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엔 경기 나아진다…단, 조기 추경·탄핵 조건부"
국민 10명 중 7명 “가계 형편 나빠졌다”
기업 신규 채용 규모도 2022년 이후 최저
노무라 “탄핵 기각 땐 경제 위기에 직면”
성장률 전망치 새로 나올 때마다 ‘뚝뚝’
내란 사태 빨리 종식해야 경제 붕괴 막아
12·3 내란 사태가 3개월 넘게 이어지며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경기침체를 살리는 데 국력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윤석열 탄핵을 놓고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사실상 민생 문제는 손을 놓았다. 헌법재판소 선고마저 지연되며 국민 삶과 직결되는 경제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여야가 뒤늦게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기로 합의했지만, 추경 규모와 사용처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당장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할 환자를 앞에 놓고 어떻게 치료할지 공방을 벌이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모양새다. 그러는 사이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 경제의 남은 불씨마저 꺼질까 걱정이다.
국민 71.5% “올해 가계 형편 더 나빠졌다”
이런 현실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20일 공개한 ‘민생경제 현황 및 전망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한경협은 지난달 21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올해 가계 형편이 작년보다 나빠졌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을 100으로 했을 때 현재 가계경제 상황이 얼마나 개선 또는 악화했는지 묻자 응답자의 71.5%가 더 나빠졌다고 답한 것이다. 또 국민 10명 중 6명(64.2%)은 내년에도 가계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이유로는 물가 상승이 71.9%로 가장 많았고, 소득감소(11.9%)와 일자리 부족 또는 고용 불안정(9.5%) 순이었다. 물가가 가장 크게 오른 분야는 ‘식료품과 외식비’라는 응답이 72.0%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에너지 비용(11.0%)과 주거비(4.5%), 공공요금(3.4%), 금융 이자 비용(2.5%) 등이 뒤를 이었다.
지출 부담 역시 ‘식료품과 외식비’라는 응답이 54.1%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일자리 안정성(또는 사업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불안정’이라는 응답이 43.1%로 ‘안정적’이라는 응답(26.5%)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필요한 물가 정책으로는 생필품 가격 안정화(58.4%)와 에너지 가격 안정(13.9%), 취약계층 선별 지원(9.7%), 소비 관련 세금 감면(7.9%) 등이 꼽혔다. 일자리 분야에서는 취약계층 맞춤형 일자리 지원(24.6%), 미래 유망산업 인력 양성과 일자리 창출 지원(17.3%), 재취업·직무 전환 지원 강화(16.8%), 노동시장 유연성·공정성 확보(14.0%) 정책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외에 가계부채 증가 요인 해소 정책 강화(41.1%)와 부동산 시장 안정화(31.6%), 취약계층 부채상환 지원(13.0%)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윤석열 탄핵 기각되면 한국 경제 파탄”
이번 조사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으나 경제 형편이 악화할 것이라는 국민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일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노무라금융투자는 최근 발표한 ‘한국: 탄핵 시나리오와 그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을 펼쳤다. 보고서 요지는 이렇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 확률이 기각 확률보다 훨씬 높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점차 축소될 것이다. 헌재 선고 뒤 신속한 추경이 편성된다면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경기가 악화할 가능성)은 한결 누그러질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기각된다면 소비 심리는 더 위축될 것이다. 추경이 늦어지거나 아예 집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은 커질 것이다.”
노무라는 추경이 편성되면 오는 2분기(4~6월) 국내 경기는 개선될 것으로 낙관했다. 물론 그 전제는 윤석열의 신속한 파면이다.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확정 직후에도 소비자 심리는 반등했다. 헌법재판소의 심리 기간 중이었던 그해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최저점이었다. 탄핵을 인용한 그해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본격적으로 반등해 연말까지 회복세가 어어졌다.
기업들도 위축…‘채용 계획 있음’ 3년 연속 하락
내란 사태가 장기화하며 기업들도 몸을 움츠리고 있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20일에도 나왔다.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내용이다. 기업들 역시 올해 실적 전망이 좋지 않아 채용을 꺼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8%만이 ‘올해 신규 채용 계획이 있음’이라고 답했다. ‘신규 채용 계획 있음’ 응답률은 지난 2022년(72.0%) 이후 3년 연속 하락 중이다. 2023년에는 69.8%에서 작년에 66.8%로 낮아지더니 올해는 이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경총은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기업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기업이 채용에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총이 언급한 ‘불확실성’에는 당연히 내란 사태가 포함됐을 것이다.
뚝뚝 떨어지는 성장률 전망치…해법은 내란 종식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부터 한국 경제는 최악이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내수 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반도체 수요가 줄며 수출도 맥을 추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 사태가 길어지자 민생경제는 더욱 침체했고, 국민 삶도 피폐해졌다.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새로 나올 때마다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전보다 0.6%포인트 낮춘 1.5%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과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1% 초중반으로 낮췄다. 다음 달 발표될 국제통화기금(IMF)의 성장률 전망치도 2.0%에서 1%대 하락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직전 전망치는 12·3 내란 사태가 터지기 전에 나왔다.
윤석열 탄핵을 인용하는 헌재 선고가 지연돼 내란 사태 종식이 늦어질수록 우리 경제가 감당해야 부담과 국민이 받는 충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정치적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수렁에 빠진 민생을 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