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본주의 황혼 고하는 트럼프의 상호관세

1947년 이후 70여년 만의 미국 관세정책 대변화

4월부터 순차 시행…기존 통상 질서 깨는 무리수

미국 제조업 부활이 트럼프 관세인상 최종목표

미국 주요 무역적자국들 겨냥, 한국도 예외 아냐

실패한 매킨리 정부의 고관세 정책 따라가나

무역적자 해소, 관세 인상보다 소비 억제가 해법

2025-02-15     한승동 에디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13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상호관세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로 무역전쟁에 새로운 전선을 열었다. 이 조치는 다른 국가들이 미국 상품에 부과하는 수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미국의 수입 관세율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2025.2.13.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들에 대한 관세를, 외국이 미국 제품에 대해 매기는 관세와 꼭같은 수준으로 올리는 ‘상호관세’를 도입하라고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독일이나 인도 등 미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들과 일본처럼 여러 규제 조치로 수입물품 소비가격을 올리거나, 부가가치세(소비세)나 환율, 정부 보조금 등의 ‘비관세 장벽’을 세우고 있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4월부터 순차적으로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당장 문제가 된 철강과 알루미늄뿐만 아니라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다른 물품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1947년 이후 70여년 만의 미국 관세정책 변화

WTO(세계무역기구)를 통한 다자간 협상을 토대로 한 관세 대신 2국간 협상(딜)을 통해 국가별 상품별로 각기 관세를 달리 매기는 이런 차별적인 ‘상호관세’는 지금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시작된 1947년 이후 75년여 만에 감행되는 미국 최대의 무역정책 전환이자 근본적인 변화”라고 워싱턴의 로펌 ‘와일리 레인’의 변호사 티머시 브라이트빌은 말했다.(<뉴욕타임스> 2월 13일) 이는 합의제로 운영하는 WTO 상소위원 선임에 미국이 반대하면서 이미 작동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WTO의 규정 위반일 뿐만 아니라 WTO 자체를 사실상 해체하려는 것과 같다.

미국 제조업 부활이 트럼프 관세인상의 최종목표

인플레이션(물가 인상) 등 단기간의 혼란과 부작용을 겪더라도 장기적으로 미국 제조업 부활로 이어지고 물가도 다시 내려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입각한 트럼프 2.0의 상호관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생산하면 관세는 없다”며 원가절감 등을 위해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들의 미국 내 복귀(리쇼어링)와 외국기업들의 미국 내 직접투자를 촉구했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2일 서울 영등포구 63빌딩 내 기술보증기금 서울지점에서 열린 미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 중소기업 지원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2025.2.12. 연합뉴스

미국 대형 무역적자국들 겨냥, 한국도 예외 아니다

상호관세는 멕시코, EU(유럽연합), 일본 등 미국의 대형 무역적자국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정권(트럼프 1.0) 때 재협상을 통해 농산물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미국 물품 수입관세를 거의 없애버린 한국도 비켜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관세를 서로 낮추기보다 상대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높임으로써 동등한 관세를 실현하겠다는 상호관세의 예외국이 될 수 없다.

미국 물품에 대한 관세율 0.002~2.003%인 자유무역협정 상대국 한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 흑자액은 660억 달러를 넘어 미국의 무역적자국 순위에서 8위를 기록했다. 자동차와 반도체가 한국 대미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미 수출비중 1, 2위인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이 상호관세로 위축된다면 한국경제 전체가 어려움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보조금과 환율, 부가가치세 등 비관세장벽들을 문제삼아 양보를 끌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제품에 대한 세계 평균 관세율. 데이터는 각 국가가 ‘최혜국’ 대우 원칙에 따라 부과하는 평균 관세율. 최혜국 관세는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다른 모든 회원국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 이 지도에서 한국은 13%로, 인도의 17%에 이어 가장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로 표시돼 있다. 데이터는 대부분의 경우 2023년 또는 2022년의 것인 최신 자료다. 출처: 세계무역기구 칼 러셀   뉴욕타임스 2월 13일

트럼프의 상호관세, 4월부터 순차 시행

상호관세는 지금 당장 적용되는 건 아니고 오는 4월부터 시행된다. 상호관세 부과를 위해 미국 정부는 미국이 가장 큰 무역적자를 보고 있거나 비관세장벽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부터 조사에 들어가는데, 조사기간은 나라마다 달라 “몇 주에서 몇 개월” 걸릴 것이라고 미국 고위관리가 13일 밝혔다. 따라서 미국 통상대표부(USTR)와 상무부가 조사를 맡고 그 결과에 따라 국별, 상품별로 차별적 관세를 순차적으로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를 상대로 나라와 상품 구분 없이 10~2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일관 관세(보편관세)’와는 다른 상호관세의 1차적인 목표는 무역 상대국과 관세율을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 관세가 미국은 2.5%지만 유럽연합(EU)은 10%다. 여기에 EU 회원국 소비세(부가가치세)의 기준세율이 평균 22%로 20%를 넘는데, 일반적으로 수입업자가 관세와 함께 이를 세관에 지불하면, 유럽 최종 소비자는 총 30% 세금이 더 붙은 수입품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30%의 관세를 매기는 것과 같다고 트럼프는 주장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왼쪽부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지난 12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 회동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 EU, 브라질 등 미국의 주요 무역적자국들은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쫓기고 있다. 2025.2.13. EU 제공 연합뉴스

관세율 통일하거나 다른 양보를 하거나

이에 비해 EU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EU의 소비세가 면제돼 EU 역내에서 판매될 때보다 싼 가격으로 미국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사실상의 “수출 보조금 같은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EU가 미국만큼 관세를 내리거나, 그게 안 되면 미국도 EU만큼 관세를 올리겠다고 트럼프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런 주장은 미국에는 연방 차원의 소비세가 없어 유럽 자동차를 수입할 때 소비자가 추가로 지불하는 것은 관세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도 주 단위로 소비세에 상당한 ‘판매세’가 붙는 등 결국 마찬가지의 세 부담이 있어 미국도 다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트럼프 2.0은 눈에 보이는 그런 관세 불균형을 바로잡겠다고 나설 것이고, 그것은 쌍방 관세율을 동일하게 만들거나, 다른 조건들을 제시하며 상대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2가지 방식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미국은 캐니다와 멕시코에 마약 펜타닐 밀매와 이민 유입 등의 책임을 물어,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도록 압박하거나,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관세를 높이기 위한 구실로 삼을 수 있다. 지난 4일 캐나다와 멕시코의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추가관세 25% 적용을 한 달간 유예한 것도 미국의 그런 압박에 두 나라가 이주민 단속 군대를 보내기로 하는 등 양보하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실패한 매킨리 정부의 고관세 정책

이에 대해서는 미국도 다른 외국처럼 소비세나 부가가치세를 매기거나 수출품 면세 조치에 상응하는 연방 판매세 같은 것을 도입하면, 미국 기업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지 않고 재정수입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의 과잉소비 습관도 억제해 저축과 투자에 균형이 잡히면서 무역적자도 축소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미국 제조업(산업)을 재건하려면 관세를 올릴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투자와 혁신을 통해 그것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트럼프가 전례로 삼고 있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윌리엄 매킨리 정부(1897~1901)가 자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고용을 늘리기 위해 도입했던 고관세 정책이 단기간 정부 재정수입을 늘리는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소비자 부담을 늘리고 무역 상대국의 보복관세를 불러 미국 수출기업들을 어렵게 만드는 등 실패한 사례가 있다.

 

1조 달러에 육박한 미국 무역적자. 2025.2.6. 연합뉴스 그래픽

무역적자 해소는 관세 인상보다 소비 억제가 해법

중국에 대한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의 왕성한 소비 내지 과잉 소비가 중국의 과잉 수출까지 초래한 결과이니, 해결책은 관세 인상이 아니라 미국의 소비 억제라는 지적도 있다. 관세 인상이 생각한 만큼 효과가 없다는 사례의 하나로,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국내 관련 업체들이 일제히 관련 제품 값을 그만큼 올리는 통에 한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의 대미 수출품에 25% 관세를 붙여도 미국 내에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보도를 들기도 한다.

트럼프 1.0 때 한국산 삼성 LG 가전제품에 세이프 가드를 적용해 관세를 올렸으나 미국산 월풀 세탁기 등이 관세 인상 덕을 보려고 값을 잔뜩 올리는 바람에 삼성 LG 가전들이 관세붙은 높은 가격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며 더 잘 팔렸다는 얘기도 있다.

무역전쟁 유발하는 ‘자해 행위’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30년대의 대공황이 1929년 10월의 주가 대폭락 때문이 아니라 1930년 6월 17일 ‘스무트-홀리 법’ 제정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무능한 대통령의 대명사처럼 거론되는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농산물 관세 인상을 통해 자국 농민들을 보호하겠다며 도입한 고관세의 스무트-홀리법이 공산품에도 확대 적용되면서 2만여 개의 상품 관세율이 평균 59%, 최고 400%까지 인상됐다.

각국이 보복관세에 나서고 미국 수출이 큰 폭으로 줄면서 농업과 공업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실업률은 25.1%까지 치솟았다. 세계 전체 교역량도 3분의 1로 축소되고, 그렇게 해서 세계는 대공황을 거쳐 2차 세계대전으로 향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런 전례를 들어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런 악몽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적국’보다 주로 ‘동맹국’이 표적이 된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자해 행위”라고 했다.

 

미국 무역적자액 상위 10개국 순위. 연합뉴스

상호관세, 미국 쇠퇴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징표

상호관세라는 이름의 트럼프 고관세 정책은 미국의 쇠퇴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징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2차 세계대전 뒤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은 서방진영의 맹주로 마셜 플랜을 통해 독일을 비롯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주요국에 대규모 원조를 하고, 자국 시장을 개방해 유럽을 부흥시켰다. 마찬가지로 패전국 일본에도 유럽 못지 않은 원조와 자국 시장개방 혜택을 베풀어 단기간에 일본을 전쟁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6.25전쟁도 거기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냉전시대에 비교 불가능한 압도적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은 그런 우위를 보장해 준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를 떠받치고 유지하는데 아낌없이 비용을 지불했다. ‘경찰국가’ 미국 이미지다.

트럼프가 관세를 올리고 미국만 손해보는 짓은 하지 않겠다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미국 제일주의’을 앞세우고 동맹국들에 군사비(국방비)를 대폭 올리라고 압박하면서 상호관세를 도입하는 건 이제 미국이 미국 주도 세계질서를 유지할 힘이 없어져, 제 한몸 건사하기에도 힘이 부치게 됐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원래 미국이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낮게 매긴 이유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값싼 수입품을 제공하고, 미국 생산업체에도 싼 원료를 제공하는 이점이 크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미국에게 큰 이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 공장들이 해외로 이전한 것도 해외의 값싼 인건비와 원료가 국내 생산보다 더 큰 이윤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시절부터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는 국내에서는 이윤을 보장받을 길 없는 선발 자본주의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부등가 교환의 새로운 지대를 찾아나선 결과였다. 그것으로 미국은 다시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트럼프의 등장은 그런 구조가 더는 유지될 수 없는 또 다른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호관세 최대 피해자는 개도국들?

관세를 낮게 매기는 쪽은 대체로 부유국들이고, 빈곤국일수록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높인다. 따라서 트럼프 2.0이 관세평등을 앞세우며 국별, 상품별 차별관세=상호관세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그 가장 큰 피해자는 서로 협상할 여지가 있는 부유국들이 아니라 개도국들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와 역사가들은 각국이 각기 특수한 사정 때문에 특정 산업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더 많이 수입할 필요 때문에 특정 상품에 관세를 낮게 매기는 것은 불공평한 차별의 증거가 아니라 특정 국가들의 국내 정치 경제적 관심사나 우선 순위 등의 각기 다른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미국도 자국 양모 스웨터와 신발 생산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 자릿수의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또 어떤 나라들은 자국 소비자와 생산업자들에게 가장 경쟁력이 있는 가격에 더 폭넓은 선택지를 갖게 해 주기 위해 낮은 관세를 추구한다.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국가별 제품별 사정에 따라 관세를 동등하게 매기자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같은 양이 되도록 줄이자는 것과 같다. 그것도 WTO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간 협의가 아니라 양국간 협상(딜)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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