한 미국의 규제, 또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에서 차제에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협상을 벌일 수도 있겠지만, 한 대행체제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기사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한국과 일본의 유권자들은 지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괴롭힘(bullying.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이지메’라고 해야 할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미국에 대해) 너무 온건하다(soft)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 의원인 오구마 신지는 다른 사람들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을 큰소리로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는 것은 ‘돈을 갈취하는 비행 청소년’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