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 열기' 새해 첫 전국집중촛불…"철거돼야 할 건 당신들"
시민 5만여 명, 46개 지역서 집결…폭압 정권 규탄
정부 강제동원 해법에 "박근혜처럼 퇴진 서막 열 것"
'굿 바이전' 예술인 "한밤중 작품 철거…권력자 수치"
흥겨운 공연, '적폐 볼링핀 스트라이크' 퍼포먼스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 대행진' 참여를 위해 전국에서 모인 많은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배상금 해법과 예술계 탄압 등을 규탄하며 '윤석열 퇴진'과 '김건희 특검' 구호를 외쳤다.
촛불행동은 오후 3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1번 출구 인근에서 '23차 촛불대행진'(4차 전국집중촛불)을 시작했다. 이번 대행진은 새해 처음 열리는 전국집중촛불이기도 하다. 집회에는 총 5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은 지역명이 쓰인 깃발과 손팻말 등을 들고 삼각지역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윤석열 퇴진'이라고 적혀 있는 형형색색의 돼지 가면을 쓴 시민들도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몸 앞뒤로 윤석열 퇴진, 김건희 구속 등의 문구를 붙이기도 했다.
행진 시작을 앞두고 전주에서 온 한 시민은 차량에 올라 "1000만원이 넘을 줄 알았던 어머니의 수술을 165만원에 했다"며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없어지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민 슬픔과 눈물을 모르는 윤석열은 내려오라"고 외쳤다.
풍물패가 선두에 선 가운데 오후 3시 20분쯤부터 본격적인 행진이 시작됐다. 삼각지역 인근에 모인 1500여 명의 시민은 본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시청역~숭례문 앞 구간으로 행진했다. 길에 서 있던 시민들이 합류하는 등 행렬은 시청역을 향해갈수록 점점 늘었다.
박종철 열사 36주기이자 10·29 이태원 참사 3차 추모제가 열린 이날 시민들은 "퇴진이 추모다, 윤석열은 퇴진하라"고 외쳤다. '공포정치 폭압정치 윤석열은 퇴진하라' '친일파 매국노 윤석열은 퇴진하라' '윤석열 돌격대 정치검찰 해체하라' 등의 구호도 울려 펴졌다.
행진은 오후 4시 20분쯤까지 약 1시간 동안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으며 반대 단체와의 충돌이나 안전 사고 등은 없었다. 삼각지역 인근부터 행진한 시민들이 서울역과 숭례문을 지나서 본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먼저 온 시민들이 박수로 환영했다.
본 행사에서는 시민들의 윤석열 정권 규탄이 이어졌다.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첫 발언자로 무대에 올라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제2의 위안부 합의"라면서 "사법 주권도, 역사 정의도, 피해자 인권도 깡그리 무시한 굴욕적, 매국적 해법"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 발표가 초읽기"라며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합의로 박근혜 퇴진 서막을 열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을 강행한다면 윤석열 퇴진 운동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보안법(국보법)으로 해직된 경험이 있는 중학교 교사 박미자 씨는 "국보법을 군부독재 시절 민주인사를 탄압했던 과거 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국보법은 시퍼렇게 살아 현재와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윤석열 정부는 제주에서 암에 걸린 환자를 압수수색하고 전북, 경남에서 압수수색을 했다. 국정원과 검찰이 나서서 피의사실을 유포하고 재판도 하기 전에 먼저 이적단체로 규정했다"며 "정권 위기를 국보법을 동원한 '공안몰이'로 모면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 부부 풍자 작품이라는 이유로 국회에서 작품이 기습 철거된 예술인들도 참여했다. '굿 바이전' 조직위원장인 고경일 상명대 교수는 무대에 올라 "미개한 모리배들한테 작품을 철거 당했다"며 대형 화면을 통해 풍자 작품을 시민들에게 소개했다.
고 교수는 "순서와 절차에 의해서 작품을 걸었는데 일요일 한밤중에 철거하라는 게 말이 되냐"면서 "철거될 사람들은 바로 저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풍자 작품을 '선정적'이라고 보도한 보수 언론들을 향해서도 "변태언론"이라고 비판했다.
고 교수는 "권력자는 풍자를 보고 분노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해야 한다"면서 "이번 전시는 10·29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 작가들도 끝까지 함께 갈 것을 약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은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이 정권에 정말 분노한다"면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도 없었던 언론 탄압을 자행하는 모습을 보며 이 정권은 군사정권 못지 않은 검사독재 정권임을 선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북에서 왔다는 시민은 "충북에서 매주 금요일 피켓 시위를 이어가 네 번째 했다"며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선택한 시민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광주에서 온 한 시민은 "촛불로 윤석열을 얼마나 끌어내리고 싶은지 열기가 압축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들은 △민주·민생·평화 파괴 윤석열 정권 조기 퇴진 △주가조작·경력조작·국정농단 김건희 처벌 △10·29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적폐잔당·막말패륜정당 국민의힘 해체 △친일 반민족 언론 조선일보 폐간 등의 내용을 담은 '촛불의 5대 결의'를 함께 외쳤다.
촛불대행진을 응원하기 위한 가수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가수 박준이 2016년 탄핵 촛불집회 당시 많이 불렸던 '아침이슬' 노래를 부르자 시민들이 따라 불렀다. 백금렬과 촛불밴드의 '아리랑' 공연에서는 시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적폐 볼링핀 스트라이크' 퍼포먼스도 이뤄졌다. 시민들은 노란 풍선 볼링공을 손에서 손으로 넘겨 윤 대통령과 부인 김 씨, 한동훈 법무부 장관, 검찰, 국민의힘, 기자 등을 상징하는 인간 볼링핀을 넘어뜨렸다. 현장에는 전·현직 언론인을 희화화한 '기자 풍자 캐리커처 작품'도 전시됐다.
촛불행동은 이날 논평을 내고 "윤석열의 국정 파행과 정치 난동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정치는 명령과 복종, 폭력만이 지배할 뿐"이라면서 "정적 제거를 위한 공작 정치는 노골적이고, 주권국가의 존엄은 내팽개친 지 오래이며, 평화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말았다"고 했다.
이어 "윤 정부는 공공영역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축소되고 거대기업의 이익이 관철되는 시장의 논리가 모든 걸 지배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무엇보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의 조처는 패륜의 극치를 보이고 있고, 국민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정권이 스스로 자멸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걸 기대하고 방관하면 그 과정에서 더욱 잔혹해져 국민들을 끊임없이 해치고 말 것이고 마구 만행을 저지를 것"이라며 "촛불을 드는 것만이 우리 자신을 지키고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24차 촛불대행진'은 설 연휴가 지난 뒤인 오는 28일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