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에 놀라 카페도 못 갔다…‘소확행’ 앗아간 윤석열
내란 여파 카페 매출 10% 가까이 감소
패스트푸드·술집·여가 업종 매출도 줄어
빚진 가게 10곳 중 1곳 이상 문 닫아
폐업하고 남은 대출 잔액도 평균 6천만원
빚 못 갚은 자영업자 1년 간 35% 폭증
12·3 내란 사태가 사람들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즐기는 행복(소확행)마저 빼앗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와 패스트푸드, 술집, 스포츠와 예술 등 여가 관련 업종 매출이 지난해 4분기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에 놀란 사람들이 카페와 술집을 평소보다 덜 가고, 예술과 스포츠 등 여가 활동 시간을 줄인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가 윤석열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때 여의도에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탄핵 가결을 외친 것도 국민 일상을 빼앗은 비상계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 수 있다.
‘커피 한 잔’ 즐길 시간 빼앗은 비상계엄
연합뉴스는 한국신용데이터가 17일 공개한 ‘2024년 4분기 소상공인 동향’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해 4분기 외식업 가운데 카페 매출이 3분기보다 9.5% 급감했다고 전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1.3% 감소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즐기던 이들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카페만큼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으나 패스트푸드와 술집 매출도 전 분기보다 각 1.8%와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업 중에 예술과 스포츠 등 여가 관련 업종 매출이 3분기보다 7.4%나 감소했다. 데이터를 집계한 한국신용데이터는 “경제와 정치 불안을 느낀 소비자들이 커피, 술 등 기호식품과 여가 활동부터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이전에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극심한 소비 침체로 한계 상황에 몰려있었다. 한국신용데이터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가게 10곳 중 1곳 이상이 문을 닫은 것으로 집계됐다. 폐업 후 남은 빚도 평균 6000만 원에 육박했다. 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진 상태로 장사를 하며 겪었을 고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매출은 계속 줄었다. 금리가 뛰며 저리로 빌렸던 대출 이자까지 오르면서 장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만 쌓였다. 더는 버틸 수 없어 영업을 중단하려고 해도 폐업하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한 번에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시간만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던 중에 비상계엄이 선포되며 매출은 더 떨어졌다. 결국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빚을 진 상태로 문을 닫게 된 것이다.
빚진 상태로 폐업한 자영업자 48만 명 넘어
한국신용데이터의 ‘2024년 4분기 소상공인 동향’ 보고서에 담긴 통계 수치는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을 안고 있는 사업장은 모두 362만 2000개로 추산됐다. 이 중 86.7%(314만 개)는 빚이 있어도 계속 영업 중이었으나 13.3%(48만 2000개)는 폐업(국세청 신고 기준) 상태였다. 문을 닫은 사업장의 평균 연체액은 568만 원, 평균 대출 잔액은 6185만 원에 달했다.
전체 개인사업자의 대출 잔액은 716조 원으로, 직전 3분기의 712조 원과 전년 같은 분기 700조 원보다 각각 0.5%와 2.3% 증가했다. 은행 대출이 60.5%로 가장 많았으나 금리가 높은 2금융권 비중도 높았다.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해 밀린 연체액은 11조 3000억 원으로 직전 분기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3%와 52.7% 늘었다. 연체액의 78.8%(8조 9000억 원)는 2금융권 대출이었다. 특히 저축은행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 대비 연체액 비중이 5.0%로 가장 높았다.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의 연체액 비중도 2.7%로 은행권의 0.6%에 비하면 높은 편이었다.
연체한 자영업자 빚 1년 만에 30% 증가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는 극심한 소비 침체 때문이다. 지난해 사업장 1개당 연간 매출은 1억 7882만 원, 이익은 4273만 원이었다. 이익은 14% 이상 늘었으나 매출은 0.57% 줄었다. 매출 감소에도 이익이 증가한 건 비용을 줄인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사업장당 연간 지출이 1억 3609만 원으로 전년보다 4.56% 줄었다.
한국신용데이터 보고서는 개인사업자 경영 관리 서비스 ‘캐시노트’ 가입 사업장 16만 개를 표본 조사하고 소상공인 실태조사와 한국신용정보원의 개인사업자 대출 현황 자료 등을 종합해 작성됐다. 자영업자 현황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자료다. 한국신용데이터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비가 살아나기를 기대했으나 경기 부진과 비상계엄 등으로 연말 특수가 사라지면서 실제로 작년 매출이 2023년보다 더 적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정체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평가기관 나이스평가정보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에 제출한 ‘개인사업자 채무불이행자 현황’ 자료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금융기관에 진 빚을 갚지 못한 자영업자가 작년 한 해에만 3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말 개인사업자(자영업자와 기업 대출을 보유한 개인) 335만 8956명의 금융기관 대출금액은 1122조 7919억 원으로 전년보다 7719억 원(0.1%) 늘어났다. 그런데 갚아야 할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이들은 15만 5060명으로 1년 전보다 4만 204명 증가했다. 연체한 자영업자들이 진 빚은 30조 7248억 원에 달했다. 전년 말보다 무려 7조 804억 원(29.9%) 늘어난 금액이다.
60대 이상 생계형 자영업자 대출액 급증
더 큰 문제는 고령층 자영업자의 대출액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층은 결국 빚을 갚지 못해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60대 이상 개인사업자의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372조 4966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4조 7303억 원이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다른 나이대는 대출 잔액이 모두 줄었다.
지난해 60대 이상 고령층 채무불이행자 수도 1년 만에 2만 795명에서 3만 1689명으로 52.4% 급증했다. 자료를 배포한 이인영 의원은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은 60대 이상 고령층의 연체율이 급증한 현실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위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