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과 사람 따라 말 바꾸는 카멜레온 '조선일보'
계엄 선포 윤석열에 악담 퍼붓다 돌연 계엄 비호
"기승전 이재명 혐오" 12·3 내란 이전으로 회귀
'극우 신문' 조롱에도 운명 공동체 윤석열 감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영화 속의 내란 수괴는 쿠데타가 실패할 것 같으니까 몸을 사리는 선배 ‘똥별’들에게 그렇게 다그친다. 그렇다. 쿠데타는 실패하면 반역이다. 쿠데타는 아이들의 병정놀이가 아니다. 목숨 걸고 하는 거다.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쿠데타가 실패했다면, 영화 속의 그 내란 수괴는 어떠했을까? 반역죄를 인정하고 순순히 오라를 받았을까? 권총을 차고 있었으니 자결을 했을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적어도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시민들이 막아줄 거라고 기대했다든가, 부당한 지시에 군인들이 따르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든가, 쿠데타가 실패하여 유혈사태도 없었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라고 우긴다든가 ,정치권에 경고하기 위해 또는 정치인들을 심판해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늘어놓으며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박한 처지에 몰리자 저 살자고 한밤중 쿠데타 난동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국민을 충격과 불안에 빠뜨리고 나라를 국제사회의 조롱거리를 만들고도 현실의 내란 수괴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끝없이 거짓말을 이어가는데, 그 행태가 비겁하고 비루하고 비열하여 저런 자가 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게 너무도 창피하여 분통이 터진다.
저 살자고 말을 바꿔가며 내란을 정당화하는 말장난은 내란 수괴의 뻔뻔하고 비루한 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조선일보의 말 바꾸기도 현란하다. 12.3 계엄 직후에는 윤석열이 그럴 줄 알았다, 지긋지긋하게 말을 안 듣더니 결국 대형사고를 쳤다, 윤석열은 끝났다, 시대착오적 계엄 자폭으로 보수 진영은 물론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속사포처럼 분노의 악담을 쏟아내더니 슬그머니 태도를 바꿔 공수처를 흔들고 법원을 흔들고 헌재를 흔들며 탄핵 반대를 정당화하고 모든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기고 이재명 대표를 악마화하는 정치 선동을 마다지 않는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시간을 맞힌다. 조선일보도 그럴 때가 있다. 윤석열의 12.3 내란이 실패로 끝난 다음 날, 조선일보는 친위 쿠데타는 자폭 테러이고 지긋지긋하게도 말을 안 듣더니 결국 대형사고를 쳤다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분노와 저주의 악담을 쏟아냈다. 양상훈 주필의 칼럼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에서 일부를 옮기자면 이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많은 폭탄을 던져 왔다. 그 폭탄은 거의 모두 자신과 정부·여당 안에서 터져 자해만 입혔다. 윤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란 얘기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없이 들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비정상적일 줄은 몰랐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부터 윤 대통령의 자폭은 본격화됐다. 많은 주변 인사와 많은 언론이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일절 무시했다. 그렇게 건의한 사람들은 심한 경우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이 하나하나가 모두 자폭 폭탄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여당 내부와 싸우고 있는 일, 유죄 판결을 받은 구청장을 즉시 사면해 그 구청장 자리에 다시 출마하게 한 일, 가수 문제로 김 여사와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한 일, 육사 내 동상을 갑자기 옮긴다며 일으킨 평지풍파, 경호처장을 50만 대군을 지휘하는 국방 장관에 임명하는 이상한 인사 등 작은 자폭은 계속 이어졌다.”
“윤 대통령의 자폭은 놀랍게도 총선 기간 내내 계속됐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과 관련된 사람을 굳이 대사로 임명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큰데도 굳이 그를 출국시키고, 기자에게 ‘테러’ 위협을 한 수석비서관을 즉시 해임하지 않고 버텼다. 마지막으로 의정 갈등을 진화하지 않고 더 불을 지르는 담화를 당에서 반대하는데도 굳이 총선 투표 직전에 발표해 선거 자폭 테러의 정점을 찍었다.”
“결국 총선 때 자폭이 이번 계엄 자폭을 부른 것이다. 자업자득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다. 윤 대통령은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사려 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인내해서 얻는다는 지혜를 모르고 즉흥적·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감(感)이 거의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양상훈 주필의 칼럼은 ‘윤석열의 다음 처신 역시 감정적이고 충동적일 가능성이 있고,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내용일 듯한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는 불안함으로 끝을 맺는다. 윤석열을 빨리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신문사에서 주필은 막강한 자리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은 재벌과 정치 권력과 어울려 퇴폐적인 술자리를 즐기며 정치에도 개입하고 선거에도 개입하고 국정에도 개입하고 인사에도 개입하며 그 모든 걸 쥐락펴락한다.
조선일보의 악담과 저주는 양상훈 주필의 칼럼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틀 뒤에 실린 강천석 고문의 기명 칼럼서도 윤석열에 대한 분노의 비판을 이어간다.
“국가 지도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은 끝났다. 대통령이란 직명(職名)이 얼마나 더 오래 붙어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 지도자 자격은 잃었다. 국민 마음에서 지워졌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희비극(喜悲劇) 이전의 국가 지도자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무능한 정권이었다. 허무맹랑한 엑스포 유치를 비롯해 셀 수 없는 판단 착오를 저질렀고 여당 대표를 줄줄이 쫓아내거나 가혹하게 대했다. 인사(人事)는 고교 동문·서울 법대·검찰 출신이란 한 뼘도 안 되는 울타리에 갇혀 인사를 하면 할수록 정권 기반은 떨어져 나갔다. 국가 안보가 최우선인 나라에서 걸핏하면 대통령 안보실장을 갈아치워 지금 실장이 4번째다.”
조선일보 강천석 고문은 기명 칼럼에서 윤석열은 무능한 대통령이고 부인 김건희씨는 천지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고, 한동훈 대표 등 여당 일부가 김건희 특검에 찬성 쪽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뜬금없는 위헌적 비상계엄 발상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면서 "2024년에 출현한 '1980년대 대통령’이 할퀸 상처는 깊고 아프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의 ‘윤석열 악담’에는 조선일보의 내로라하는 논객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하였다. 양상훈 주필, 강천석 고문에 이어 김창균 논설주간도 가세했다. 12월 17일자 조선일보에 게재된, ‘尹, 지지층과 黨 부끄럽지 않게 탄핵·수사 임해야’란 제목의 기명 칼럼에서 김창균 논설주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여당인 국힘당 의원들이 소신대로 탄핵 소추안 표결에 나설 수 있도록 풀어주라 하고, 친위 쿠데타에 동원된 군인들은 실현 불가능한 대통령 지시 때문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거듭되는 대통령의 정치적 자해에 국민은 지칠 만큼 지쳤다. 더 이상 나빠질 게 뭐가 있겠냐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때까지는 전치 2, 3주의 경상에 불과했다. 12월 초 한밤중에 꿈인가 생시인가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대통령의 계엄 포고는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입혔다.”
“지난 주말 1차 표결에서 여당이 본회의장 집단퇴장으로 탄핵을 부결시키면서 '헌적 계엄을 감싸는 것이냐'는 국민적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다. 이번 주말 2차 투표는 의원 각자의 소신대로 찬성과 반대를 표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한때 당의 어른이었던 대통령의 마지막 배려가 될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실현 불가능한 대통령 지시 때문에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다. 대통령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총체적 지휘 책임을 인정하는 가운데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감싸야 한다.”
김창균 논설주간에 이어 박정훈 논설실장도 ‘윤석열 악담’의 뒤를 이었다. 12월 1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명 칼럼에서 박정훈 논설실장은 보수진영은 대통령 윤석열과 결별하고 ‘윤석열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권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와 저주마저 느껴지는 조선일보의 진단과 처방은 정확했다.
“‘윤석열 리스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윤 대통령이 이룬 업적은 적지 않으나, 한편에선 독단적이고 충동적인 의사 결정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김건희 여사 감싸기, 한동훈 때리기, 보수 연대 해체, 일방적 의대 증원, 채 상병 사건 격노 등등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비상식적 행보로 총선을 망치고 고립을 자초했다. 이해하기 힘든 자해극이 돌출돼 나올 때마다 그에게 표를 던져준 지지자들은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 되어 스트레스 받아야 했다. 결국 시대착오적 계엄 자폭을 감행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보수 진영, 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고립된 정신세계를 고백한 윤 대통령 담화는 왜 그를 대통령직에서 배제해야 하는지 더욱 확신시켜 주었다. 탄핵 코스는 피할 수 없는 외길 수순이 되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찬성·반대가 대립할 것이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격랑의 탄핵 정국에서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주체적 변수가 아니다. 윤 정권의 짧은 시대가 가장 비극적 방식으로 종착점을 치닫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대통령 윤석열과 결별하고 ‘윤석열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렇게도 내 말을 안 듣더니 꼴좋다, 결국 대형사고를 칠 줄 알았다는 분노의 저주로 읽히기도 하는 조선일보의 ‘윤석열 악담’에는 살짝 못 미치진 하지만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불리던 김대중 전 주필도 숟가락을 얹었다.
12월 17일자에 게재된, ‘이재명 앞에서 보수마저 길을 잃을 수 없다’는 칼럼에서 김대중 전 주필은 ‘지난 2년여 보수층은 정치 얘기만 나오면 김건희 여사의 처신, 윤 대통령의 집착, 주변 인물들의 기회주의, 그리고 ‘용산’에 대한 불만으로 화제를 삼았고, 비상계엄이라는 극약 처방에 개탄하기도 하며, 세계의 움직임도 그의 비상계엄 카드는 시의(時宜)를 잃은 것이었다고 하고, 세계사적으로 절박하고 긴박한 시간에 자기 살자고 계엄의 카드를 꺼낸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한다’며 그가 속한 보수 세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랬는데 딱 거기까지다. 12.3 계엄이 실패한 다음 날부터 시작된 조선일보의 ‘윤석열 악담’은 뒤로 갈수록 그럼에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는 ‘기승전 이재명 혐오’로 이어지더니 김대중 전 주필의 칼럼 이후로 이재명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계엄 이전의 논조로 복귀한다. 그 이후의 칼럼에 실린 내용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꼴이 될까 두려워 차마 옮길 수가 없다.
기자로 살면서 가끔 기자라는 직업에 필수적인 덕목은 무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기자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지조’를 꼽겠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상대에 따라 말을 바꾸고, 유불리에 따라 말을 바꾸는 유연함(?)이 생존과 처세의 비결일 수는 있겠으나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직업이 꼭 기자만은 아니겠지만.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너 때문에 나까지 죽게 생겼다는 듯이 분노의 악담을 쏟아내던 조선일보가 윤석열 수사에 시비를 걸고, 법원의 윤석열 체포영장 발부와 구속영장 발부에 시비를 걸며 윤석열 지지자들의 법원 난입 폭동을 두둔하는 보도를 하고, 시시콜콜 꼬투리를 잡아 헌재를 흔들어대는 걸 보면서 예전의 조선일보 사주 방상훈은 왜 서울지검장 윤석열과 비밀리에 만났을까, 둘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살아났다.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한다고 하던데, 그때 혹시 조선일보 사주가 윤석열에게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 그 제안에 덜미를 잡혀 조선일보는 대통령 윤석열이 보수진영을 망치는 자폭 테러를 연발해도 신랄하게 비판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그래서 ‘극우 신문’이라는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운명공동체인 내란 수괴 윤석열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그 의구심이 시원하게 풀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